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종교지도자 다운 스님이 없다는 게 통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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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종교지도자 다운 스님이 없다는 게 통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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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국제관광선원’ 공사비 부풀린 의혹…윤리 도덕관 망각

 
대구동구 도학동 팔공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 대구의 대표적 전통사찰인 동화사가 '국제관광선원'을 경내에 조성하면서 공사 금액을 부풀려 거액의 국비 시비를 빼돌렸다는 본지 의혹과 관련, 동화사내 종교지도자들은 사회적 규범인 윤리 도덕성을 망각한 중들의 집단들로 스님다운 스님이 없다는 게 정말 통탄스럽다.

동화사 경내 국제관광선원 공사는 통일대불 지하공간과 사찰 경내에 선 체험관(선, 명상관련자료 전시) 2천710㎡과 선 센터(명상실 등 4동) 656㎡를 조성해 최신 글로벌 트렌드인 선과 명상 등 마음닦기 체험공간을 만들어 팔공산 관광벨트와 연계한 한류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됐다.

이번 논란은 동화사측이 지난 2009년 말 착공해 지난달 완공한 '국제관광선원' 공사를 진행하며 총 사업비 110억원(국비 50억·시비 50억·동화사 10억원) 중 공사비 품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에 이르는 국비를 빼돌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작금 현대 사회를 망각과 혼란의 사회라 칭한다. 과연 무엇이 망각이고 혼란인가? 사회 전반에 불법 탈법이 많고, 무질서와 삿된 행동이 많고, 도덕 윤리가 사라진 무질서의 혼란을 대승적 차원에서 보면 정법의 체계성이 몰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어떠한 종교이든지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종교를 비판하고 외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종교는 실존의 문제와 정면으로 대응하고 현실의 인간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도움을 주려한다. 현실처럼 녹색산업, 생명산업, IT산업, 초고속 세상에 불교는 어떻게 도덕 윤리성에 대처해야 할까? 정법의 몰락은 참혹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정법이라고 정한 것이 사법으로 전도된 것은 아닐까 싶다?

현대 인간은 법의 존엄성이나 어떤 질서를 파괴하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말세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고 싶다. 도덕적인 문란은 미풍양속을 해침은 물론 경제적 혼란은 모리배 간신배의 투기심을 야기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음이 작금의 종교의 현실적 자화상이다.

부조리한 사회 불평등의 의식구조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암적인 산물이라고 간과하기에는 너무나 큰 병폐가 우리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 이 같은 병마를 스스로 치유할 깨달음의 용단을 내리지 않고는 사회의 정화와 안정된 생활을 향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어린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조차 겁이 나고 유괴, 인신매매, 과소비, 성폭행, 부정부패 등이 팽배하여 범죄의 종합백화점과도 같다. 범죄율이 해마다 배 이상 증가한다 이러한 사회 불안감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찾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오면 온갖 불사를 하고,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신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정법 정진하는 스님다운 스님은 없고 시중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게 한심스럽다.

불교적인 근로정신과 직업윤리, 사회윤리를 정립 불교가 사회에서 구복의 인식을 벗어 던지고 무력함에서 벗어나야 지난 연말과 연초에 지역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하여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계에도 개인주의 사상의 팽배에 의하여 이루어진 단말마적인 몸부림이 <나>로서만이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다는 아집의 높은 성터를 마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구별지어 출생한 것은 아니다. 불교 경전에서 보는 선악, 출신의 윤리적 계보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보면 밝은 곳에서 태어나 밝은 곳으로 향하는 것과, 밝은 곳에서 태어나 어두운 곳으로 빠지는 것과, 또한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으나 밝은 곳으로 지향하는 생의 의지, 끝으로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두운 것만이 나의 길이라고 자포자기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밝은 길이란, 가문, 환경의 수승함을 뜻하고, 어두운 길이란 비참하고 암담한 출생 성장의 환경을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생태적인 환경은 순화시킬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며, 윤리적 선행이 자기 극복의 길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윤리 덕목 중에서도 지도자의 윤리를 강조하는데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지도자의 인격적 소양을 붓다는 종성이 존귀할 것, 대자재를 가릴 것, 성품이 포악하지 않을 것, 성냄이 없으며 은혜를 베품이 클것, 정직한 충고를 받아들일 것, 선법을 선양하는 행사에 치중할 것, 차별을 판단하는 지혜를 가릴 것, 방탕과 방일을 일삼지 말 것 등이라 하였다.

이를 종합해 첫째 지도자는 만인이 존경하는 덕화가 있어야 한다. 둘째 권모술수를 쓰거나 강압적 무력을 쓰지 말고 참다운 정법으로 다스리는 덕망의 영도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충신양사하는 덕을 가져야 하고, 지도자가 아무리 선정을 베푼다 할지라도 훌륭한 보필자가 많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 부국안민을 베푸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는 부국 안민만이 주목적이지만 위정자는 선천적인 복덕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안락하게 한다.

