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河口) - 내 청춘의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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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河口) - 내 청춘의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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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 아니었다

^^^▲ 을숙도 하구언 풍경
ⓒ 포토네이버^^^

을숙도. 그곳은 하구였다. 낙동강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온갖 것들이 퇴적되는 장소였다. 드넓은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정체되어 머무르는 곳이고,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머물면서 흘려내는 사연들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구. 하구는 긴 여행을 떠나온 강이 마침내 그토록 기다려온 바다와 만나는 반가운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뒤에 남는 것, 떠나지 못하는 것, 버려진 것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하구에는 하얀 억새가 가득히 우거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새들이 오면 자리를 내어주고 석양이 물들면 같이 물들어가면서 억새는 삶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리고 그 하구는 지금은 없어져버렸다.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바로 그 자리위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고 안았다. 이제는 그 옛날의 정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소문을 찾아 나선 방랑자들과, 옛날을 경험한 자들이 향수에 어려서 찾아가는 그곳은 콘크리트 주차장과 차들로 가득히 메워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곳의 사연과 정취는 이제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가슴속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차츰 상업주의에 물들어가기 시작하던 그곳이, 초기의 그 싱그러움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기 전에 사라져 버린 것이. 그래서 이제 추억 속에서라도 영원히 아름다웠던 곳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강이 흘러온 자락의 맨 끝에 자리 잡은 조그만 땅이었고, 세상의 끝에 있는 아무도 찾지 않았고, 찾을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 버려진 땅이었다. 지금은 새로 형성된 도심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당시는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한참을 가서 또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었다.

그곳은 또한 땅이면서 땅이 아닌 곳이었다. 강을 자연히 따라 흘러온 세상의 모든 오물들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흔적에다, 사람이 버린 분뇨들이 덧씌워진 온갖 오물의 집합장이었다. 갈대밭에서 거룻배를 타고 조그만 여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엔 태양에 말라가는 분뇨들이 널려져 있었다. 그 위에다 갈대와 철새라는 환상으로 포장된 이미지일 뿐이었다.

세상에 내다버린 온갖 것들이 썩어가면서 내뿜는 것들을 자양분으로 갈대는 울창하게 자라고, 그 갈대숲에 깃들어 철새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철새를 찾아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결국은 하나의 거대한 순환이었던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새로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을숙도 하구언 풍경
ⓒ 네이버포토^^^

나는 다행히 그곳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기 전에 그곳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그곳에 찾아가면, 나는 오랫동안 풀숲에 드러누워 새들이 줄을 지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곤 했었다.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갯벌 사이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갈대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젊은 시절의 적지 않은 시간들을 그곳을 찾으며 보내곤 했다. 그곳을 오가는 흔들리는 버스의 좌석에서, 그리고 그곳의 강둑에 둘러선 갈대사이에 않아서 책을 읽고, 세월을 읽고, 새들의 날개 짓을 읽으며 인생이란 것을 음미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마지막.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 오랜 세월동안 모인 것들이 마지막에 모이는 곳. 그래서 그곳에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꿈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마지막이란 것은 그래서 의미로운 것이었다. 영원히 그곳에 머물거나 아니면 언젠가 새로이 시작을 해야만 하는 곳이 바로 마지막이다. 긴 여정과 새로운 출발의 사이에 끼어있는 쉼표. 그것이 바로 그곳, 하구였다.

나는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흉한 계략과 반란의 냄새들을 모두 들여 마실 수 있었다. 그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젊은 날 내 가슴속에 억눌러오던, 저 먼 곳을 향한 긴 여행에의 꿈을 삭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을 거닐며 나 자신의 음모를 꿈꾸며 젊은 날을 삭이고 있었다. 꿈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나에게 감동이란 이름의 꿈의 원천을 제공해 주었다.

숨겨져 있는 곳,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 그래서 후미진 곳을 찾는 방랑자들의 발길이 가끔씩 머무는 곳. 그리고 지저분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 그곳은 참으로 역설적인 공간이었다. 모든 것의 마지막을 받아주고 쉬게 만드는 곳.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강렬한 의지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이 그토록 나의 마음을 끌었는지 모른다.

위대한 메스컴과 영화의 힘에 의해 마침내 그곳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낭만과 환상으로 포장되고 치장되고 마침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져 버린 곳. 그 옆자리에 아직도 철새는 날아든다. 나는 그곳을 거닐면서 예전 그곳에서 꾸었던 나의 꿈을 회상한다.

나는 이제 사회인이 되었고, 나는 이제 그곳을 거닐면서 그저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렇다. 모든 것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이곳마저 이제는 다시 그 정취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하구. 그곳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내 젊음의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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