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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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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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이미 우연성을 말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라스콜리니꼬프’가 우연성에 의해서 살인한 것을 강조했다. 우연성에 의해서 자수를 하고 우연성에 의해서 목격자가 생긴다. 그리고 겁내던 목격자가 스스로 자살하는 것도 ‘라스콜리니꼬프, 입장에서 보면 우연성이다.

모든 것을 우연성으로 풀었다. 그게 죄와 벌의 전부다. 그런데 그것을 명작이라고 읽고서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광호는 그것을 거부했었다. 우연성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것도 우연성이다.

사실과 우연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혼동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다. 어머니를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혼동이 아니다. 우연성은 아주 생각지도 않은 것에서 발견된다. 지식인들은 그것을 무기로 삼고 자기 방어로 쓴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자기 방어는 우연성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괴변을 만들어 냈다. 사람을 죽이고 우연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모순이지만 상황은 그것을 만들어 낸다. 도끼로 사람을 죽인 것은 전적으로 우연성이다. ‘라스콜리니꼬프’와 나는 우연성으로 고리대금업자와 선생님을 도끼로 죽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시는 독후감을 쓰라고 말하지 못했다. 써보았자, 결론이 우연성이고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충돌이 일어났다. 그 충돌은 사제지간에 벽을 만드는 일이 된다. 광호는 우연성이라는 것으로 선생님을 코너로 몰았다. 자기의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괴변이지만 그것을 인정해 가는 선생님을 경멸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워했다.

“부활하려고 하지,”
“부활이요. 예수를 흉내 낸단 말이지요. 정말로 웃기는군요. 부활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요.”
“정신적으로 부활하려고 했어,”
“육체와 정신이 같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지요. 정신만 부활하고 육체는 어디로 가지요. 살인에 대한 대가는 육체가 감당하지,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지 못하면 부활은 반쪽이지요.”
괴변이었다. 사사건건 시비가 일었다.

광호는 그런 주장을 하던 선생님을 우연성으로 죽였다. ‘라스콜리니꼬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그 우연성을 신봉하고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광호는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피식 웃었다. 골방의 축축한 습기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담배를 한가치 꺼내서 물고 불을 붙인다. 다소 머리가 맑아 졌다. 우연성을 신봉한다. 세상사는 모두 우연성으로 이루어진다. 자기가 부활하고 싶어서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우연성에 의해서 그렇게 될 뿐이다.

상규와의 우연성도 자기를 어떻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자, 아무튼 가족을 위해서 그 우연성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리대금업자를 죽였다. 이자놀이는 어떤 사람의 투자를 위한 자본재가 된다. 그 자본재는 또 다른 어떤 창조를 위한 기본 재산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높은 이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다.

착취는 이자놀이 뿐만이 아니다. 여러 곳에서 존재한다. 지주가 노동자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도 착취다. 고리대금업은 돈이라는 매개체로 일하지 않고 무산계급에 있는 자들로부터 착취한다는 점에서 다른 착취보다 더 악랄함이 우선한다.

노인들은 노동력이 없다. 이자수입이 있어야 산다.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미흡하다. 정부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젊은이가 일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다. 일자리가 없는 것은 정부의 잘 못이다. 누구를 죽여야 공평하게 된다는 생각은 이기주의다.

전당포 노파가 죽어야 하는 것은 ‘라스콜리니꼬프’의 이기주의다.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젊은 대학생이 일하지 않고 살인한다는 것은 큰 잘 못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시했다.

신과 인간,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사회 환경과 개인적 도덕의 상관성, 혁명적 사실의 실제적 문제들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고 그것은 올바른 가치관 속에서만 정의가 있다. 올바른 가치관은 늘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합리화로 이용한다. 자기 방어는 자기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범인>과 <비범인>도 존재하게 된다. <비범인>은 역사상 위대한 공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개인을 넘어선 세계사적인 과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무수한 인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자들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무엇인가, 범인은 현존하는 상식과 질서에 순종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떠한 환경에도 기존의 도덕률을 초월한 능력이 없다. 단지 세계를 보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이다.

누가 더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헷갈린다. <비범인>은 능력이라는 것으로 <범인>이 되지 않는다. 그 반대로 범인들은 능력이 없어서 범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로 모순이다.

소수의 <비범인>이 세계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거기에 절대적 권력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썩은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모든 관력이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스꼴라니꼬프’는 고리대금업자가 사회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한다고 죽였다. 얼마 더 살지 못할 늙은 노파다. 스스로 비범인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과 타인들에게 자신이 <비범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것이 형이상학이고 철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면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회의와 부조리의 연속이다. 살인을 하고 후회하지만 후회한다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후회하면서 왜 순박한 자기의 연인을 또다시 살해하는가, 그것은 모순 속에서 또 다른 ‘모순’이지만 ‘우연성’이라고 주장한다.

‘완전 범죄’를 노렸다. 완전 범죄는 없다. 목격자라고 해서 죽어야 한다면 살인 사건이 생길 대마다 생기는 많은 목격자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쫓기는 나날을 보내게 되지만 죄책감이 없는 것도 모순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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