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건국, 고주몽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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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건국, 고주몽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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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명확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모 포탈 카페 발해사랑이 고구려를 건국한것은 고주몽이 아니라는 역사적 견해를 주장하고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알고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봤을때 신선한 충격이자 우리역사를 다시써야할정도의 파괴력있는 새로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세가지 예를들어 그와같이 주장하고 있는데 논리적으로 그다지 빈약하지 않으며 상식적 사고에의한 설득력이 높아보인다. 첫째 광개토대왕 의 비문과 중국 길림성 에서 출토된 고구려 대사자 모두루의 무덤벽화에 "고구려시조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나왔다."라는 기록과 기타 중국의 사서들에같은 기록이 발견되고있다.

둘째는 광개토경호태왕의 비문에 호태왕(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9세손이라 하였고 삼국사기에는 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라 하였는데 고구려시조 추모왕을 북부여1대단군 해모수로보면 북부여 6대를 포함하여 둘다 맞는예기가 되는것이며 당나라에 고구려멸망(BC668)당시 당고종과 간첩 가언충의 대화중 "고구려건국 900년"이라 했는데 해모수즉위(BC232)년으로보면 900년이 딱들어 맞는다.

셋째는 고려 31대 공민왕때 강화도 해운당 흥행촌촌로가쓴 '단군세기'의 기록에 "고구려는 해모수가 태어난 고향이기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한다."라고 되어있고 고주몽의 아버지는 고모수이고, 고모수는 고진의 손자인데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아들이고 서압록하에 위치한 고리국 사람 이라는 것이다.

역사란 어느날 갑자기 단절되거나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만들어질수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논리적 사고일것이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뿐만이 아니고 삼국의 건국시기도 명확히 알지 못하여 역사설화나 신화로 탈바꿈되어 교육되어지고있는 해괴한 역사이다. 이 어찌 민족적 자긍심이나 애국심을 국민들에게 바랄수 있을것인가.

고구려건국이 북부여시대로 잡아진다면 해괴한 역사의 단절현상이나 건국신화설들을 바로잡을수 있는 기회로 삼을수 있다고 보기에 이와같은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어 진정으로 역사적 책임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아래는 기 전문이다.

^^^▲ 북부여(北夫餘) 역대단군(檀君)
ⓒ 정윤성 기자^^^

[고구려의 건국]

BC58년 북부여 6대단군 고무서(高無胥)의 유언에의해 고주몽(高朱蒙)이 북부여를 계승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주몽은 가섭원(迦葉原)부여의 분능(盆陵)에서 BC79년에 북부여의 황손이며 옥저후(沃沮侯) 불리지(弗離支)인 고모수(高慕漱)가 가섭원부여를 여행중 가섭원부여의 하백녀(河伯女) 유화(柳花)부인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다.

고주몽은 가섭원부여의 말단관직인 말지기로 지내다가 관가의 미움을사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浹父)와함께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뜻을쫓아 아버지의 나라인 졸본에있던 북부여로 도망하였는데 때마침 후사가없어 고민하던 북부여 6대단군 고무서의 눈에띄어 고무서의 유언에의해 북부여의 단제에 등극하게 된다.

고모수는 고리군(高離郡)의왕 고진(高辰)의 손자이고 고진은 북부여의 1대단군 해모수(解慕漱)의 둘째아들이다. 그들모두 서압록(현 서요하)지역의 고리국(高離國)사람으로서 한나라, 연나라등 변방의 나라들과의 전쟁으로 단군조선이 쇄약해지기 전에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중 하나인 군(郡)이었으나 단군조선이 쇄약해지면서 많은 제후국들이 힘을길러 독립하기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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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내용은 "태백일사(太白逸史)"의 기록을 근거로 하였으며 조선 중종때 찬수관을지낸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의 저서이다.

2) 고주몽과 북부여의 관계 근거들중

- 광개토 경호태왕의 비문중 -> [옛날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 북부여에서 나왔다. 그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 길림성 고구려고분중 당시 대사자(大使者)라는 관직을지낸 모두루(牟頭婁)의 무덤벽화의 기록중 -> [하백의 손자이며 일월(日月)의아들인 추모성왕은 북부여에서 나왔다.]

3) 고구려건국이 한사군전쟁(BC108년)이전이라는설과 이후라는 설에대한 논란이 있는데 고구려 멸망당시 당나라 군사의 간첩이었던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접전상황을 당 고종에게 보고하는 말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번전쟁에서 당나라가 반듯이 이깁니다. 남생형제의 싸움으로 고구려의 정세가 모두 우리에게 알려지고 남생이 우리의 향도가 되었기 때문이며, 둘째로 고려비기(高麗秘記)라는책에 <고구려가 900년이 채 못되어 80먹은 대장에게 멸망할것>이라 되어있는데 고구려가 한나라때부터 건국하여 지금(AD668년)이 꼭 900년되는 해이고 이적(李勣)장군의 나이가 마침 80세 입니다. 그러니 고려비기의 예언과도 일치하니 이번엔 반듯이 고구려가 망합니다.]

단군조선 47대단군 고열가가 왕위를 오가(五加)들에게 맏기고 산으로 들어간것은 BC239년 이지만 해모수가 오가들에게 정식으로 추대되어 단제에 오르게된것은 BC232년으로 AD668년은 해모수가 단제에 오르고 정확히 900년이 되는해이다. 그러한 이유로 고구려건국을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때부터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광개토 경호태왕의 비문에 [시조 추모왕]은 해모수를 일컬었을수도 있다. 또한 동비문의 [호태왕은 추모왕의 19세손이다.]라 했는데 북부여역대가 6대이고 고주몽이 북부여 6대단군 고무서의 뒤를 이었음으로 삼국사기의 [고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다.]라는 말과 맞아들어간다.

즉 호태왕은 해모수로부터 19세손이고 고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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