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에 대한 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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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렁이에 대한 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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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승려로 시작한 지 무상한 세월은 50년 가까이 흘러 버렸다. 만행(萬行)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있는 전국 사찰을 찾으면 반갑게 손을 잡고 웃으며 반기는 선배와 도반들이 많았지만, 이제 선배스님들은 대부분 입적하여 세상을 떠났고, 도반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나서 나는 이제 만행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산사에서 많은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그 가운데 아직도 고찰의 산사(山寺)에 사주(巳主)라는 능구렁이가 많이 살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능구렁이는 호랑이처럼 몸의 색깔이 불근 색에 검은 점으로 덮혀 있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능구렁이는 보통 낮에는 담당 건물의 천정에 은신하여 좀체 몸을 보여주지 않는다. 야행성(夜行性)같이 사찰의 승려들이 코를 골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 능구렁이는 은신처에서 스르르 나와 개구리 쥐 등을 잡아먹고 승려가 새벽 예불을 시작하는 도량석(道場釋)을 할 때쯤 황급히 고찰의 담당지역인 은신처로 숨어 마치 선정을 닦듯 또와리를 틀고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능구렁이도 서열이 있는 것같았다. 몸이 크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능구렁이는 고찰의 큰 건물 천정에 은신해 있고, 차례로 작은 건물을 담당지역으로 은신하고 있었다. 어떤 능구렁이는 고탑(古塔)속에 은신해 있었다. 여름날 시원한 비가 쏱아지는 초저녘에 마치 빗물로 목욕하듯 능구렁이는 고탑앞에 나와서 비를 맞고 있다가 나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황급히 고탑속으로 사라졌다. 졸개같은 작은 능구렁이는 목조 건물의 화장실 천정에 은신하여 화장실에 대소변을 보는 남녀들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주장의 근거는 내가 어느 날 인부들을 시켜 목조 화장실을 갑자기 부수고 새로운 화장실을 만들려는 데, 예상했던 대로 몸이 작은 졸개 능구렁이가 황급히 땅에 추락하듯 떨어져 달아나면서 “예고도 않고 무슨 짓이냐”는 듯 나를 원망하듯 힐끗 보고는 산속으로 사라졌다. 풀 숲으로 사라지는 능구렁이에게 크게 꾸짖었다. “다시는 화장실에서 훔쳐 보지마!”

능구렁이는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벌이는 짓은 산사의 장독이 있는 돌로 쌓은 돌담 위에 커따란 허물을 벗어놓고 사라졌다. 기와에 돌담이 있는 곳에는 밤사이 돌담에 의지하여 크고 작은 허물을 벗어 놓은 것이 보였다.

능구렁이는 왜 그럴까? 왜 고찰의 대소 전각마다 지붕속에 담당 요원처럼 은신(隱身)하여 전각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감시하듯 훔쳐보고 있다는 것인가? 스스로 임무를 다하는 것인가. 신에게 부여받은 소임을 다하는 것인가?

내가 승려 초짜일 때, 고인이 된 선운사의 존경하는 원로인 향엄(香嚴)노스님은 능구렁이만 발견하면 이렇게 꾸짖었다. “수도승이 되어 수도를 잘 할 것이지, 어찌 돈에 탐욕을 부리다가 업보의 몸을 받아 부처님 도량에 추한 몸을 드러 내는가! 당장 사라져라!” 능구렁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순식간에 스르르 사라졌다. 향엄스님의 주장인즉 사찰에서 배회하는 능구렁이는 전생에 수도승으로 수도는 하지 않고 부처팔아 돈만 챙긴 탐욕승이 죽어 업보의 몸을 받아 사찰을 배회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초짜여서 나보고 중노릇 잘하라는 향엄노스님의 방편법문을 액면 그대로 믿고 단단히 겁을 먹은 적이 있었다.

훗날 나이가 들어 알고보니 능구렁이는 한국의 사찰에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능구렁이는 일본, 중국, 몽고, 태국, 히말라야 동부 등지에 분포하여 활동하는 뱀이었다. 구렁이를 설명하는 책자에는 능구렁이(Dinodon rufozonatus rufozonatus),영명 : Red Banded Odd-tooth Snake 라고 씌어있고, 몸길이 : 70∼120cm. 능구리, 능사 라고도 한다. 또, 능구렁이를 사주(巳主)라고도 했다. 뱀의 왕이라는 것이다. 능구렁이는 다른 뱀을 잡아 먹는 다는 설도 전해오지만 나는 아직 목도하지 못하였다.

나는 당시 주지로 있는 무위사(無爲寺)에서 능구렁이를 억울하게 죽게 한 과오의 추억이 있다.

당시 국보 13호 극락보전 오른 쪽에는 도장(盜葬)한 것 같이 보이는 봉분이 있었다. 나는 그 봉분이 국보13호 지척간에 있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봉분을 파내어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고, 포크레인을 불렀다. 저녘 무렵 중형의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극락보전 옆에 정지했다. 나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다음날 아침 9시부터 봉분을 없애기를 주문했다. 나는 봉분속에 사는 생명들이 밤사이 피신하라는 배려에서 였다.

굉음을 울리며 봉분을 파헤치던 포크레인 기사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불렀다. 나는 달려가 보니 봉분속에 엄청나게 큰 능구렁이의 목쪽이 포크레인에 찍혀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피흘리는 능구렁이를 향해 꾸짖듯이 말했다. “어젯밤 피신하라는 기회를 주었잖아?. 어쩌자는 거야? 어젯밤 왜 피하지 않은 것인가? 포크레인과 맞서 보겠다는 거야? 왜?”

