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아프간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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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아프간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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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아프간 엘리트들 사적 거래의 실패
공정하고 공평하며 정의로운,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권은 없다. 또 그러한 정권교체도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모 정치인이었던 분이 했던 말처럼 “정권교체는 없다. 단지 이권교체(利權交替)만 있을 뿐이다” 세계가 그렇다. (사진 : 유튜브)
공정하고 공평하며 정의로운,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권은 없다. 또 그러한 정권교체도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모 정치인이었던 분이 했던 말처럼 “정권교체는 없다. 단지 이권교체(利權交替)만 있을 뿐이다” 세계가 그렇다. (사진 : 유튜브)

아래의 글은 미국의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93일 세라 체이스(Sarah Chayes)가 올린 글이다.

글쓴이를 먼저 소개하면, 세라 체이스는 미 하버드 대학에서 중세 이슬람 공부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에는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지역을 담당하는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의 특파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녀는 아프간 탈레반 지배 이후 폐허의 삶의 터전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프간인들에 대한 애정으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아프간 칸다하르에서 개발 조직을 운영했다.

아프간 탈레반은 지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간 지배하다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을 빼앗기고, 20년 만인 2021815일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 무혈 입성함으로써 다시 아프간 정권은 장악하게 됐다.

세라 체이스는 카다하르에서 낙농협동조합을 설립, 아프간인들의 삶을 재건 시키는데 노력을 했으며, “미국 내 부패에 관하여(On Corruption in America)와 무엇이 위태로운가(What Is at Stake)”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녀는 이후 미국 합참의장의 특별고문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카네기 국제평화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선임수석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5년 세라 체이스는 입금을 위해 칸다하르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국립 은행의 지점을 방문했다. 그녀는 지역 아몬드와 살구 낟알에서 추출한 기름과 사막이나 마을 북쪽에 있는 돌 언덕에서 채취한 향긋한 식물들을 이용해 수출용 피부 관리 제품을 만드는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당국에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영업하기 위해 국립은행에 예금을 해야 했다.

이 협동조합의 최고재무책임자(CFO, chief financial officer)인 아프간인은 지난 9개월 동안 뇌물을 주지 않고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해왔다. 그녀는 최고재무책임자와 함께하면 더 잘 될 거라는 걸 알고 이번에는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아프간 정부의 장관이었으며, 그의 가족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부터 새로 선포된 이슬람 에미리트(the 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다하기를 거부하는 아프간인들 모두 탈레반으로부터 보복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적었다.

직원들이 지난 9개월 동안 동료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일 다시 오세요라며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씩 웃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내일 다시 오세요라는 말은 돈 가지고 다시 오세요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간 사회는 이른바 급행료라는 것이 있어야 일처리가 순조로웠던 한국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세라 체이스는 오기가 났던 모양이다. 그녀는 가지고 간 서류뭉치를 그 직원의 책상위에 올려놓고, 그 직원 책상 위에 자신의 두 다리를 턱~ 걸치면서 이 서류 처리를 다 할 때까지 나는 가지 않겠다, 끝날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 직원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켜보는 아프간인들의 삶은 이랬다. 교사와 의사를 포함해 정부 관리와의 거의 모든 상호작용은 관리의 부당취득과 같은 강요와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프간 사람들은 세라 체이스가 한바탕 소동을 벌일만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들은 분명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어야만 하는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몇 년 후 전직 경찰관이었던 또 다른 협동조합원은 경찰은 법을 유지시켜야 하는 사람들이며, 그러면서 그들은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라며 불평을 털어 놓았다. 이런 관리들, 즉 경찰과 사무원들은 점잖게 갈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프간인들은 현금뿐만 아니라 훨씬 더 가치 있는 상품, 즉 그 관리들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도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탈레반의 신속한 아프가니스탄 재탈환, 뒤이어 벌어진 혼란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탈출사태를 계기로 미 관리들은 아프간 군이 탈레반과 제대로 싸움조차 하지 못했다고 탄식을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어떻게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허락을 받아 자신들을 학대했던 (꼭두각시)정부를 대신해 아프간인들이 계속해서 목숨을 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더 깊은 진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재앙과 미국이 부패로 아프간 국가를 무력하게 만들고 자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을 허용한 것은 미국의 외교 정책 수립의 실패일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해 온 부패 유형의 보다 화려한 버전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게 세라 체이스의 주장이다.

* 뇌물 받을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 (On the Take)

미국이 점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부패는 단지 끊임없는 거리 수준의 붕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다. 어떤 경찰이나 세관 직원도 모든 부당이득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을 수 없다. 그 돈의 일부는 용솟음치듯 위로 흘러갔고, 그것들이 합쳐져서 장엄할 정도의 현금의 강(river of cash)을 이루었다.

2010년에 실시된 두 조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매년 뇌물로 지급되는 총액은 20억에서 50억 달러로, 이는 아프가니스탄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13%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뇌물에 대한 보답으로 고위 관계자들은 보호조치를 다시 내려 보낸다.

아프가니스탄을 운영하던 네트워크는 내부 경쟁과 동맹으로 인해 유연하고 역동적이었다. 그들은 서구인들이 종종 공공부문과 민간사업가로 추정되는 사람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국제원조를 조정하는 지역 비영리단체들의 수장들 사이에 침투할 수 없는 벽으로 오해하는 것들을 포괄한다.

