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난 금산전투 ‘의승군’ 역사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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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난 금산전투 ‘의승군’ 역사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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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역사복원도 대한민국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일‘

▲ 뒤에 서 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 세미나
김문준 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의 “칠백의총을 ‘1,500의총’으로 바로 잡자”는 주장(대전일보, 2012.5.2자)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동 오피니온 기사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1592년 당시 충청도를 휩쓸고 호남으로 진군하던 1만5000명의 왜군을 막아낸 금산성 연곤평 전투에서 조헌 선생이 지휘하는 의병 700명뿐만 아니라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병 800명이 함께 싸우다가 함께 전사한 정황이 분명하다”면서 “당시에 함께 싸우다 전사한 영규대사와 승병 800여 명의 희생을 추숭하여 칠백의총이라는 명칭을 '1500의총'으로 바로잡는 것도 깊이 고려해야”함을 주장했다.

6일 오후2시 대전 유성관광호텔에서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은 '임진난 금산전투 승군역사 재조명'세미나를 열고 “영규대사와 승군 팔백 명의 업적을 되새기는 자리”를 가진 것. 이 자리에서 “금산 칠백의총은 기허당 영규대사와 그를 따른 의승군 팔백 명을 포함한 '천오백의총'으로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불총’은 ‘호국호법’의 기치를 건 불교도들의 결사체

이날 ‘대불총’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회장은 “대불총은 2006년 국가의 위태로운 안보상황을 타개하는데 기여하고자 ‘호국호법’의 기치를 걸고 불교도들의 결사체로 출범하여, ‘국가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라는 신념으로 국가정체성확립을 위하여 정진하고 있다”며 “금년은 임진난이 발생한지 7주갑으로 420년이 되는 해로 오늘 세미나는 임진난시 금산 연곤평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순국하였으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승군들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토론하는 자리다”고 개회사를 통해 말했다.

▲ 토론 모습
이어 송두영 ‘대불총’대전지회회장은 “금산 연곤평 전투에서 유생출신의 의병과 승군들이 함께 전투하고 함께 순국하였음에도 그 뜻을 기리는 금산의총의 이름이 무색하게 의병의 역사만 존재하고 승군의 역사는 부재한 모순을 바로 새우는 일에 동의해야한다”며 “(이런 세미나가 개최되도록)진실 된 사실을 찾아야 한다는데 동의하여 협조하여주신 정성욱 금성백조주택회장에게 감사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후 사회자의 “잊혀진 역사복원도 대한민국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일로 행사를 축하한다.”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축전낭독이 있은 후 정병조 금강대학교 총장의 기조연설이 시작됐다. 정 총장은 “대불총은 잘못된 국가관을 바로 잡고 후세들에게 건전한 안보의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불교단체다”며 “임진왜란에서 의승군의 활약상은 국운을 바꿔놓은 쾌거였음에도 축소되거나 도외시되었다. 근거가 있느니 만큼 시정조치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언이 있지만 적어도 과오의 흔적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일이야 말로 참다운 용기이며 지식인의 책무”라고 말해 관계당국의 조치를 요청했다.

과오의 흔적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있어야

이어진 순서에 따라 '영규대사와 팔백의승군'이란 주제로 발표에 나선 ‘대불총’ 김덕수 지도법사(전 육군군종감)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육상전 승리인 청주성 탈환과 금산 연공평전투에서 영규대사와 휘하 의승군 팔백 여 명은 고귀한 희생을 통해 왜군의 호남진입을 막아 곡창지대를 보호하고 적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는 쾌거를 이뤘다"며 "하지만 이러한 의승군의 희생은 알려지지 않고 조헌 휘하의 의병 칠백 명을 기리는 칠백의총만이 후대에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시대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도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승려들은 의연하게 희생의 길을 선택해 민족정신을 지켜왔다"며 "영규대사를 비롯한 의승군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팔백의승탑' 건립 등 국가적으로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제발표를 한 김덕수 박사(대불총 지도법사, 재원스님)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충북대학교 김의환 교수는 전문사학자들에 의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김선근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명예교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확실한 자료를 발굴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을 역임하신 법산 스님은 "국가적 존재가치는 올바른 민족의식이 필수적이며 민족의식은 나라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확고한 인식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현 정부에서 국가관을 확립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영규대사와 팔백의승군의 충혼을 위로하는 충혼탑을 건립하고 기념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장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 세미나를 마치고 토론자들 및 대불총 임원들이 찰칵
한편, 금산에 위치한 칠백의총은 임진왜란당시 금산 연공평 전투가 일어난 지 3일 후에 서로 뒤엉켜 돌아가신 시신을 모두 수습하여 인근 야산의 한곳에 함께 모신 합동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들이 순절한 11년 뒤인 1603년(선조 36)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를 세우고, 42년 뒤인 1634년(인조 12)에는 지역 유림들이 순의단을 설치하여 제향을 올리다가 1647년(인조 25)에는 사당을 지어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그들이 돌아가신 지 70년이 지난 현종 4년(1663)에 드디어 조선 정부는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려 대대로 제사를 받들게 했다.

종용사에는 조헌 선생과 칠백의사 이외에 눈벌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의 위패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일제감정기 말에 일제가 파괴하였던 종용사를 1968년에 아산의 현충사와 함께 칠백의총과 종용사를 성역화했다. 또한 문화재청은 종용사 일대를 잘 정비하고 있으며 매년 9월 23일에 그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의리정신을 추모하는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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