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주인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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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주인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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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직후 막을 내릴쯤이면 관객들은 한마음이 되어 박수를 쳐준다. 이는 좋은 연극을 보여준 연기자들에 대한 예우이자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기도 하다.

이례적이긴 하지만 막이 내린 후 무대가 다시 환하게 밝아지면서 제일 먼저 단역들이 나오고 그다음에 조연들, 그리고 마지막엔 주연들이 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연기자와 관객의 호흡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른 연기자와 달리 연극배우의 경우 가장 큰 기쁨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마 ‘커튼 콜’에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들릴 때일 것이다.

이 같은 희열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도 없고 또 빼앗길 수도 없다. 물론 이런 희열감을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기분을 어떤 형태로든 설명 할 수가 없다.

몇 해전 두어시간 짜리 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마추어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 선 것이지만 3백여명이 훨씬 넘는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예행연습 할 때까지 대사를 못외어 연출자나 상대역을 안타깝게 했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서는 입에서 침이 뛰어나올 정도로 열연을 해 동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연극이 끝난 후 여주인공과 함께 양쪽에서 나오면서 손을 잡고 인사를 할 때 관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무아의 지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어쩜 연극인들이 이런 맛에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며 연극을 지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날 사이로 이미 작년이 되어버렸지만 지난달 25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이런 특별한 날이 되면 정작 이 날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 어리둥절 할 때가 많다.

세삼스럽게 훨씬 지난 일을 물으나 마나 한 것이지만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이 날이 되면 기독교인들은 그렇다치고 어찌 믿지도 않는 사람들 까지 들떠서 거리를 훼집고 다니며 환락의 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잔치 날에 엉둥한 사람이 기분을 낸다는 느낌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불자(佛子)가 아니라 그 깊은 뜻은 모르겠지만 석가탄신일의 경우도 그런것 같다. 지난 해도 보면 사찰에 달리는 연등에 등급이 매겨지고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또한 몇몇 인간들의 그릇된 사욕으로 뭔가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 변질 되어지는 것만 같다.

더구나 세계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가장 낮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선 석가모니의 탄신일을 축하하는 날인데 누군가의 잘못으로 연등 크기를 달리하는 등 차별화 된 시주금을 불자들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안주도량(安住道糧) 호지불법(濩持佛法) 즉 도량을 편히 안정하고 불법을 지켜야 할 주지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개인의 탐욕으로 불자들을 기만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필자가 알기에는 스님들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몸소 실천하는 수행자로 알고 있다. 세속의 모든 욕심을 털어버리고 오직 정진하며 고행을 통해 마음을 닦는 그런 수행자들이 있는 사찰에서 연등의 크기를 달리해 시주금을 매긴다는 건 범인(凡人)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더구나 대형교회나 불사(佛寺)를 짓는 답시고 목표를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건축헌금이나 시주금을 걷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불사도 그렇지만 대형교회의 경우 호텔형 교회를 짓고 건축 헌금을 걷으며 교세를 과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분교를 지어 목사를 파송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오히려 은혜가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 성직자의 사욕 때문에 영광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수 도 있다. 딴은 주제넘은 소리인지 몰라도 교회나 사찰은 기업이 아니다.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믿음을 빙자하거나 명분을 만들어 필요 이상의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교회나 사찰의 문턱은 낮고 편한마음으로 찾아야한다.

교인들이나 불자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만큼의 헌금이나 시주금을 내야 하고 평등의 원칙에 따라 연등의 크기도 같아야 하고 가난한 자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물질로 인해 성직자에게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판단은 주님이나 부처님이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요즘들어 교회나 사찰에서까지 벌어져야 하는 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은 없다 . 그래서 잊은 것은 있을지라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내 작은 몸뚱이조차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 시절 동네 꼬마들이 땅에 금을 긋고 땅 따먹기를 하며 난리를 피우다가도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아무 미련없이 훌훌 털고 일어서는 것처럼 최소한 종교인들이라면 그런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 까.

부자든 가난한 자 든 선한자 든 악한자 든 너 나 할 것 없이 언젠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남겨놓고 떠나야 한다. 화려한 연극이라도 관객이 떠난 공연장에 서있는 주인공은 쓸쓸할 뿐이다.

천지(天地)의 이치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어디에 두고 욕심을 부리는지. 요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위선의 역겨움을 더욱 더 느낀다. 또 다시 되풀이되는 성탄절 날, 석가의 탄신을 축하하는 날 . 누가 주인공이 되어 관객에게 박수를 받고 누가 비난을 받는지를 먼저 아는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 멀지않은 그 날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가운데 사랑을 베풀고 나눔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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