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의 좌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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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의 좌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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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산업혁명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 - ①

 
   
  ^^^▲ 산업혁명과 식량안보를 위해 농업선진화도 함께 노력한 박정희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직후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대한 수립지시를 내리면서 그 목적을 "외화절약","고용증대", "국민소득증대"라고 했다. 이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 기본 전략 이었는데 1964년 "외화절약"은 「수출제일주의」로 변경됐다. 이후 "수출", "고용증대", "소득증대"의 3대지주가 우리나라의 국가 경영 원리가 된다. 그러나 이 3가지 지주는 삼미일체(三味一體), 즉 서로간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들어가는 말

제4장에서는 테크노크라트가 엔지니어링 작업 즉 공학적 접근법(Engineering Approach)을 활용해가며 거대한 국가사업인 석유화학이나 종합제철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공학적 접근법(엔지니어링 어프로치)이라는 것은 세계 제 2차대전 후 공장이 마구 세워질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거대한 화학공장을 계획할 때는 꼭 쓰이는 방법이 되었다.

기본 원리는<어떤 공장을 건설할 때 어떤 방법을 쓰면 가장 합리적이고, 이윤이 많이 나오며, 위험부담(risk)이 적게 되는냐 하는 문제>를 단계적으로 각종 자료와 숫자로 정립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시간적 개념도 포함된다. 그 나라의 실정, 정부의 방침도 생각해야 한다.

 

 
   
  ^^^^^^▲ 산업혁명과 식량안보를 위해 농업선진화도 함께 노력한 박정희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직후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대한 수립지시를 내리면서 그 목적을 "외화절약","고용증대", "국민소득증대"라고 했다. 이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 기본 전략 이었는데 1964년 "외화절약"은 「수출제일주의」로 변경됐다. 이후 "수출", "고용증대", "소득증대"의 3대지주가 우리나라의 국가 경영 원리가 된다. 그러나 이 3가지 지주는 삼미일체(三味一體), 즉 서로간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우선순위도 따져야 하고 공법(工法), 규모(規模), 공기(工期), 단계별 확장계획도 조사·연구되어야 한다. 이윤이 가장 중요시되니 각종 경제성도 따져야 한다.

투자비, 투자배분, 생산비, 운영자금의 흐름, 국제 가격동향, 시장성에 대한 장기적 추정이 계산되어야 하고 매해마다 이윤이 나와야 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수단도 강구되어야 하고 각종 위험부담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종합적이고 단계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공학적 접근법이다.

필자는 1960~70년대 공직에서 공업정책이나 국토개발계획을 입안할 때 이 기법 즉,「엔지니어링 어프로치」를 활용해서 큰 효과를 보았다.

즉 공장건설에 활용되는 기법을 국가경제 건설계획을 수립하는데 활용했다는 뜻이다.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는 「이미지」와 「비전」, 「세부적인 실천계획」등의 단계가 있다(왼쪽 도표 참조).

여기서 「이미지」란 것은, 주어진 과제가 성취되었을 때, 어떠한 형태가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조감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비전」이란, 그 조감도를 이룩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제시가 된다. 그 다음 단계가 구체적인 실천계획의 수립이다.

우선 첫 단계가 「이미지(Image)」의 수립인데, 이 작업이 잘못되면 원리(原理)에 어긋나는 사업계획이 되어버려 성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지 설정단계에서는 필요한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가 「비전」수립인데 이 단계를 정책수립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에서는 시간관념은 필요치 않다. 가능성만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실을 기초로 해서 수량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의욕이나 희망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흔들리지 않는 원칙(原則)을 정해놓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가 6하원칙에 의한 실시계획 작성인데 엔지니어링 기법이 세부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제 1 단계 - 이미지(Image)의 설정

우리나라의 국가 기본전략에 대해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를 적용해 보자.

이미 설명한대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국민에게 「쌀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망적인 생활고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약속은 표현만 다른 뿐 똑같은 내용이다.

즉 박 대통령은 현재의 생활고를 강조했고 김 주석은 미래의 양상을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한 문장으로 묶으면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절망적인 생활고를 해결해서 쌀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살게 해주겠다」는 문장이 된다.

