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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영 최병익 씨 ⓒ 뉴스타운 문상철^^^ | ||
마음 수향의 도구로 활용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서예(書藝)가 현대인들에게 정신수향 뿐만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예절(禮節)의 장으로 각광 받고 있다.
향토 지킴이를 자처하며 서원과 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남영(南嶺)(최병익 www.mukeak.com)은 붓글씨에 살고 붓글씨에 죽는다고 할 만큼 오직 서예(書藝)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서원에는 방학 때만 되면 경주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울산 등 인근지역을 비 룻, 전국 각지에서 남영선생의 명성을 듣고 세예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선비가 글을 짓고 동시에 글씨를 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 행위의 정도(程度)나 바라기에 있어서는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세월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선비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오직 시대적인 상황이라고만 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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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영 서예도원 전경 ⓒ 뉴스타운 문상철^^^ | ||
또 서예는 고도의 정신 집중과 많은 노력에 의해 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항상 또 다른 상황과 어려움이 변개(變改) 한다는 것. 이 물음에는 일반인들은 물론 서예가들도 경우에 따라서 여러가지 산개(散開)된 내용으로 표현 할 수가 있다.
書法가들도 대답하는 입장의 분석적인 기호(嗜好)와 작가의 서사 능력, 그리고 작가의 학문적 깊이와 배경 등 세 가지의 함수 관계 때문에 답변의 양식을 일정한 틀에 짝 맞추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글씨의 작품에는 재료와 형태 등내용의 다변적인 상황이 항존(恒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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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영 선생이 직접 그린 색채화 ⓒ 뉴스타운 문상철^^^ | ||
남영은 천년 고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9세 때부터 조부(祖父)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경주중고와 동국대 한문교육 석사학위를 획득하고 중국 절강 미술 학원에서 서법 전공을 했다.
남영선생은 “우리의 붓글씨는 참 다운 삶을 위해 인성과 인품뿐만 아니고 혼신을 다하는 고도의 정신 집중력을 요구하는 자신과의 인내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 붓글씨는 단순한 세예의 예절을 떠나 우리의 것을 지키는 힘도 함께 가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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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원 원생들에게 마음의 기초를 설명하고 있는 남영 선생 ⓒ 뉴스타운 문상철^^^ | ||
또 한국 서예계의 기린아로 촉망받으면서 97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서울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 남영선생의 글씨를 보기위한 초대전이 열어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의 각광 받은 열기와 국내 전시회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의 세계로 진출했지만 더 많은 공부와 후진 양성을 위해 고향 경주에서 학교와 서원을 오가며 아직도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서예도원은 서예에 관한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는 작은 박물관 같은 분위기로 서원이 꾸며져 있어 이곳에서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서예공부에만 집중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남영서원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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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전시를 마치고 천안문 앞에서 ⓒ 뉴스타운 문상철^^^ | ||
또한 중국 전시회에서의 한 평론가는 남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영의 서예술은 한마디로 맑은 시골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호소력이 강하고 질박(質朴)한 조형언어(造形言語)의 표현이다"고 설명하면서 "그의 작품에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도식화(圖式化)된 꾸밈없는 글씨의 근간이 살아 있고, 또 형태의 전개방법이 전혀 다른 추사(秋史)의 글꼴을 즐기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그것을 구속받기 싫은 자유인의 표현과 초점에 진솔함이 담겨 있는 생활철학을 바로 읽게 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남영은 다양한 서체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을 위해 끝임 없이 고전기준의 일반적인 서사(書寫)에서 그의 예술성은 자유주의적 표현인 문자와 자연이 서로 뒤엉켜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글꼴로 진정한 예술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또 그는 누구로부터 제한(制限)도 거부하고, 오르지 자신의 흥(興)과 학문적인 여유(餘裕)에서 진솔한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남들과 다른 점을 갖고 있다는 것.
남영의 작품의 선문(選文)도 별스럽다. 전문 서체를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볼거리를 다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어려서적부터 한학을 전공한 것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글을 더 큰 세계에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비의 예술은 반드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節)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예술철학(藝術哲學)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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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원 원생들과 함께 ⓒ 뉴스타운 문상철^^^ | ||
남영의 글씨 형태는 규정화란 굳이 인위적으로 제한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생활에서부터 자기주장을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작품 모두가 전통의 골격에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철저한 전통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표현한 것과 제약을 테두리로 작가의 표현의 한계를 설정한다면 진정 개성(個性)이 있는 작품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
그의 서법예술은 폭마다 글씨·그림·전각 등의 내리쓴 전·예·해·행·초서의 서체는 비첩필적으로 아주 큰 기운이 깔려 있는 隸書풍 최고의 작품으로 융합해 자신의 창작 서풍이며, 석문·장천·예기·구성 궁예천명을 장기간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중국의 상하이시 서가협회 상무부 주석 겸 비서장 왕위평이 평하기를 "최병익선생은 전인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만족치 못하며, 모든 작품에 혼을 불어넣고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며 "새로움을 연구 탐색하는 이러한 추구 정신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험한 경지를 헤쳐 나가는 서법이 서풍 면모를 형성하게 됨은 하늘의 자질로 인정함이다"고 말하고 있다.
남영의 글씨와 그림은 한바탕 어울림을 위해 맞비벼 놓은 작품들로 서예 술에 관한 심리적 고뇌를 글자의 무분별한 형태로 전환 표현한 것이며, 그러면서도 홍매(紅梅)의 상큼함과, 난량비의 서문의 경우는 세련미 넘치는 서간문 형식의 글자꼴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목간의 자평 펼침과, 일기(一氣)에 휘호된 산수화의 묵적(墨跡)은 서예를 꿰뚤어 보고 있음으로써 휘호될 수 있는 남영식(南嶺式)의 담백한 조형 언어라고 한다.
스스로의 자유로운 글씨 형태를 좋아하는 그는 누실명(陋室銘)의 자유분방 한 행서의 무차별적 전개와 전통의 글씨꼴에 구간(區間)의 흐트러진 무질서에서 자유로운 강한 맛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또 남영은 추사 선생의 서흔(書痕)에 필적 할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적당히 감미한 서체에서 서사 능력을 개관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전통 서법과는 동 떨어진 글씨체로 다소 낯설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작가의 꾸며대지 않는 솔직함으로 대신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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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각 서예 전시실 전경 ⓒ 뉴스타운 문상철^^^ | ||
그러나 존경하는 분들의 글씨꼴이나 감명 받은 법첩은 외에로 받아들이며, 자기화(自己化)에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고 이러한 것은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는 정도를 지키며 예술의 기본적 근간을 높이 쌓고 있다는 그러한 점에서 남영 스스로는 書藝술 그 자체만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작가'로 각인 되어 오고 있다.
또 그는 '글씨 잘 쓰고 못 쓰는 것은 팔자소관'이라는 기치로 일관하고 있는 그의 견해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차이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고 그의 때 묻지 않은 진솔함이 시골 향기 물씬 피어나는 글씨꼴은 언제라도 함께 느낄 수 있는 풋풋한 마음의 고향 같은 친근감에 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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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박식하시고 미소달마 고유권한으로 특허도 되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