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3일 새벽 1시54분 통일교 성지인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병원에서 별세했다고 통일교 관계자들이 3일 밝혔다. 향년 92세.
문선명 총재는 지난 달 14일 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가톨릭 대학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다 현대의학으로 병세의 호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지난 달 31일 가평의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겨졌다.
안효열 통일교 대변인은 문 총재의 부인 한학자 여사와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발표했다.
고인은 1920년 1월6일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전기학과를 졸업하고, 6.25 전쟁 휴전 다음해인 1954년 5월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 한 가정집에서 창립한 신흥 종교 통일교를 창설했다.
고인은 1957년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선교의 닻을 올리고, 이후 통일교는 1972년 미국에 진출, 해외 선교를 본격화하는 등 불과 50여년 만에 전 세계 194개국 300여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거대한 종교 단체로 성장했다. 문 총재는 16살 때 부활절 날 기도하던 중 예수에게서 사명과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교는 고인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는 ’통일교의 교리‘ 때문에 항상 이단 시비에 휘말렸고, 이승만 정권 시절에서 부터 모두 6차례나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막강한 자금력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
그 같은 논란 속에 통일교는 1997년 창립 43년 만에 당시까지 사용하던 정식 명칭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꾸는 등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고도의 사업 수완의 결과로 선화예술중고교, 청심국제중고교, 선문대, 미국 브리지포트대 등 교육기관과 세계일보, 미국 통신사 UPI. 미국 워싱턴타임스 등 언론기관, 리틀엔젤스 예술단, 유니버설 발레단 등 언론 문화 예술 단체, 그리고 일화, 용평리조트 등 사업체를 운영해왔다.
고인은 ‘순결한 가정’을 기치로 내걸고 1961년 36쌍을 시작으로 합동결혼식을 치렀으며 1992년 8월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3만 쌍 국제 합동결혼식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인은 또 1990년에는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세계 평화 등을 논의했다. 문선명 총재는 회고록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과 수교할 것을 촉구했다고 언급,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1991년 12월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을 비롯한 남북경제교류에 합의했으며, 2010년에는 유엔을 대체할 평화 기구로 ‘부모 유엔’을 창설하기도 했다.
지난 1991년 11월10일자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0세기를 만든 1천명의 인물’로 이승만 대통령, 북한 김일성 주석과 함께 문선명 총재를 선정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은 40세 되던 1960년 23세 연하의 한학자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7남6녀를 두고 있다. 1983년에는 둘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8년 4월 7남6녀 중 막내아들인 문형진(33) 목사를 통일교 세계회장으로 임명해 사실상 후계 구도를 구축했고, 통일교 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은 4남 문국진(42) 씨가 맡은 상태다.
문 총재의 빈소는 청심평화월드센터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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