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살문을 들어서며
덕수궁이나 창경궁을 들어서면 ‘금천교’라는 작은 다리가 먼저 보인다. ‘금하는 시내’란 뜻의 이 다리는 이제부터는 특별한 장소가 시작된다는 무언의 경고와도 같다 . 능역(왕의 능이 있는 장소)으로 들어가기 위해 처음 마주치게 되는 홍살문은 붉은 채색을 보여준다. 홍살문은 금천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홍살문 안으로 들어가 보자.
![]() | ||
| ^^^▲ 홍살문신성한 공간임을 알려주는 붉은 칠을 한 문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판위왕이 가마에서 내려 절하는 곳, 홍살문 들어서자 바로 오른편에 있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어도와 신도왼쪽이 조금 낮게 보이는 어도(왕이 가는길), 오른쪽은 신도(혼령이 다니는 길)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어도와 신도 그리고 정자각어도와 신도에서 걸어 정자각까지 갈수있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정자각선왕에게 제사지내는 곳, 정자각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검은 돌정자각 위 바닥에 놓여진 자연스런 검은돌, 주변에는 박석들이 박혀있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비각과 수복방왼쪽은 능에 세우는 비각을 모신곳, 오른쪽은 능을 관리하고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수복방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신계와 동계왼쪽이 혼령이 다니는 신계. 오른쪽 계단은 왕과 제관이 다니는 동계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서계정자각 왼편에 있는 계단은 서계. 축관이 이곳으로 내려가 축문을 태운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소전대축문을 태우는 소전대라는 곳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정자각 뒤편 신로정자각 뒤편에서 본 신로. 이길은 혼령이 봉분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가도록 만든 상징적인 길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성종능침 길성종능침으로 올라가는 길에 왼편으론 고적한 작은 공원이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성종 능침으로 가보자
정자각 뒤편에 서서 신로를 따라가면 바로 앞쪽으로 흙더미로 만들었다는 ‘능원’인 작은 동산(사초지)이 보인다. 이 능원 위에 성종의 능침(봉분, 산소, 분상)이 있다.
능침은 개방하는 시간이 있다. 하루 세 번 11, 2, 4시에 있다. 내가 방문했을때는 4시였고 그때는 공익근무요원 2명이 함께했다. 대략 30분정도의 시간을 허락해준다. 사진 찍고 자세히 둘러보기에는 한참 부족한 시간이다. 사진속 모습으로 좀더 다가가 찬찬히 눈여겨보자. 미술작품을 보는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가 보자.
![]() | ||
| ^^^▲ 성종능상성종능상 뒤편으로 호텔이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병풍석과 난간석안쪽이 병풍석, 바같쪽은 난간석이라 한다. 능상 아래를 둘러싼 병풍석에는 12방위에 맞춰 튀어나온 돌들이 있고 십이지신상과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난간석은 능상 주위를 난간처럼 둘러싼 석물이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ㄷ'자 곡장능상를 중심으로 ㄷ자형태로 곡장이란 담장이 있다 석호와 석양이 바같쪽을 응시하고있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혼유석혼령이 쉬는 장소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혼유석 돌기둥혼유석아래 돌기둥에 귀신상이 보인다. 약령을 쫓아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망주석바닥에 보이는 망주석이 앞쪽과 뒤편으로 두줄 보인다. 능침의 경계표시로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장명등선왕의 명복을 비는 장명등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신로신로를 따라 작은 동산(사초지)이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정현왕후능도 둘러보자
성종 능침에서 내려와 앞을 바라다 본다.
몇몇 벤치도 있고 나무도 적당히 우거진 작은 공원같은 공간이 보였다.
성종 능침에서는 동쪽으로 이 공원에서는 북쪽을 응시보면 역시 성종능침 때처럼 작은 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동산앞으로 만들어져 있는 신로를 따라간다. 그리고 오른쪽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가면 성종의 제 2 계비 정현왕후의 능을 볼수있다.
성종과 왕비의 능이 이런식으로 떨어져 조성된 경우를 '동원이강릉'이라한다.