지도자도 그 부모를 섬기고 또한 국민을 충심으로 사랑하고 거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덕목을 불교의 윤리 도덕적 지도관이다. 급격한 산업사회로 열심히 일을 해야만 사회가 지탱할 수가 있고 건전한 근로정신과 부의 축적이 사회의 근간이 되어 있다. 즉 열심히 일을 하여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재투자하여 여러 사람에게 일할 기회와 부를 나누는 것이 현실의 윤리이며 도덕이다.

흥청망청 무작정 과소비를 하고 투기를 하는 부당한 부의 축적은 건전한 근로정신에 위배되고 종교의 교리나 사회의 규범에도 어긋나 지탄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적 윤리 도덕의 체제가 본질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변화하였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윤리 도덕성을 다시 음미해 불교적인 근로정신과 직업윤리, 사회윤리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불교가 사회에서 구복의 인식을 벗어 던지고 무력함에서 벗어나야 지역사회에 크고 작게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하여 심리적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비폭력 민족주의 지도자 간디가 말한 7 가지 악덕을 소개한다.

첫째, 철학 없는 정치입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지식을 사랑한다.' '지혜를 탐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나 세계의 궁극적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는 학문을 철학이라 하는 것이죠. 인생이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생관, 세계관이 필요한 것처럼, 철학도 역시 인생이 인생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학문입니다. 이런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정치를 한다면 그야말로 정치모리배가 아니고 무엇 인가요!

둘째, 도덕 없는 경제입니다.

도덕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인간의 이름에 합당한 행동기준, 선(善), 덕(德), 의무, 윤리 같은 것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사회의 혼란이 오듯이 인간이 도덕을 지키지 않을 때 자기모순과 갈등이 일어나고 사회도 큰 무질서 그리고 가치관의 상실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그 지켜야할 도리를 무시하고 저마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돈 버는 데에만 집착하면 과연 이 나라의 경제는 어찌 될까요? 그러니까 군수 자리 공천을 받는데 6억이면 떨어지고 7억은 되어야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되고, 그 들인 밑천을 뽑기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 런지요!

셋째, 노동 없는 富(부)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먹겠다는 것은 도적의 심보입니다. 요즘 소말리아에서 자행되는 해적질과 같습니다. 회사는 망하던 말든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조들, 무노동 무임금을 외치지만 아직 제가 과문해서인지 불법파업한 사람들에게 임금을 안 주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없이 받는 부는 나라의 혼란만 부추기는 나쁜 행태입니다.

넷째, 인격 없는 교육입니다.

요즘 교육이 잘못되어 나라를 망친다는 교육망국의 소리가 들립니다. 선생은 많은데 스승님은 없어서 일어나는 결과가 아닌지요? 선생과 스승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선생은 다만 지식만 가르치는 사람이요, 스승님은 제자들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는 분들입니다. 인격을 갖추지 못한 교육 기술자들이 가르치는 나라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예전에 우리 학창 시절에는 호랑이 훈육선생임이 계셨습니다. 그렇게 엄하고 무서우신 분이 매를 때리시더라도 제자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매였기에 우리는 스승님에 대한 원망이 없었습니다.

다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입니다.

과학이란 인간의 필요에 응해서 발달한 학문입니다. 그런데 그 과학이 인간을 배제하고 발전한다면 아마 그 말로가 끔찍할 지도 모릅니다. 인간성이란 인간의 본질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것을 말 합니다. 과학과 도학(道學)이 병진(竝進)해야 인간과 과학이 고루 발전 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이 결여된 현대의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간상실, 인간소외 현상을 부채질 할 뿐입니다.

여섯째, 윤리 없는 쾌락입니다.

윤리(倫理)란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 도리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본분입니다. 그런데 그 도리를 외면하고 말초신경을 부추겨 마구잡이로 인생을 즐긴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새 부처님 소태산(少太山) 성존(聖尊)께서는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남색(濫色)은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쾌락을 좇아 몸을 함부로 굴리는 슬픈 군상의 말로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일곱째, 헌신 없는 종교입니다.

헌신 없는 종교는 사교집단(邪敎集團)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종교는 교리가 고도로 발달하여 국민적, 또는 세계적 규모의 윤리성을 갖춘 종교를 말합니다. 인간 윤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이끌어가는 세계적 종교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원불교는 역사는 일천해도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가 되어있어 다른 기성거대종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종교 중의 하나입니다. 종교는 모름지기 헌신과 희생, 봉사가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害惡)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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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2014-03-19 07:05:42
얼굴없는 문자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선동을 유도하고 화합을 깨트리는 자가 있다면 선업이라 할 수 없을 터~
펜을 든 자나 지금도 자판기를 두드리는 자는 명심해야 할 일이 아닐까?
문자를 폭력성으로 사용한다면 분명코 악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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