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가슴 속에 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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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가슴 속에 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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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아닌 새로움의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 아들 '준섭'의 영정
ⓒ 송인웅^^^

단 하나밖에 없던 아들 ‘준섭’이가 저 세상으로 갔다. 평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야 할 아들을 떠나보내며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아들은 떠나갔지만 마지막이 아닌 새로움의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아들이 못 다 피운 생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아들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반드시 남겨야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지난 4월22일 오후 6시경 아들 ‘준섭’의 친구 ‘명호’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이 서울에 오셔야겠습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무슨 일이니? 준섭이가 얼마나 다쳤니? 바른대로 이야기 해라” 퍼붓는 소리에 전화는 끊겨졌다. 다시금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통화가 안됐다. 전날 오후 9시 30분경 아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안부전화를 한 바 있다. ‘준섭’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해서 혹 서울 구로동에 있다는 회사에서 작업 중에 사고 난 줄로만 알아 메디팜 뉴스 사장에게 구로경찰서에 사고내용을 알아볼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수차에 걸친 통화시도 끝에 명호로부터 아들이 죽었다는 말과 성북경찰서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준섭이가 죽다니 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멍해져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이어 메디팜 뉴스 사장에게 전화해서 성북경찰서에 내용을 알아 봐 줄 것을 부탁했다. 결과는 나왔다. 진짜로 ‘준섭’이는 죽었고 시신은 서울대학교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했다.

급한 대로 서울에 사는 동생과 딸 ‘은하’에게 연락을 취한 후 바로 대전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박 모 기사를 호출 서울로 차를 몰아 성북경찰서로 갔다.

담당형사로부터 내용을 들었다. ‘명호’와 형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요악하면 21일 새벽 3시경 잠을 잤고 오전 10시경 아침밥을 해먹고 오후 두시경 ‘명호’는 일자리 등을 알아보려고‘준섭’에게 나가자고 했으나 ‘준섭’이는 피곤해 잠이나 더 자겠다고 해 ‘명호’는 밖에 나갔고 ‘명호’가 오후 5시경 들어와 보니 죽어 있더라는 거였다.

경찰에서 추정하는 사망시간은 오후 3시경이고 ‘명호’가 119에 연락한 시간은 오후 5시 20분경, 119가 와서 확인해 보니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바로 도착한 형사들이 확인한 바 약물중독이나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더라는 것. 급성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는 거였다.

보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했다. 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서울대학교 병원 영안실에 누어있는 ‘준섭’의 모습을 봤다. 현실인 것이다. 왈칵 쏟아지는 울음이 몰려왔으나 침착하게 견뎌냈다.

부검 전에 어머님이 보실 수 있도록 해야 했다. 70이 넘으신 어머님께 어떻게 알릴 것이며 어떤 설명을 해야하나가 난감한 일이었다. 동생과 상의하여 형님께 자초지종을 알리고 어머님께 말씀드리도록 했다.

성북경찰서 옆의 여관에서 박 모 기사와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소주 두병을 마셨으나 정신만 말똥말똥 했다. 다시 소주 1병을 사와서 먹으면서 많이 울었다. “왜 내 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너무나 일찍 세상을 등진 ‘준섭’이가 불쌍해 견딜 수 없었다.

다음날 어머님과 어머님이 다니시는 절의 주지 스님, 형님, 그리고 큰 조카 ‘한섭’이와 딸 ‘은하’가 왔다. 상의 끝에 부검이 월요일에나 된다고 해 빈소를 차리기로 했다.

“어머니! 면목이 없습니다. 손자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는 몹쓸 짓을 했습니다. 모든 게 저의 잘못입니다. 좀 더 애를 세밀히 살폈거나 충분한 대화를 했더라면 설마 이 지경까지 왔겠습니까? 제가 죄인입니다.”

24일 부검을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향했다. 담당의사는 부검모습을 보지 않기를 권했으나 멀찌감치 뒤에서 지켜보았다.

사인은 관상동맥 한 쪽이 70% 정도 막혀있었고 그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이라고 했다. 결국 그동안 ‘준섭’이는 아파왔다는 것이고 아빠한테조차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아픔을 참았을 수도 있다는 결과였다.

“무엇이 ‘준섭’이가 아빠에게 조차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자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어진 입관과 발인에 ‘준섭’이 친구들이 함께 했다. 벽제 화장터에 ‘준섭’을 맡기고 대전 동구 이사동에 있는 아버님이 묻히신 곳 아래에 ‘준섭’의 뼈를 뿌렸다.

그 후 아들 ‘준섭’의 영정은 어머님이 다니시는 절에 두었다. 오는 음력 5월3일이 ‘준섭’의 49제 지내는 날이다.

아들 준섭의 생년월일은 1979년 5월5일 생으로 만 25세이다. 나의 생년월일은 1954년 5월13일(음력)로 만 50세이다. 즉 아들 ‘준섭’은 아빠가 살은 인생 반을 채우고 영면을 했다.

너무나 짧은 삶이었다. 아들 ‘준섭’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 볼 생각이다. 최소한 ‘준섭’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표시라도 해야만 맘이 풀릴 것 같다.

내 아들 ‘준섭’아! 편히 쉬거라. 무심했던 아빠를 용서하고...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하는 모습
ⓒ 송인웅^^^
^^^▲ 발인모습
ⓒ 송인웅^^^
^^^▲ 벽제 화장장에서 고인에게 묵념
ⓒ 송인웅^^^
^^^▲ 준섬의 뼈를 뿌리기 전 친구들과 작별하고 있다.
ⓒ 송인웅^^^
^^^▲ 이제 편히 쉬거라
ⓒ 송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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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성군 2005-05-07 23:19:32
영원한 짝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합니다. 아빠가 이럴진데 10개월을 가슴에 품고 있던 엄마의 마음인들 오죽하리요. 가슴에 묻은 게 아닙니다. 왜냐면 이미 그는 아빠 엄마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꿈일 뿐입니다.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이제까지 허상을 본것이라구 생각하시고 그 꿈에서 벗어나 실상인 딸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사랑으로 사시구요. 그런 아픔을 간직한 엄마를 위로하세요.

따라서 아들몫까지 사실려면 건강해야해요. 그러니 술도 조심 담배도 조심 그래야 저 세상의 아들이 편한 마음으로 지낼거에요. 뭐라 위로 할수도 없지만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바랍니다. 그의 영혼과 님의 가정에 평온을 위해 기도 할께요.

김진우 2005-05-08 14:25:52
하늘이 무너 진거와 진배없다햇습니다
외롭고힘드실 편집국장님
그러나 가슴에 담고 혼자우실 생각을 해봅니다
또 해야할 해야만 될 사회의 일이있으니
그 일로 아드님의 일을 같이하셔야죠
하늘에 있을 아드님을 위해...^^

김어진 2005-05-10 13:06:33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날 빈소에 찾아갔을 때도 전 한번도 뵌 적이 없던 분이지만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저희 역시 그 소식을 갑작스럽게 전해 듣게 돼 사실이 아닌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먼저 떠나보내버린 아드님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계속해서 전진을 하시길 바랍니다. 힘을 내시길 바라며..

멀리서 2005-05-15 12:00:14
올거라는 사람을 뤼해 기쁘게 히고자 방을 뚜몄으나 멀리서
저보다 멀리서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자식을 가슴에 품은
대장님의 가슴에만 방이 단장되겠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현숙 2005-05-15 22:40:57
국장님.하나밖에없는 아들 준섭씨가 하늘나라에서 국장님께서 건강하시라고 간절히 바라 있을겁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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