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갠지즈강을 마음에 담아보려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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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갠지즈강을 마음에 담아보려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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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들을 이라크로 파병하라"는 어떤 네티즌의 황당한 글이 인터넷에 올랐었습니다. 그래서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하지만 고액의 위험수당까지 준다면 그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 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빈곤이 죄가 되어 일당 30만원에 돈을 벌러 갔던 우리나라의 근로자가 이라크에서 피살되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던 날, 저 역시도 하루종일 가슴이 내려앉아 혼났습니다. 그건 이라크에서 참변을 당한 분들이 저와 같은 도시인 이곳 대전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자, 또한 김만수씨와 같은 경우는 저의 연배와도 비슷하였기에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동병상련의 극명한 아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40대 중반이며 아들은 지난 여름에 군에 입대했고 이제 내년이면 대입수능을 치룰 고교 2학년생 여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는 말이 있듯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가시고기처럼 그렇게 모든 걸 희생하기 마련임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대입수능을 치룬 쌍둥이 두 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가족들이 그렇게나 말렸음에도 전운이 자욱한 이라크로 달려갔을 '아버지' 김만수씨 였습니다. 역시도 돈을 더 벌어 가족들을 편히 살게 해 주기 위해 함께 갔을 60대의 곽경해씨는 위험수당이 추가된 일당 30만원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 그처럼 사지로까지 달려갔던 것이었습니다. 즉, 그놈의 원수와도 같은 돈만 아니었더라면 그분들은 어쩌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머나 먼 이라크에까지 갔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1998년 9월에 빈곤의 극점을 달리던 어떤 아버지가 밥을 굶는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내마저 가출하고 앞으로의 살 길이 막연했던 그 아버지는 1천만원의 상해보험금을 타 내고자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또 금년 7월엔 직장을 잃은 남편으로 인해 아이들의 병원치료비 3천원마저도 이웃에게 꾸는 일이 벌어지자 낙담한 어떤 젊은 엄마는 우는 아이 둘을 아파트 14층에서 내던지고 자신도 막내와 함께 몸을 던졌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적 충격의 확산과 함께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확대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기도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는 지금도 빈곤에서 기인한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이라크에서 참변을 당한 곽경해씨와 김만수씨도 굳이 따져보자면 어쩌면 빈곤이 불러온 일종의 '자살행위'였다고 저는 봅니다.

과거엔 가난했어도 공부를 잘 해서 성공한 사람을 일컬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진작에 고액의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 가난한 학생들은 공정한 게임의 출발선에 서기조차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래서 빈(貧)의 세습이라는 악순환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이국 땅에서 잃은 두 분은 이미 일개의 '재수 없는' 비극자가 아니라 사실은 이 시대 '빈곤한 아버지의 전형'인 것입니다. 저 역시도 지금껏 늘상 빈곤의 회전문만을 드나드는 빈민입니다. 그래서 과거엔 험한 노동으로서 생계를 이어가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빈곤은 찰거머리처럼 지독하여 여지껏 역시도 제 곁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라크에서 일을 하면 위험을 감안하여 한국에서보다도 파격적 일당을 준다고 하였기에 이번에 피살을 당한 두 분들은 자신의 안위는 생각조차도 않았을 테지요. 그러했기에 두 분은 그처럼 전장의 포염이 아직도 자욱한 이라크로까지 불문곡직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껏 역시도 가슴이 매우 저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면에는 자식에게 기백만원짜리 비밀과외를 '척척' 시키고 외제 명품과 고급 수입양주가 아니면 걸치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졸부들이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누구라도 인도에 가면 성인(聖人)이 되고 철학자가 된다더군요. 그건 인도인들의 거개가 '물질은 찰나'라는 사상에 입각하여 자신이 도착한 갠지즈 강에서 자신이 화장(火葬)될 때 필요한 장작값만 지니고 있으면 된다는 윤회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르지도 못 할 '부자'(富者)라는 나무에 오르고자 늘상 고군분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망상은 버리고 제 마음속에 갠지즈 강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담고자 애써 노력해 보려 합니다.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이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엄연한 현실이기에 그래서 '가난은 불행과 친구'라는 생각에 오늘도 우울합니다.

부지불식간에 가장을 잃고 망연자실 처연한 심경일 곽경해씨와 김만수씨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망자 두 분의 유가족께도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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