이것이 해방 후 1960년대가 될 때까지 우리민족이 모두 바라던 소망이요, 국가통치자가 목표로 하던 국가 기본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목표는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의 제1단계 작업인 "이미지 설정"의 요건으로 유효할 수 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대가 된 지금에 와서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선 북한에서는 의식주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식량부족 문제는 오히려 악화돼서 수백만의 아사자까지 발생했다. 결국 김일성 주석의 약속은 아직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 기본전략 수립에 있어 "이미지 설정"에 유효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절망적인 생활고를 해결하겠다"던가 "쌀밥에 고깃국 먹게 해준다"라는 구호는 이미 옛말이거나 세계 최빈국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따라서 국가기본전략으로는 활용할 수가 없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Image)" 설정 시에는 문제의 핵심을 깊이 연구·검토해서 그 원리(原理)부터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처지 - 좌표(座標)

다음에는 이"원리"를 기초로 해서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의 제1단계 작업인 "이미지"를 설정하기로 한다. 다만 「수출제일주의」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으므로 나머지 과제, 즉 「고용증대와 소득증대」에 대해서 "이미지"를 설정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가 행정상의 원리 · 원칙이란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는데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과거는 현재의 씨앗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시대적 변천과정과 현 처지(座標)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1910년까지 계속된 조선조. ▷그 후 일본 식민지시대. 이때 일본식 현대문물이 쏟아져 들어와서 혁명적 변혁을 가했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군 군정시대. ▷이어서 미군지휘 하에 6.25 한국전쟁, ▷휴전 후는 미국주둔과 미국 원조시대.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서양 문물이 한국에 정착됐다.

19세기까지 지속된 우리나라의 문화, 풍습, 정치, 경제, 사회의 뿌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본식과 미국식이 접목돼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역사는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경제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건설 및 운영의 주역은 한국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한국인은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들의 GNP를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나라」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를 활용해 가면서 「한국인은 무엇인가?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됐다. 파악이 잘 안되면 검증까지 해가며 확인작업을 해 나갔다.
(註: 이 글(본 홈페이지 『제5장∼제6장』)에서 필자가 고민했던 몇 가지 예를 든다. <1> 어떻게 하면 초등학교 출신의 여공을 훈련시켜 수출전사로 활용할 수 있느냐? <2> "한국인의 품성에는 끈기가 없고 적당주의 때문에 정밀작업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밀기계 공업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3> 열사(熱砂)의 땅에서 한국인이 작업을 할 수 있느냐? 등이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를 전부 조사 · 연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나라의 처지를 육감적으로 나마 피부로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뜻에서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는 한국사람이 해야지 외국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 둔다.

이 글에서는 조선조 시대의 상공업과 1960년대의 농업실태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러한 좌표(座標) 위에서 한국인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러한 좌표는 내일을 비추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고쳐야 할 점은 하루 속히 시정해야 한다.

유교와 사농공상(士農工商)

조선조까지는 유교가 우리나라의 정치 메커니즘이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제도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다. 당시는 농자가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시대. 농사일 외에는 취직자리나 국민소득이 거의 없었던 때이다. 그래서 가뭄이나 홍수는 나라 전체의 재앙이었다.

성종대왕 시절에 일어났던 실화 한 토막(註: 성종(成宗) 성덕기. 洪木春 著).

 

 
   
     
 

이 글에서 보다시피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왕(王)은 완전히 죄인이었다. 국민을 위한다는 면에서는 성군(聖君)일지 모르나 유교 정치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목민관(牧民官)은 당시의 행정관인데 이들 역시 자숙자계(自肅自戒)하고 기우제나 지내는 것밖에 대처 못하는 무능한 존재였다. 과거(科擧)시험문제에 「보릿고개를 없애는 방안」,「실업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방안」을 출제했더라면 어떤 답안이 나왔을까?

이상이 20세기 초까지의 우리나라 행정 실태이다. 이에 반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중상(重商)제도 즉 공업과 상업발전에 역점을 두었다. 우선 19세기의 우리나라 상공업을 살펴보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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