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주위에서 말하는 삼팔선이니 오륙도니 하는 명예퇴직과 관련된 말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오니 어리둥절했습니다.
처음엔 실감도 나지 않았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잃은 남편은 기가 죽어 집 안에서만 맴돌았습니다. 휴대폰도 받지 않고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안타까워 남몰래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 아내는 딸과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딸이 아빠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빠도 같이 가자”
그러자 남편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빠 회사 가야돼"
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회사 안 나가잖아”
딸의 말에 남편은 침울해졌습니다. 화장실로 가 담배를 하나 빼 물었습니다. 그 전에는 아파트 베란다나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직 후에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벌건 대낮에 베란다나 현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 이웃 사람들이 실직한 사실을 알게 될까 창피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듯싶습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 왠지 짜증도 치밉니다.
어느 날 아내는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아요. 냄새 나잖아요, 나가서 필거 아니면 제발 끊으란 말이야, 남들이 볼까 창피해요? 그러면 끊으면 되잖아요. 거기다 간접 흡연이 얼마나 나쁜데..... 나는 그렇다고 쳐요. 그렇지만 애는? 잘 됐네 어차피 돈도 못 버는데 이참에 딱 끊으면 되겠네......."
"누군 놀고 싶어 이러는 줄 알어! 나도 답답해 미치겠어 그래서 그거 달래 보겠다고 담배 피우는 게 그렇게 잘못 된 거야? 내가 지금껏 무작정 논 것도 아니잖아, 그 동안 나 고생한 거 요 며칠 집에서 놀고 있다고 아무것도 이닌 게 되는 거야? 당신 진짜 너무 한다..."
남편은 화를 벌컥 내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아내는 순간 아차 했습니다.
남편 마음을 아프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순간적으로 치민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해댄 자신이 밉습니다. 이럴수록 더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가족일텐데...
두어 시간쯤 지나서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딘가 산책하면서 울분을 가라앉히고 온 모양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냉랭합니다.
남편은 침묵을 지키며 TV를 보고 있고, 아내는 돌아앉은 채 부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던 남편이 배가 고픈지 주방으로 가 라면을 끓였습니다.
이 때 아내가 일어난 주방에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새로 지어 놓은 밥과 남편이 실직한 이후로는 식탁에 오른 적이 없었던 고기 반찬과 새로 담근 김치, 그리고 좋아하는 미역국으로 상을 차렸습니다.
"라면 먹지 말고 이거 먹어, 집에서 논다고 먹는 게 부실해야 되겠어?"
남편은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말했습니다.
“라면 먹고 배 덜 차면 먹을 게, 아깝잖아 이거 버리지도 못하고..."
그러자 아내가 라면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당기며 말했습니다.
"버리긴 왜 버려, 이리 줘, 내가 먹을게"
아내가 얼른 후루룩 라면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은 다음 남편이 말했습니다.
“내 내일부터 출근할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내의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취직됐어? 집에서만 내내 있더니 어느 새 취직된 거야?"
내가 출근한다 했지. 언제 취직됐다고 했어?
"뭐? 어디로 출근할 건데 그래? "
"에어컨 팍팍 돌아가는 도서관 가련다 왜? 돈도 못 버는데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전기세 낭비하기도 하고 그렇잖아, 도사관에 가서 책도 보고 자료도 찾고 하면서 취직 준비 하게 내가 그 동안 너무 태평했지? 걱정마,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줄 수 있을 거야"
이튼날, 남편은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도서관으로 첫 출근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려고 동전을 찾던 남편은 바지 주머니에서 5만원과 함께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힘내! 곧 좋은 직장 구할 수 있을 거야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사랑해, 기죽지 말고 파이팅 당신의 아내가..."
남편은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눈에는 눈물이 설핏 어렸습니다.
남편은 메모를 다시 곱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는 어깨를 활짝 펴고 뚜벅뚜벅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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