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나 서나 가고픈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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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가고픈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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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6> 이상국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딸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다

이제는 그 부드러운 풀 이름들도 거반 잊었지만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가 생각난다
어떤 날 저녁에는
꼴짐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우는 소울음 소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 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가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 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 소가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쇠뜨기'
ⓒ 우리꽃 자생화^^^
 
 

이마를 살그머니 스치는 바람에서도 연분홍 꽃내음이 납니다. 메마른 가지마다 진초록 물이 스며들어 꽃몽오리를 동글동글 매달고 있습니다. 파아란 하늘에는 새 봄에 태어나는 새 생명의 보금자리를 꾸미려는 듯 새털 같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꽃몽오리 진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있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마치 고향집 시냇물이 티없이 흘러가는 듯 그렇게 맑게 울려 퍼집니다. 도심 한구석 빈 공터에서 밭이랑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떨리는 손끝에서 고향의 흙내음이 물씬 풍겨옵니다. 어디선가 봄을 부르는 뻐꾸기의 정겨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앉으나 서나 가고픈 내 고향. 닭장처럼 빼곡히 들어차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게 그어진 도로와 그 도로변이 부끄러운듯 마른가지로 감추고 있는 가로수들의 먼지 낀 손가락에서도 파란 생명의 물이 오르고 있습니다.

"벌써 오래 되었다/부엌 옆에 마구간 딸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나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다" 고 고백하는 시인. 시인도 이제 그때 그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때 그 소울음 같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도시로 올라와 이제는 그 배고픔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게 큰 자랑이나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 지 오래인데도/우리 소가 잘 먹던" 그런 풀밭을 도심에서 문득 만나면 그 자리에 앉아 낫으로 "한짐 베어 지고" 아버지가 계시는 그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지게를 버리고, 소를 팔고 도시로 올라오던 그날부터.

그러나 오늘도 간혹 도심지에 휴지처럼 버려진 텃밭에서 쑥쑥 자라나는 새파란 풀을 바라보면 고향집 소가 생각납니다. 소풀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긴 그림자를 끌며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의 넉넉한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기다리며 음메~ 하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우는" 우리 집 암소의 동그란 눈빛이 떠오릅니다.

앉으나 서나 가고픈 내 고향... 지금의 내 고향은 대체 어디쯤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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