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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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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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관련 수사결과-4

검찰이 파악한 계엄 이전의 보안사 동향

10.26시건으로 보안사가 합동수사본부로 지정됨으로써 보안사는 당시 중앙정보부,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하는 핵심기구로 등장했고, 전두환 장군은 12.12 사건을 통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권력공백기에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으로 부상했다.

2월 중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보처 산하에 이상재 준위를 반장으로 하는 언론대책반을 구성하여 계엄사 보도검열단의 보도검열 업무를 조정-감독케 했다. 3월중순에는 안정세력을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K-공작계획을 수립, 언론계 중진들과 개별접촉을 시도했다.

1980.2.26. 09:00경, 이학봉 대공처장과 권정달 정보초장은 광화문 보안사 안가에서 김대중 국민연합 공동의장을 만나 사면 복권 되더라도 시국안정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후 3일만인 2.29에 최규하 대통령은 긴급조치 위반자 687명에 대하여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4.29일 최규하 대통령은 중앙정보주장짃을 장기간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판단하여 다른 대안들을 부리치고 전두환을 겸직시켰다.

5월초, 학내 시위가 최규하 정부와 군부를 상대로 하는 정치투쟁으로 비화되자 전두환은 권정달 정보초장에게‘시국수습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고, 한편 이학봉 대공처장은 5.10일부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정치활동을 구제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전두환에 보고 했다. 전두환은 이학봉(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단장)에게 학생소요 배후조종자와 권력형 권력 축재 혐의자들을 검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5.16. 이학봉 대공처장은 전국 보안부대 대공과장 회의를 소집, 5.17.24:00부로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니 학생시위의 주동자들을 일제히 검거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검찰이 파악한 계엄 확대 이전의 군 동향

1979.10.26. 박대통령 서거로 발령된 비상계엄 업무차 육본으로 출동했던 9공수여단은 12.8. 주둔지인 부평으로 복귀했고, 태릉으로 출동했던 20사단은 1980.2.5. 주둔지인 양평으로 복귀했다.

1979.12.18. 이희성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은 ‘군이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목표를 완수하고 군 본연의 인무로 복귀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1980.2.18.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육군찬모총장 명의로 충정부대 및 후방 주요 부대에 폭동진압 훈련을 1/4분기 이내에 완전히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다라 3.6. 노태우 수경사령관은 특전사령관, 1,3,5,9 공수여단장들, 20사단장, 26사단장, 수도기계화사단장, 30사단장, 치안본부장, 서울시경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했다. 회의 결과 학생 소료를 주도하는 핵심세력을 맹목적 저항세력으로 규정하고, 문제 학생과 교수는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군이 투입할 상황이 발생하면 강력하게 조치한다는 요지의 결론을 내렸다.

4.30, 4월의 사북사태 이후 노사분규가 확산되고, 대학가에서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함에 따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긴급히 전군지휘관회의를 소집, 이를 경고하고 학원을 정치선전장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규탄받을 것이며, 불법행동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질서가 회복되면 군은 즉각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것을 재확인 했다.

5월에 접어들면서 대학시위가 정치시위로 변모하면서 점점 더 가영되자, 욱군본부는 재빠른 병력 이동조치를 취했다. 5.3.에는 9공수여단을 수도군단에 배속하고, 5.6에는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아 해병 1개 사단 1개 연대를 소요 진압부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고, 이후 3일간 수도권 지역 및 2군 지역 전부대를 대상으로 소요진압 준비태세를 점검하였고, 5.8에는 포천군 이동에 주둔하던 13공수여단을 서울 거여동 3공수여단 주둔지로 이동시키고, 5.10에는 추가로 해병1개사단과 1개연대를 소요진압에 투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고, 5.10에는 화천군 오음리에 있던 11공수여단을 김포 1공수 여단 주둔지로 이동 배치했다.

5.13에는 1군 경장갑차 26대를 수경사에, 3군 경장갑차 24대를 수도군단에 배치했다. 5.13. 대학생들이 가두로 진출하자 육본은 작전참모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소요진압본부’를 설치하고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준비지시를 하달했다.

수경사는 특전사 예하 1,5,11,13의 4개 공수여단을 작전통제하여 강북지역의 소요를 진압하고, 수도군단은 9공수여단을 작전통제하여 강남지역의 소요를 진압하고, 2군사령관은 7공수여단과 해병 1사단 2개연대를 작전통제하여 부사, 대구, 광주 지역의 소요를 진압하고, 3공수여단을 국립묘지에 배치하고, 청와대 중앙청 등 튿전 경비지역을 방어하는 경찰 지지선 뒤에는 수경사 6개 중대를 배치하고, 전국 71개 방송국 및 중계소에 경계 병력을 배치했다.

5.15. 서울 시내 학생시위가 가열되자 양평에 주둔하던 20사단 61.62연대가 잠실 체육관과 효찬운동장으로 출동했고, 이에 20사단 60연대가 태릉으로 출동하였다. 5.16 오후, 주영복 국방장관은 5.17.10:00시에 전군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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