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동요> 관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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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동요> 관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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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새로운 역사인식의 실험실이다

^^^▲ 서동역의 조현재과 선화공주역의 이보영
ⓒ SBS^^^

역사극은 항상 세가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재미와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고 역사인식의 가치관이다.

재미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주는것이요, 사랑하는 마음은 나에게 자연히 기억되는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역사인식의 가치관만큼은 스스로 노력해 가져야할 몫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흘러 삼국시대 백제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두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

색다른 러브레터, '서동요'의 성공

백제 30대 무왕으로 등극하기 이전 서동은 마음으로 사모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당시 신라왕국의 공주인 선화였다. 서동은 선화를 자신의 배필로 삼기위해 필사의, 그러나 '페어플레이'답지 못한 꼼수를 시도한다.

이 대목에서 창조된 노래(향가)가 '서동요'다. 백제인 서동은 신라에서 마를 팔며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설화(?)이기에 여기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역사적 진실인지 밝히는 것은 피하고싶다.

결국 설화 속 노래 ‘서동요’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왕의 대노에 선화공주는 신라 궁으로부터 철저한 버림을 받는다. 아마도 “품행이 정숙하지 못했다.”라는 죄목쯤으로.

이후 버림받은 선화공주를 만난 서동은 그녀를 모시고 기세 등등 하게 백제로 입성한다. 서동은 결국 백제 30대 무왕의 자리에 등극 하게 된다.

‘드라마 서동요’의 노출된 미학

‘색다른 러브레터'로 인연을 만든 둘만의 사랑 이야기를 지금 'SBS 서동요'가 보여 주려한다. 먼저 서동요가 가진 나름의 장점은 무엇일까? 정사가 아닌 설화의 한토막이기에 드라마는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수있겠다는 생각이다. 1,2회 방송에서 그런 내생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SBS 서동요 홈페이지에 눈여겨볼 대목이 보인다. "하고싶은것이 있어 왕이 되려고한다."고 드라마속 서동은 말하고있고, 제작진 또한 “이번에 비춰지는 서동은 왕보다는 최고경영자로서의 역할을 보여주고싶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 붙쳐지는 얘기는 필요 충분조건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일것이다. 역사에만 충실한 사극은 일정한 시청률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젊은층을 사극에 적극 끌어들이려는 노력에 '사랑'이란 테마는 마지막 수단 일수있다.

사극에 첨가된 ‘역사양념' 듬뿍

‘선화공주의 부탁으로 지었다’(?)는 익산 미륵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설화를 보면 미륵사는 선화공주를 위한 사찰처럼 나오지만, 사실 무왕의 재위 후반에 무왕은 익산을 중시하여 천도까지 계획하였다.

남아있는 절터로 보아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는 미륵사에 쓰여진 경제적인 비용을 고려해보자. 단순히 선화공주와의 약속차원이 아닌 ‘호국 불교’의 성격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왕은 신라와 상당한 대립각을 세웠던 왕이다. 더구나 그때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무왕이 익산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는 익산시에 무왕의 능으로 의심되는 릉이 있다는 사실이 설명해준다.

여전한 무왕에 대한 의문들

‘관륵’이란 고승을 통해 일본에 불교와 선진문물을 전수해줬다는 것은 당시 백제문화가 고구려, 신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을 암시한다. 찬란했던 백제문화 한가운데 30대 왕, 무왕이 서있다.

백제 무왕은 왕이 된후 신라와 열 차례 이상을 싸웠다는 기록이 정사에 나온다. 여기서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딸이 아닐것이다"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무왕과 진평왕은 사위와 장인사이는 아닐것이다."라는 말이다. 삼국사기 승려일연에 의해 합성, 재창작된 고급스런 한편의 역사설화일뿐이다.

무왕의 출생년도가 정확하지않다는 사실 또한 드라마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우연히도 무왕이 등극하기전 29대 혜왕과 28대 법왕의 재위기간이 단지 2년정도라는 점이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재위 2년만에 죽는다. 당시는 상당히 왕권이 위협받는 시기였다.

무왕이 그의 아들 의자왕의 패망에 간접적인 단초를 제공할수도 있었을까? 백제 멸망과 함께 당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병사했다는 비운의 의자왕. 당시 신라가 당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일때 무왕은 친고구려정책을 취한다. 나름의 유연책이었다.

백제 무왕 재위시절 왕궁은 사비궁(사비는 지금의 충남 부여)이었다. 인공호수와 그안에 인공섬을 만들었던 그 사치스럼이 아들 의자왕에게 사치와 방종으로 전염되었다면 지나친 걸까?

가슴으로 느껴볼 대목들

진정으로 한 여인을 사모했던, 서동의 사랑속에 투영된 고뇌와 아픔을 함께 느껴 보도록 하자. 마침내 둘의 사랑으로 활짝핀 그 꽃들을, (그 꽃들이 시들어지면서) 둘만의 아름다운 자태에서 옮겨가는 황혼의 매력도 눈여겨봐주자.

누가 알리요. 당신이 드라마 종영을 마치고 선화공주가 그리워 '익산미륵사절터'를 미친듯이 해매고 다닐지.

하고싶은 것이 있어 왕이 되었다는 ‘서동’. 하고싶었다는 그 꿈과 이상을 두눈 부르뜨고 지켜 보도록 하자. 평소 '고구려'에 길들여진 우리네 호연지기의 기상을 이제 백제청년 서동에게서 본받아보자.

시청률을 일순간에 사로잡는 드라마는 한결같이 시청자 마음에 무엇을 착상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이번엔 서동의 당당한 꿈과 아름다운 사랑의 울렁거림이 당신 마음에 다가오길 바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했다. 드라마 '서동요' 일단 보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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