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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가지^^^ | ||
거대한 국가에서 신 수도가 탕생되는 것은 물론 신기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은 구 러시아의 중세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대로 알려진 200년의 새로운 러시아 역사 사이의 신간경계를 긋는 것이기도 했다. 포트르대제가 1703년 발트해에 세운 도시는 시초부터 "유럽을 향한 창문"으로 착상됐고 러시아로 오는 외국인을 위한 넓은 문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이 나라의현대화 즉 거대한 유럽과 세계 국가로의 정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대 러시아의 마을과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순간적을 형성된 것이 아니고 수 세기에 걸쳐 조금씩 이뤄지긴 했어도 놀라만큼 짧은 기간에 건설됐다.
합리적으로 짜여진 정규계획은 표트르 대제 그 자신의 발상에 기초한 것이다. 넓은 네바강변에 지어지 북부수도는 착상은 유럽의 기준에 따랐으나 진정한 러시아식의 규모로 건설됐다. 전 국가가 도시의 생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유럽이 또한 그랬다.
건축가, 예술가, 학자, 장인, 상인 그리고 선원에 이르기 까지 모두 외국에서 이 도시로 왔다. 서구문명과 도시계획에 대한 오래된 전통과 그 당대의 경험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빨리 습득됐을 뿐 아니라 실제적 결과로 즉시 전환됐다. 이런 식으로 독특한 도시, 사회, 문화적 현상-분명하게 유럽의 외관을 지니고 그 자신의 성격과 분위기를 가진 전형적인 러시아 도시가 형성됐다.
러시아 역사의 본질적 특징은 새로운 영토의 식민화였다. 동 슬라브족과 후에 러시아족은 다른 종족과 사람들과 주로 평화로운 이웃으로 나란히 살아왔었다. 이것은 러시아 민족의 성격적 특징-인내심, 본질적으로 낮선 것에 대한 존경, 그런 이질적인 것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그냥 빌려오고,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그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능력을 형성했다.
포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정의한 바대로 동정심이 깊다는 이것이 러시아와 같이 광대하고 다민족 국가가 생겨나서 발전해 갈 수 있었던 주된 특성이고 그 절정에 달한 성과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이 도시는 바빌론의 탑이 되지도 않았고 이질적인 문화의 우발적인 연합체가 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단결과 통합을 얻어냈고 주민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그들 자신을 페테르부르크인이라고 느끼게 됐다.
바로크식과 신고전주의의 압도적인 유럽형식을 러시아 바로크나 러시아 고전주의로 변형시켰다. 동시에 이 도시는 구현된 유토피아다. 그것은 불가분하게 포트르의 개혁과 황제 개혁자의 거대한 성격과 연계돼 있다. 개혁에 대한 모든 상반되는 태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은 악과 범죄의 중심, 대중고통, 폭력,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의도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생각된 반면 이성의 승리라고 생각됐다.
러시아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표트르의 천재성 중에서 여성적 생활의 특별한 아름다움의 상징은 이상적 도시 발상과 도시 신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을 느낄 수는 있으나 무관심할 수는 없다. 네바 강변의 신도시에 대해서 강조된 유럽적 측면은 러시아인에게 상반된 감정을 야기시켰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도시에 대하 동경은 신도시의 인공적이고 외국적 요소, 예로부터의 뿌리와의 불화에 대한 예리한 감정과 혼합됐다. 때로는 이것은 늪이 많은 핀랜드의 습지에서 나타나 신기루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수도에 대한 명백한 적의(敵意)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화에 대한 이런 부정적 전망까지도 창조적으로 전환돼 문학과 예술에 위대한 결과를 갖다 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수 많은 신화와 전설의 주제가 됐다. 고대 러시아의 수도였던 키에프와 모스크바는 이 점에서는 상트페테로부르크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읽을 거리와 암시가 풍부한 "표시"로서의 도시 "본문"으로서의 도시, 영감을 받은 시와 산문에서 칭송되고 그래픽 예술과 회화에서 반영됐던 도시는 끊임없이 생각을 자극하고 상상과 창조력에 영감을 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화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 자기 관조와 그 도시의 놀라운 현상에 대한 연구에의 개입이나 그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관점에 대한 깊은 생각을 자극한다. 러시아와 세계문화에서의 그 상반된 거대한 역할은 이미 일세기 반을 이어져 왔으나 그 신비는 아직도 우리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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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트페테르부르크 市문양 ⓒ 박선협^^^ | ||
그런데 모든 러시아의 혁명~지상에다 천국을 세우려는 유토피아적 기도는 이 도시에서 일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왕자에서의 혁명"으로 세워졌으며 표트르 대제의 도시는 "세 혁명의 요람"으로 자라났다.
