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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네킹> 표지 ⓒ 열림원 | ||
"황량한 시간을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오래 서랍 속에 갇혔던 압지처럼 다가오는 기쁨을 모두 빨아들이는 어두움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한쪽이 비옥한 것은, 검은 구멍을 벌리고 빈곤하게 말라가는 불행한 영혼들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빈번했기 때문이다."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50)이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마네킹>을 열림원에서 펴냈다. 마네킹? 모습은 사람과 꼭 닮았으나 생명이 없는 완벽한 미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서서 늘 똑같은 미소를 짓고 서있는 인형이 바로 마네킹이 아닌가.
하긴, 요즈음에는 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런 마네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이 없고 매끄러운 몸매만 남아있는 마네킹이 있는가 하면 두 팔과 다리조차 없는 마네킹도 많이 있다. 이는 비록 생명이 없긴 하지만, 사람처럼 완벽한 모습을 골고루 갖춘 마네킹을 찾아보기도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마네킹>을 쓴 작가 최윤은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소설을 쓰게 했다"고.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 그리고 마네킹? 그렇다면 작가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마치 조각품처럼 잘 다듬어진 마네킹이란 말인가. 오똑한 콧날에 쌍꺼풀 예쁘게 진 동그란 눈, 그리고 물결처럼 매끄럽게 빠진 몸매를 가진 그 마네킹을 닮고 싶다는 그 말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 '아름답다'란 형용사를 찾으면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하나는 '빛깔과 소리, 목소리, 모양 따위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고 예쁘다'이다. 또 그 '예'로는 '아름다운 목소리 또는 그녀는 눈이 아름답다'가 덧붙혀져 있다.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 착하고 인정스럽다'이며, 그 '예'로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다, 얌전한 몸가짐과 아름다운 마음씨'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사전에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외적인 것, 즉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것에 대한 아름다움, 곧 몸을 나타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인 것,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곧 마음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최윤이 물질자본주의의 꽃으로 상징되는 <마네킹>을 통해 찾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마네킹은 외적인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어디 모난 곳 하나 없이 아무리 완벽하게 아름다우면 무엇하랴. 사람처럼 숨을 쉬지도, 말을 할 수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 마네킹이 아닌가.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작가의 속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마네킹을 통해 마네킹 뒤에 감추어진 허상을 꼬집어낸다. 그리고 그 허상을 깨뜨림으로써 그 마네킹을 마침내 살아 숨쉬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하지만 사람이 된 마네킹은 걸인처럼 떠돌다가 스스로 죽고 만다.
"마네킹이 되어야 했던 여인이... 급기야는 죽음으로써 일종의 신적 위상을 획득하게 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새로운 여신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의 완성이 직접적인 대면의 한계를 뛰어넘고 무수한 사람들과의 교섭을 위한 종교적인 의미를 띠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경수, 문학평론가)
이처럼 이 소설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마네킹이 되어야만 했던 여인 '지니'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어느 겨울, 암벽 위 작은 동굴에서 잠시 잠자는 것처럼 누운 채 죽음을 맞이하는 마네킹 여인 지니. 그리고 소설은 지니의 어린 날로 되돌아간다.
생후 3개월 때부터 광고모델로 일하며 가난한 가족들의 의식주(욕망)를 해결했던 지니. 어린 시절, 오빠의 순간적인 욕망으로 인해 폭행을 당하면서 목졸림을 당해, 목소리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지니. 소설 속의 지니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들의 욕망을 해소시켜주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이후 지니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광고모델이 되어 뭇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준다. 그런 지니가 어느 날, 수중광고촬영을 위해 잠시 바닷속을 유영한다. 그리고 바닷속에서 단 몇 초 동안 지니의 영상에 매혹되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꾸게 되는 쏠배감펭이 나온다.
늘 지니 곁에서 지니를 지켜보다가 지니를 사랑하게 되는 지니의 메니저 소라, 세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불타 오르고 있는 오빠 상어, 지니를 애증의 눈으로 바라보는 언니 불가사리, 지니에 대한 죄책감과 지니를 폭행한 오빠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엄마 우뭇가사리...
지니는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바닷속을 유영한 뒤 지금까지 상품으로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삶(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지니는 세상 곳곳을 마치 걸인처럼 떠돈다. 그리고 초라한 차림으로 춤을 추는 지니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지니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로 받는다.
여기에서 허구가 아닌 지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쏠배감펭을 뺀 그들 모두는 지니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쏠배감펭은 지니의 메니저 소라와 함께 지니를 찾아 나선다. 결국 그들은 지니를 찾아내지만 지니는 예전의 마네킹이 아니다.
지니의 오빠 상어 또한 지니가 없어지자 무인도를 사서 그곳에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지니의 언니 불가사리는 지니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지니의 대역이 된다. 그리고 막내딸 지니의 불행한 삶을 그냥 저만치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던 지니의 엄마 우뭇가사리는 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를 하다가 점점 미쳐간다.
<마네킹>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도 재미있다. 상어, 우뭇가사리, 불가사리, 소라, 쏠배감팽 등 모두 바다에서 자라는 동식물의 이름이다. 이는 아마도 지니가 잠시 바닷속을 유영하면서 삶을 바꾸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데서 그렇게 붙혀진 이름일런지도 모른다.
<마네킹>에서는 줄곧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이 교차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지만 주인공 지니는 말이 없다. 물론 오빠에 의해 목소리를 잃어버린 지니다. 지니의 말은 제3자, 아마도 작가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어쩌면 작가는 일부러 지니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마네킹은 말이 필요가 없으므로. 그리고 작가는 그 마네킹이 마침내 마네킹의 탈을 벗고 진정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목이며, 또 그런 지니를 죽임으로써 지니를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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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최윤 ⓒ 한국소설가협회 | ||
작가 최윤은 누구인가?
우리 문학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는 작가 최윤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8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속삭임, 속삭임><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숲 속의 빈터>가 있다. 장편소설로는<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겨울 아틀란티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는<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이 있다.
작가 후기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작품을 쓰게 했다'고 말하는 작가는 서강대 불문과에 재직 중이며, 계간 <파라21>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동인문학상(1992년), 이상문학상(1994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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