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방초기에는 공장을 설립하여 제품생산을 하려면 한국에서 모든 장비나 비품을 가져가야했다. 당시 중국은 핵무기와 비행기 등 군사장비 말고는 일반 소비재나 산업 시설재도 자체 생산을 하지 않던 시기였다. 공장 설비는 물론 승용차 화물 트럭 사무실 비품 각종 소모품 심지어 볼펜이나 종이까지도 한국에서 조달했다.
공장 근방에서 주유하던 새 승용차가 급추돌한 중국차에 의해 부서져서 정비를 받아야 했는데 당연히 상대방이 100% 잘못이니 수리를 잘 해주리라고 믿고 1주일된 새 차를 맡겼다. 열흘이 지나도록 깜깜소식이어서 정비공장을 찾아 갔더니 아직 사고경위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파출소로 가서 다시 신고를 하고 기다렸더니 근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나온 최종 결론이라는 것이 “쌍방과실이니 각자 자기의 차를 수리하라”는 기가 막힌 법원의 통보였다.
그동안의 경위는 이랬다. 사고가 난 주유소 상호는 ‘劉家村’. 주유소 사장은 ‘劉’씨이고 파출소 소장도 ‘劉’고 우리 회사의 현지인 최고책임자도 '劉', 사고를 낸 운전사도 ‘劉’여서 자기 성씨끼리 담합을 한 것이다. 중국은 동네마다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많아 "xx村" 이라는 지명이 흔하다. 또 가장 많은 성씨도 "張. 留. 王" 등이라고 하며 특히 산동성에는 ‘劉’씨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도 인과관계를 중시하지만 중국은 경찰 조사나 법원 판결조차도 이런 식이다.
미국은 총기사고가 많지만 중국은 총기 보유가 불법이어서 칼을 많이 소지하고 다니며 사소한 언쟁이나 다툼에서도 갑자기 칼을 사용하여 큰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다. 우리 공장 기술자가 주점에 갔다가 정체불명의 중국인에게 칼에 찔려 장애인이 된 일도 있고 같은 공단 내 합자공장 부창장 남편은 식당 노래방에서 마이크 실랑이를 벌이다가 상대방이 휘두른 칼에 찔려서 사망한 사고까지 있었다. ‘만만디 慢慢的’가 아니고 때로는 매우 ‘급하고 우발적인 성격’에 많이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 일요일, 칭다오 시내를 걷다가 법원 앞을 지나는데 법원게시판 벽보에는 빨간 글씨로 적힌 사람 이름이 보였는데. 동행한 조선족 직원은 빨간 줄 표시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해서 경악했다. 칭다오는 중국에서 20대 도시에도 못 끼는 지방도시인데도 그 날짜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7-8명이고 대부분 곧 집행이 된다고 했다. 아직 중국은 인권과는 거리가 먼 나라인 것 같다.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가 곧 중국이다. 그들은 어떤 망칙한 사건이 생겼다고 해도 일단은 지켜본다. 한국인이라면 "누군가가 자전거로 부산을 30분 만에 다녀왔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농담마라”며 코웃음 치겠지만 그들은 일단 지켜보면서 확인한다. 어떤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해도 절대로 그 자리에서 부정하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뜸을 들인다. 넓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간들로 넘치다 보니 별의 별일이 다 생기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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