능침안으로 들어갈수는 없지만 충분히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정현왕후는 중종 25년(1530) 8월 22일에 향년 69세로 경복궁에서 돌아가셨다. 성종이 승하하고 나서 36년을 더 산 셈이다. 성종능침과 비교해 차이점이 있는지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자.
![]() | ||
| ^^^▲ 성종의 제 2 계비 봉분정현왕후의 능, 병풍석이 없어 왜소해 보인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왕비의 산소병풍석을 제외한 나머지 조성은 똑같아 보였지만 왠지 소박해보였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 | ||
| ^^^▲ 과거 재실과거의 재실모습(선릉 공사현장에서) 2005년 10월 19일까지 보수 마무리한다고 한다 ⓒ 뉴스타운 김신일^^^ | ||
성종에 대하여
성종 재위기간은 25년. 성종은 38세(1494년)에 창덕궁에서 승하한다. 13세에 왕에 즉위했다. 그래서 세조의 비 정희대비가 7년간 수렴청정(선왕비가 정사를 돌봐주는 제도)을 하였다.
성종은 세종에 버금가는 문화의 꽃을 피운 왕으로 기억되지만 능침에 초록색 이끼가 낀 모습을 보며 처음 이곳이 조성되었을 당시를 회상해본다.
왕이 승하하면 먼저 왕이 묻힐 곳을 정하는 곳이 택지며 이는 중요한 일이다. 다음으로 정해진 장소에 능역을 조성하는 작업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3개월에서 5개월에 이른다고 한다. 동원 인력도 6천에서 9천에 이른다한다. 당시의 조선의 인구수로 생각해 보아도 엄청난 국가적 대사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왕의 시신은 어떻게 보관하는 것일까?
2005년의 선릉
지하철 2호선 선릉 역에서 8번 출구로 나와서 약 150미터정도 직선으로 걸어가면 선릉입구가 보인다. 걸어가면서 점차 도심 속의 녹지, 우거진 숲이 보일 것이다. 서울에서 최고의 땅, 강남구 삼성동에 성종이 계신 셈이다.
그래서 성종은 행복했을까? 임진왜란 당시 선릉은 왜병에 의해 능침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적 아픔이 있는 선릉을 지하철로 오가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선릉이 누구의 능인지는 알고 있을까?
선릉을 감싸고 있는 철조망 담장, 참으로 보기 싫은 명물(?)이다. 경복궁을 철조망 담장으로 만들었다면 보기가 어떠했을까? 성종능침 병풍석에 갈라진 틈을 시멘트로 복구해 놓은 것은 그렇다 쳐도 삼릉공원(1979년 7월 4일)으로 선릉을 지정한 서울시의 행정은 또 무엇인가? 현재 선릉은 재실, 행랑채 일곽 보수공사중이다.(위의 사진은 과거의 재실 풍경이다.)
역사의 가정과 마지막 의문들
의경세자가 20세에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세조(수양대군) 다음으로 왕이 된 예종(의경세자 동생)이 14개월 만에 승하하지만 않았다면 성종(자산군)은 결코 왕이 될 수 없었을것이다.
성종은 제 1계비 윤씨(연산군의 모)를 폐비시키고 나중엔 사사시키기에 이른다. “향후 100년간은 누구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말라” 당부 했지만, 역사는 그것을 거부했고 연산군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엄청난 비극의 소용돌이가 탄생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성종이 계비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사시키지만 않았어도 연산군과 중종반정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다른 길을 걸어갔을것이다.
수렴청정 7년, 재위 25년, 38세에 승하한 성종은 3명의 왕비와 8명의 후궁에게서 16명의 왕자와 12명의 공주를 두었다. 성종 능침이 있는 작은 동산쪽을 바라보며 “부부관계는 왕의 수명과 정말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까?”란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처음 성종 능침을 보며 무섭던 생각에서 이제 조금이라도 친근해졌다면 당신도 나처럼 '조선 왕릉에 미치는 길'로 한발 들어선 것 일지도 모른다. 조선 왕릉, 그 죽음의 문화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색다른 왕릉의 향기를 앞으로 연재를 통해 당신과 계속 느껴 보도록 해보자.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