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개구리 울음 속에 사라진 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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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개구리 울음 속에 사라진 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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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찔레순과 삐비

 
   
  ^^^▲ 찔레꽃은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 우리꽃 자생화^^^
 
 

아빠! 찔레순 따 줘"
"찔레순? 너가 찔레순을 어떻게 알아?"
"지난 주 일요일에 아빠가 요 만한 찔레순을 따줬잖아. 그리고 다음 주가 되면 찔레순을 많이 꺾을 수 있다고 말했잖아"
"그래. 이 찔레순이 그렇게 맛이 있든?"
"상큼해"

비음산 계곡 곳곳에는 찔레나무가 많이 있었다. 아직 찔레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찔레나무 가지 곳곳에서는 여린 새순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웃자란 찔레순 몇몇은 이미 찔레순이 아니라 제법 단단한 가시를 매 단 찔레나무 가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빠! 나도 한번 꺾어볼래"
"어~ 조심해야 돼. 잘못 꺾다가 가시에 찔릴 수도 있어. 그리고 찔레나무 근처에는 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
"뱀? 그럼 아빠는 찔레순을 어떻게 꺾어?"
"그러니까 아빠도 조심해서 꺾잖아. 그리고 찔레순을 꺾을 때도 솎아내듯이 이렇게 꺾어야 돼"
"솎아내듯이?"
"그래. 아빠처럼 이렇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찔레순을 꺾어야 한다는 그 말이야. 만약에 찔레순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꺾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자랄 수가 없어, 하며 찔레순을 꺾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빛나의 얼굴에 일순간 그늘이 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껍질을 벗긴 연초록 찔레순을 입에 넣어주자 빛나는 이내 찔레꽃 같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아빠도 먹어, 라며 내가 또 하나 껍질을 벗겨주는 그 파란 찔레순을 내 입에 넣어줬다.

그래. 내가 어릴 적에는 찔레순을 참으로 많이 꺾어 먹었다. 지금은 애써 이곳 비음산 계곡까지 와야 찔레순을 볼 수가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냇가 곳곳에 찔레나무가 무척 많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들판으로 삐비를 뽑으러 가는 길에 찔레순을 참으로 많이 꺾어 먹었다.

 

 
   
  ^^^▲ 우리들이 삐비라고 불렀던 띠
ⓒ 전라도 야생화^^^
 
 

하지만 찔레순도 삐비처럼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또한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아무리 열심히 찔레순을 따먹어도 눈깔사탕처럼 그렇게 달지는 않았다. 그렇게 찔레순을 따다 보면 간혹 뱀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런 때면 우리는 긴 지게 작대기로 그 뱀을 슬슬 건드렸다. 그러면 이내 뱀이 갈라진 혀를 낼름거리며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그 징그러운 허물을 찔레순 가지에 길게 걸쳐둔 채 말이다.

"아빠! 이제 못 둑에 가자"
"왜?"
"삐비도 뽑아서 먹어야지"
"그래? 근데 삐비가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비음산 아래 콩알만한 매실이 조롱조롱 매달린 과수원 곁에는 서너 마지기 남짓한 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 연못은 내가 어릴 적에 가끔 낚시를 하러 다녔던 아주 오래 된 연못이었다. 또한 그 연못은 비음산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었던 탓에 그나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연못이기도 했다.

그 연못 아래에는 다랑이 논과 밭이 계단처럼 층층히 드러누워 내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일부나마 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연못 위, 그러니까 비음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큰 도로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 연못의 주변 환경도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연못과 그 연못 아래 펼쳐진 다랑이 논과 밭들이 당분간은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라는, 그러니까 아직까지 이 일대는 개발계획이 서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 자주 산보를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그곳에 가면 내 어릴 적 고향의 흔적이 제법 많이 남아 있으므로.

진보랏빛 자운영꽃과 토끼풀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라고 있는 그 못둑에는 삐비가 많았다. 그래. 그 못둑에 삐비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지난 해 이맘 때 빛나를 데리고 이곳에 산보를 왔다가 살이 통통하게 찐 삐비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때 처음 삐비를 본 빛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것도 먹는 거야?"
"그럼. 그게 삐비란다"
"삐비? 근데 왜 이름이 삐비야?"
"뽑을 때 삐익, 하는 소리가 나잖아"
"근데 어떻게 먹어?"
"이렇게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오지? 어! 이 삐비는 벌써 셌네"

그래. 그때는 오월 초순이었다. 못둑 아래 서 있는 벚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린 버찌가 마악 빨간색으로 변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때 못둑에서 한웅큼 뽑은 삐비는 이미 먹기에는 늦은 것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삐비는 내가 어릴 때에는 '셌다' 라고 하면서 먹지 않았다. 또한 금새 꽃으로 피어날 때가 된 그런 삐비는 거칠고 맛이 없었다.

그날, 빛나와 내가 그 못둑에 갔을 때 삐비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삐비가 마악 속살을 채우기 위해 뾰쪽한 잎사귀를 열심히 말고 있었다. 이내 빛나의 표정이 뾰루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빛나를 달래기 위해 예쁜 자운영꽃을 몇 송이 꺾기 시작했다. 그때 저쪽 못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빠! 저게 무슨 소리야?"
"가만. 저건 황소개구리가 우는소리야"
"황소개구리?"
"그래. 마치 황소처럼 울잖아. 저 개구리는 외국산 개구리린데, 우리나라 개구리보다 훨씬 더 커. 그리고 이곳에 사는 물고기는 물론이고 뱀까지도 잡아먹어"
"그럼 어떡하지? 아빠!"

그랬다. 그날 나는 황소개구리로 인해 내 어릴 적 추억에서 후다닥 깨어났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비음산 허리를 깎아지르고 있는 저 포크레인과 황소개구리가 닮았다는 생각. 그래.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저 황소개구리와 닥치는 데로 깎아지르는 저 포크레인이 무엇이 다르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어린 날의 아름다운 기억에서 날 깨웠듯이, 저 포크레인 또한 내 어릴 적 고향을 송두리째 깎아버렸지 아니한가. 그래. 어쩌면 내가 작은딸 빛나에게 찔레순을 꺾어주고, 삐비를 뽑아주는 이러한 아름다운 기억조차도 어쩌면 내 세대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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