나는 긴 장대로 능구렁이를 건져 탑 옆의 시식대(施食臺)의 바위에 올려놓고 “네가 죽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책임이야, 알았어?”하고 투덜 거렸지만, 피흘리는 능구렁이는 원망하듯 보더니 고개를 떨구어 죽었다. 나는 왕생극락을 비는 염불을 해주었다.

나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외쳐 말하였다. “여보게 이녀석이 죽음을 불사하고 봉분을 지키려는 것을 보니 봉분에는 보물이 있는 것 같네. 보물이 상하지 않도록 살살 파보게. 누우런 황금이 다량으로 나올지 모르니까.”

과연 포크레인으로 살살 봉분을 파보니 황금이 아닌 황금빛이 나는 파불상(破佛像)들이 무수히 발굴되었다. 어느 틈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파불상에 사진을 찍어 대고 경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능구렁이는 황금빛 파불상을 사수하는 수호자 였다.

관광객의 신고로 도청의 문화재 전문위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군청과 경찰서에도 관계자들이 다투어 달려왔다. 가까운 목포시의 MBC TV 등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들이 TV 카메라를 들고 들이닥쳤다. 문화재 전문위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기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잡은 듯 근거없는 주장을 하였다.

파불상은 조선 태조 초(初)의 불상인데 포크레인으로 부서진 것 같고, 국보 13호 지역은 문화재 보호지역인데 당국의 승인없이 파헤친 것은 중대한 과오라며 나를 맹비난 하였다. 언론사의 기자들은 국보 13호 주변에서 보물급 문화재들을 당국의 공식 승인도 없이 도굴하듯 발굴하였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황당한 일이 TV 방송에서 벌어졌다. "발굴현장에서 다수의 보물급 금불상이 나왔는데 주지가 빼돌리고 파불상만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언론은 이렇게 주장했다. “국보 13호 옆에서 금불상이 일곱 개나 나왔는데 그 불상을 귀돋힌 이무기가 지키고 있었고, 주지인 법철스님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포크레인으로 이무기를 죽이고 금불상을 가로채 빼돌렸다.”는 주장의 입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찰서 수사과에서 불렀다.

나는 졸지에 경찰과 언론, 신도들에게 “나는 금불상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수없이 해명을 해야 했다. 나는 엄중한 조사를 받았고, 경찰서에서는 가로챈 금불상을 내놓으라고 윽박 질렀다.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였다.

조계종 총무원에서도 긴급 소환령이 떨어졌다. 나는 포크레인 기사로부터 확인서를 들고 총무원을 향해 상경하여 해명을 하고 있는 시간에 일부 방송 언론은 “무위사 주지가 금불상들을 걸망에 담아 도주 중”이라는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도 민완형사들이 재빨리 출동하였고, 체포는 시간 문제라는 것이었다. 목포 MBC TV 기자는 “무위사에서 죽은 구렁이는 귀돋힌 구렁이로서 사실은 구렁이가 죽었다는 것은 주지의 거짓말이고, 구렁이를 일본에 밀반출 하려고 대형 상자에 숨겨놓았다”는 설의 의혹제기도 하였다. 일부 기자는 나에게 귀돋힌 구렁이를 공개하라고 따지듯 하였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비명횡사한 능구렁이가 나에게 보복하는 것같았다. 어느 시골 촌노는 국보 13호를 수호하는 귀돋힌 구렁이를 일본국에 밀매(密賣)하는 짓은 매국노(賣國奴)와 다를게 없다고 나를 찾아와 강력히 항의하기도 하였다.

나는 능구렁이가 고찰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의 취미는 시골에서 망해 버린 부자집 터를 찾는 것이었다. 어느 날 천석군의 집을 찾아 나서고, 동네 90이 넘은 남자 노인에게 과일을 선물하고 천석군에 대해 물어보았다. 예전에 천석군은 부인이 셋이었고, 기거하는 기와집 전각이 달랐다고 하였다.

어느 날, 큰 능구렁이가 곳간에서 나와 산쪽으로 도망을 가는 모습이 보여서 마을의 화제였다는 것이다. 이틀 후 천석군의 집은 방화로 여겨지는 대형화재가 일어났고, 늙은 천석군과 총애하는 부인이 화재로 타죽었다는 것이었다. 살아 남은 부인 둘이서 박이 터지는 재산 싸움을 벌이고, 며칠 후 재산 분할을 한 후 부인들은 각기 소생을 데리고 집을 떠나 갔다는 것이었다.

내가 천석군의 집을 찾았을 때 천석군의 집은 화재로 사라 졌거나, 남은 건물은 붕괴되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천석군의 전성기는 큰 능구렁이가 밤에 수호자 노릇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키던 집이 화재가 발생하고 망할 것을 미리 알고 도주한 큰 능구렁이는 산속의 어느 큰 바위 밑에서 아직도 살아 있을까?

끝으로 나는 아직도 뱀들의 왕이라는 능구렁이가 왜 기와집을 좋아하고 지킴이 노릇을 하는 건지 아직도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독자 가운데 능구렁이의 속셈을 환히 안다면 나의 의혹을 해소하여 주기 바란다.

대개의 고찰은 햇볕이 많이 드는 남향이어서 능구렁이가 전각 담당 노릇을 한다는 설도 있고, 탐욕스러운 승려의 업보라는 설도 있다. 나는 지금도 있지도 않은 금불상과 귀돋힌 구렁이에 대해 진실을 말해달라는 싱거운 남녀의 독촉을 받기도 한다.

차제에 나는 부탁한다. 혹여 인간의 정력과 보신에 좋다는 능구렁이를 잡으려 쇠로 만든 집게와 부대자루를 들고 고찰을 찾지 말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능구렁이의 본부가 고찰이라는 정보 제공을 내가 속세에 제공했다고 “금불상 사건”같이 능구렁이의 괴이한 보복이 또 재연 되어서는 절대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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