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옆자리의 아내를 먼저 살펴본다. 오늘 역시도 몸이 안 좋은지 꿍꿍거리면서 곤하게 자고 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엊저녁 물에 담가놓은 쌀을 씻어 밥통에 안치고 냉장고를 열었다. 콩나물을 꺼내 씻어 국을 끓였다. 30분 후에 밥과 국이 완성되었기에 아내와 딸을 깨워 밥상머리에 앉혔다. 그렇게 조반을 한 술 뜨고 면도에 이어 머리까지 감고 옷을 갈아입는다. 여고생 딸아이도 교복을 챙겨 입느라 부산하다.
대문을 나서는데도 어둠은 여전했다. 오늘을 눈발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이 사뭇 음침했다. "갔다올게" "다녀와요~" 힘없이 배웅하는 아내의 갸날픈 목소리가 다시금 내 맘을 저리게 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딸과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10분 여 거리이다. "오늘도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로 표기)은 안 하고 일찍 올 거지?"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저녁도 딸이 귀가하는 오후 7시 즈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먹어야 하리라.
야자를 하면 밤 열 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딸인데 요즘엔 시험을 앞두고 있음으로 일찍 귀가하는 것이다. 딸이 야자를 할 때는 내가 항상 마중을 나가야한다. 그건 지금은 입대한 아들이 고교를 재학할 당시부터 습관화된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딸에게 "오늘 춥지?" 물으며 손을 잡아 주노라면 딸은 언제나 씩씩하다.^
헌데 요즘엔 야자를 당분간 안 함으로 해서 아침 등교길에만 동반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년이면 내 딸도 고 3 대입수험생이 된다. 그 때까지는 내가 여전히 딸의 등.하교길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올 여름까지는 승용차가 있었음으로 해서 딸의 하교길 마중은 승용차를 가지고 가곤 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가정경제가 몰락하는 바람에 처분을 하였기 때문이다. 동동거리며 기다리노라니 내가 탈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아빠 먼저 갈게~"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노라니 딸이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어 배웅해 준다. 나도 덩달아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너도 오늘 열심히 공부하렴... 아빠 역시도 열심히 일하마! 남들은 자기 자식에게 고액과외도 곧잘 시켜주곤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처지가 극히 빈한하여 나는 딸에게 싸구려 사교육조차도 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필부이기에 마음이 아리다. 그렇지만 딸은 언제나 전교 1등을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는 당당하고 자랑스런 녀석이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여 회사에 도착했다. 언제나 남들보다 두 시간이나 빠른 오전 7시에 출근하여 오늘 하루를 연다. 하지만 빈곤의 터널은 왜 그리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인지 당최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하늘도 무심치 않다면 언젠가 이처럼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와 내 가정에 분명 풍요와 행복의 정립이라는 과실을 선사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명이 밝아온다. 또 하루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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