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초원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먹이를 구하는 등 본능적으로 함께 합니다. 우리 인간도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함께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무수한 인류 중에 극소수에 불과하며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만남은 우연하게 제공된 기회(이웃, 학교, 직장, 모임 등)를 통해 한동안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인류 중에 극히 소수를 알면서도 막연히 존재만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쨌든 생각을 지닌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존재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존재로서의 가치만큼 사고하는 존엄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서로가 지닌 존엄성을 인정해서 존중하고 신뢰해야 하며 서로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서로 지원함으로써 존엄성 발휘를 통해 다양한 천성과 자질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일차원적인 존재에서 더 나아가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밀어줌으로써 형이하학적인 동물(존재 자체)과는 달리 형이상학적(기쁨, 행복, 보람)인 삶을 창출하는 등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함께 하는 의미, 보람, 인생, 품위, 가치, 본질이며 희망입니다. 인간은 서로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끌어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모으고 키워서 넉넉하고 향상된 인생과 사회를 양적 질적으로 끊임없이 창출해왔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린 공통의 목표(자유, 평등, 인권, 정의, 복지 등)와 공통의 가치가 설정되어야만 엄청난 기계 문명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갖가지 부작용과 후유증을 극복해서 더욱 나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태초, 태생이 미약하고 초라했지만 존엄성을 밑천으로 서로 협력해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대립과 분열을 멈추고 서로 존중하고 밀어줌으로써 상상할 수 없었던 문명과 문화와 사회와 복지를 이룬 것입니다.
때문에 인류는 과거에 만들어진 것(관념, 관습, 관행, 전통 등)에 의해서 발전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에 의존하거나 맡겨두지 않고 더욱 미래로 향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류는 수많은 한계들을 극복했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존엄성을 생생하게 확신 기억하면서 성숙한 의식(존엄성 인식, 존중, 협력)과 문화(평화, 낭만, 예술)와 사회(복지, 후생)를 만들면서 상상에 불과했던 꿈들을 이상과 현실로 실현시키고 앞당겼습니다. 특히 우리가 처한 수많은 난제와 불확실한 상황들 앞에서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해결하면서 미래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나라들은 여전히 개인 목표(인격, 해탈, 영생, 부귀영화 등)나 상호 관계(미덕, 예절 등)를 강조하며 그런 것들에게 존엄성의 재료들(시간, 비용, 정신)을 태워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엄청나게 거대한 지구와 오랜 역사와 환경과 타고난 자질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작디작은 개인 생각이나 상호관계로 축소시켜버리는 짓입니다. 이런 관습이나 국민성은 정분이나 미덕이라는 소박함에 머물러서 서로의 처지나 입장만 약간씩 달라지는 쳇바퀴 문화(자기 조상과 자기 후손 위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나라들도 훌륭한 이념이나 인물이나 사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ㆍ수정ㆍ변화하지 않고 원론 수준에 머물게 마련입니다. 이는 어차피 미약할 수밖에 없는 개인으로 엄청난 세상 문제를 감당하려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지불한 대가에 비해 혼란과 불행과 고통의 반복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각종 혼란과 부작용을 치르며 위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우리는 수십 수백 만년의 지구 역사 중에서 지극히 짧은 60-70년 정도를 동일 시대와 동일 사회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짧은 기간임에도 우리 시대조차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지닌 생각, 주요 관심사, 생활 내용, 시간, 비용, 정신, 활동 방향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계나 출세 등 전통적인 개인 삶에 연연한 채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구성원들이 모여진 사회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역사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ㆍ존중ㆍ고취ㆍ발휘ㆍ협력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갖가지 차별과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더구나 후진성을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합리화했기 때문에 돌파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조상 대대로 심한 갈등과 반목과 분열과 대립과 비난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특히 개인의 정분과 이익과 인격이라는 좁다란 관계 속으로 의식, 사회, 문화, 역사가 빨려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과 사회를 좁다란 자신 앞으로 축소시켜버리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공통 목표와 공통의 가치관을 세우지 못했으며 부작용과 함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국민(민족)은 세계관이 없으며, 인생관이 취약하고, 더구나 가치관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한 수준임에도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미화해왔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 스스로 주제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문제의 핵심과 정답을 우리 스스로에서 찾지 못한 채 강대국, 지정학적, 역학적, 운명적 영향이나 결과로 돌릴 정도로 무지하고 비열합니다.
이는 인류 사회ㆍ문화ㆍ전통ㆍ환경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 인간의 존엄성으로 다시 손질해서 바꾸어야 한다는 점, 존엄한 인간이 결과에 책임도 지고 계속 반성해야 한다는 점, 존엄성한 인간이 기쁨과 보람을 함께 누린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이 역시 우리 민족이 존엄성을 바탕으로 역사를 직접 만드는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쉽게 줍고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도 없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국민성임에도 지금도 반성조차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개인적으로 박식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잘못이 없으면 그만인 태도를 보이는 등 유사이래 가장 약아빠진 국민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오랜 차별 문화는 기어코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의 중심 축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나 극단적 이기주의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적당히 떠넘기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반드시 자신과 관련된 사람(혈ㆍ학ㆍ지연)끼리 어울리지 않으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천박(존엄하지 못)한 수준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도 모르는 사람은 일단 불신하거나 견제하는 등 서로를 밀어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의식, 관행, 문화, 관계, 조직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돈이 논밭을 사면 배아플 수밖에 없었으며, 상호 협력보다는 서로 경쟁해서 올라서거나, 심지어 상대를 물어뜯고 허물어뜨려서 출세하는 사회로 전락되었습니다.
결국 의식 사회 문화 역사가 침체되고 부정적으로 전개되면서 갈수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으며 서로들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제 국민들은 습관이 들어버린 나머지 과거 빈곤과 비교하며 아예 움직이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특히 과거 우리 나라가 극심한 가난과 무지와 차별로 암울했기에 의식주 차원에서의 약육강식과 생존경쟁 의식은 탁월할 정도로 발달되었습니다. 물론 두레나 계를 자랑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런 사례는 인류 역사 어디에도 흔한 일이며 동물들의 본능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쨌든 현대 사회는 개인이 알아서 살아남는 생존경쟁 시대가 아니고 치밀하게 짜여진 유기적 사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2천-5천 년을 총 정리해야 하며 특히 현대 60년을 냉철하게 분석해서 새로운 의식과 질서와 문화를 개발해야 합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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