건설중에 숨진 수천명의 뼈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커다란 비극적 사건의 증언이요 참여자였다. 궁전반란, 데카르리스트 폭동, 러시아 공업의 발저놔 뛰어난 민족문학, 1905년의 "히의 토요일" "세계를 뒤흔든 1917년의 2월과 10월의 혁명, 1930년대의 "거대한 공포", 2차대저 중 군인들이 위업, 약 1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900일 포위의 비극, 공산주의 제국의 황폐화 등등.....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과 관련된 두 가지의 대단히 중요한 요소를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다. 그곳의 위도는 그린란드나 알래스카와 같다. 그 곳이 물론 언제나 상쾌하지는 않지만 기나긴 극지의 날들 덕분에 "북방의 팔미라"라는 가장 눈부신 특징 백야라는 자연의 기적을 자랑하게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또 다른 자랑은 네바 강이다. 불가 강이 러시아의 주된 수로(水路)라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네바 강은 분명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길이다. 넓고 수량이 풍부한 이 강은 아주 짧다라던가 호의 수원지에서 발트 해의 핀란드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어귀까지 74킬로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주 약 30킬로미터는 시 사이를 흘러가는 데 수많은 지류와 수로를 따라 아름아운 섬을 포함해서 환상적인 시적 영역을 이뤄낸다. 그러나 아름다운 네바 강은 그 도시에 많은 재난을 가져 온 변덕스런 성품을 가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좋지 않은 자연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대적인 요소와의 투쟁에서 형성됐다. 낮능 제방 위에 놓여 있는 이 도시의 주요 위험은 잦은 홍수였다.
얼마 동안은 도시와 자연 사이에 끊임없는 투쟁이 계속 됐으나 도시와의 다이나믹한 과정은 곧 자연적인 경관을 변화시켰다. 건축물들이 정복된 물의 요소와 조화롭게 섞이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분명한 모습을 차차 갖추어 갔다. 화강암 제방으로 쌓인 수로, 인공 연못과 분수대가 있는 정원은 환경 상태를 향상시켰고 평평한 뚝의 재미없는 경치에 미적인 모습을 더해 줬다. 도시의 역사적 지역에 빽빽이 들어찬 건물은 두 개의 평면으로 제한 됐다~건물 정면으 l방해 받지 않은 면을 형성한 수직면과 허가된 최고 높이에 의해서 정의된 수평면의 두 평면이다. 20세기 초 이전에는 겨울 궁전(23.5미터)보다 높은 세속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반 건설은 더욱 하나로 통제 된 듯하고 건축가들이 도시의 테두리 모습이 그림같이 되도록 큰 안내 표시같은 건물을 강조할 수 있게 해 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된 건축 재료는 벽돌과 석고다. 이것은 건물 정면을 다시 꾸밀 때 변하는 취향을 맞추기 쉽게 했다. 따라서 역사적 지역의 건물들은 흔히 여러 연대적 층을 갖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형적인 이 특징은 아마 그 건축물레서 어느 정도 원조(元祖)분위기를 앗아갔을 것이지만 역사적인 궤적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 도시에 임박한 종말에 대한 수많은 예상 "기약 없는 행로"등은 그 인상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앞으로 다가올 피비린내 나는 사건에서 그의 참여를 막아, 성 사도 패트로의 도시를 지키려는 듯, 천상의 수호천사의 이름을 도시 설립자의 지상의 이름으로 바뀌었다~1914년에서 1924년까지 그 도시는 표트르그라드로 알려졌다.
이 우울한 10년 동안에 1차 대전에서 러시아의 패배, 1917년 10월 25일의 볼세비키 혁명과 동족 상잔의 내란을 경험했다. 1918년 3월 이 도시는 러시아 수도의 지위를 잃게 된다. 표트르그라드는 짧은 생애에서 완전히 기력을 잃고 비참하고 쓸쓸하게 서 있는 듯 했다.
1924년에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고 아서 명확한 이념과 특정한 도덕을 갖추고 새로운 사회주의의 시작을 보게 됐다. 그러나 레닌그라드는 1941년-45년의 전쟁 중 위대한 공적을 쌓아 구제됐다. 이 도시는 900일간 밤낮으로 적의 봉쇄를 견뎌냈으며 이 과정에서 기아.추위.포격으로 100만 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굴복하지 않았던 도시는 강력한 정신과 불굴의 용기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도시의 일생에 새로운 시대를 연 날은 1991년 9월6일로 일반 주민 투표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종전의, 원래의 인증된 이름이 되살아 났다. 조용하지만 여일하게 흘러가는 네바 강의 제방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관된 과거 뿐만이 아니고 위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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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 내부 ⓒ 박선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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