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이 모든 행위들이 얼마나 익숙한 것들인가. 가운은 어제 내가 벗어놓은 곳에 그대로 있고, 칫솔도 어제 내가 내려둔 곳에 그대로 있다. 아직 둘러보지는 않았지만 모든 집기들과 모든 기구들이 내가 필요로 할 때 바로 그 익숙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래 이곳이 바로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바로 그곳이다.
나 스스로가 만들고 꾸민 이곳은 이제 나와 충분히 익숙해졌고, 그것들은 반대로 나의 행동과 습성을 제한하고 있다. 진료를 하기 위해선 항상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야 하고, 이비인후과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몇 걸음을 걸어야 한다. 우측으로 한걸음, 그곳에서 좌측으로 몸을 틀어 서너 걸음을 걸으면 장비가 있는 곳이다. 아마 눈을 감고도 내가 늘 하던 그 일들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고 자세히 설명해 주지도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소 다른 눈빛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집을 나간 시간도 집에 돌아간 시간도 평소와 거의 같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철이 들만큼 든 아이들은 벌써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빠의 손에 매달려 평소엔 잘 않던 재롱을 부린다. 감정표현이 적은 아빠를 닮아 그런지 그렇게 재롱을 부리다가는 왠지 멋쩍은가 보다. 자기네들 방으로 달려 들어가 버린다.
나는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 늘 출근하는 익숙한 나의 병원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남의 병원에.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별 문제가 없어서 그냥 두었던 지방 낭종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외과분야엔 별 조애가 없는 내가 어림짐작으로 항생제나 먹으면 될까 하고 먹어보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러자 나 스스로가 째보겠다고 진통제 주사 한대 맞고는 메스를 들고 설친 것이 악화가 화근이었던 것이다.
며칠을 끙끙 앓다가 새벽에 일찍 병원에 갔다가 응급상황이란 이야기를 듣고 오후에 수술예약을 잡았다. 다시 오진진료를 멀쩡하게 하고는 오후에 병원에서 전신마취까지 하고는 1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2차에 걸쳐 엉덩이의 반을 들어내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니, 막상 열어보니 상태가 양호해서 2차 수술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제쳐 놓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아내와 같이 기다려준 김 형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았다.
진통제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저녁도 대접하지 못하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통제 때문인지 통증의 원인을 제거한 때문인지, 다행히 통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어제는 평소보다 늦게 까지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은 무엇이 좋은지 아빠주위를 떠나지 않고 뛰어다니다, “아. 아빠 아프니까 침대위에서는 조심해야지.” 저희들끼리 주의를 주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익숙한 곳. 때로는 지겹기도 했던 바로 그곳. 일상이라는 곳으로. 의사가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에 대한 감상보다는, 잠시 특별한 외출을 한 후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그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주말에 제법 먼 외출을 다녀온 후 집에 돌아와서는 소파에 않으며 “역시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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