이들 통신망은 주로 다양한 가업(family businesses)처럼 운영되는데, 주지사의 조카는 주요 부흥 계약을 체결하고, 주지사의 처남 아들은 미국 관리들의 통역사로 아주 쉽게 직장을 얻고, 주지사의 사촌은 이란 국경까지 아편 운송을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 궁극적으로 같은 기업의 일부이다.

서구인들은 종종 아프간 통치 기관의 지속적인 능력 부족에 마땅치 않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하지만 그 기관들을 통제하는 정교한 네트워크는 결코 통치할 의도가 없다. 그들의 목표는 자급자족이었다. 그 일에서, 그들은 눈부시게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했다.

잘못은 그러한 정부로 하여금 미국이 주도한 개입의 시작할 때, 즉 미군이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오합지졸의 군(rag-tag proxy militias)을 지상군 대역을 하도록 건성건성 무장시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병대는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게 갈색과 녹색으로 얼룩덜룩한 새로운 전투복(battle fatigues)와 자동 소총을 받았지만 훈련이나 감시와 통제는 받지 못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카불 공항에서 절망적인 군중을 상대로 경찰봉 등을 휘두르는 탈레반 전사들의 사진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2002년 여름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가 칸다하르 주변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뇌물을 주지 않는 평범한 아프간인들을 공격하는 등 격분을 산 일이 있었다. 트럭 운전사, 결혼식 가는 가족, 그리고 자전거를 탄 아이들도 그 경찰봉의 쓰라린 맛을 보았다.

미군 정보 장교들은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탈레반 지휘관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 등의 방법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들은 현지 관리들과 건설이나 물류회사 사장들 사이의 연관성을 결코 탐색해내지 못했다. 아무도 실제 사용된 원자재의 품질을 예산상에서 질 낮은 품질의 저렴한 원자재와 비교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탈레반들이 누구를 상대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반면에 평범한 아프간인들은 누가 부자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느 마을이 가장 호화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따냈는지 알아챘다. 나아가 서방측 민간과 군 관계자들은 가장 과시적이며 무조건적으로 협력함으로써 부패한 아프간 관리들의 입지를 강화했다. 그들은 리본 커팅식에서 그들과 같은 편에 서서 군사 전술에 대해 논의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선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나 습격을 한 자들에 대해 위협을 가할 수 있다.

* 썩은 것

세라 체이스는 지난 2007년까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의 고위 관리들에게 그런 식의 접근법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노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긴급히 경고하기도 했다. 2009, 체이스는 아프가니스탄의 국제군 사령관(4성 장군) 스탠리 맥크리스탈(Stanley McChrystal)의 특별고문 자격으로 국제안보지원군(ISAF, 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본부에 반부패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다면서, 맥크리스탈의 후임자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는 그룹을 확장하고 태스크포스 샤파피야트(Shafafiyat)로 재명명했다고 소개했다. 오리지널 팀은 아프가니스탄 전국 각 지역의 부패를 해결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마련했다.

세라 체이스는 후에 부패와의 싸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전 지역 캠페인의 핵심 요소가 되도록 좀 더 체계적인 접근방식 개발을 도왔다면서, 정보부에서는 장관, 주지사, 그리고 그 관계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도표화(mapping)했을 것이며,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 군사 및 민간 관리들은 부패가 NATO 작전과 아프간 정부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아프간 관리들에게 단계적인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건을 훔치거나 그들의 부대의 월급을 훔치다 적발된 아프간 군 지휘관들은 미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후에 합참의장 마이크 물렌(Mike Mullen)의 특별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조사를 받고 있는 부패한 관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한 아프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에게 특별히 겨냥할 일련의 조치들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두바이에서 잃어버린 수백만 달러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카르자이 자신이 어떻게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 계획들 중 어떤 것도 시행되지 않았다. 세라 체이스는 퍼트레이어스 장군의 요청에 응했고 그가 자신의 추천에 따라 행동할 의도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꾸며낸 일에 불과했다. 모든 각료급 외교정책 및 안보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수석위원회는 대안적 접근법을 검토하기로 합의했지만, 우리가 전달한 계획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 제임스 존스(James Jones)와 톰 도닐론(Tom Donilon)의 사무실에서 무산돼 버렸다.

샤파피야트 특공대는 계속 작전을 수행했지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부패에 대해 정말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다는 증거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 의회 의원들이 아프간을 방문은 실제로는 보여주기(window-dressing)에 불과했다.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은 금융 조사를 위해 보다 전문화된 태스크 포스인 아프간위협금융조직(AFTC, Afghan Threat Finance Cell)을 구성했다. 이 조직은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 마약 밀매상, 아프가니스탄 관리들 간의 연결로 인해 어느 정도 위협받고 있는지를 입증해 내는 조직이다.

2010년에는 처음으로 중요한 반부패 조사에 착수했다. 이 추적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내부로 이어졌고 경찰은 무함마드 지아 살레히(Muhammad Zia Salehi) 수석 보좌관을 구금했다.

그러나 카르자이는 교정 관계자들에게 전화 한 통으로 용의자를 석방했다. 카르자이는 그 후 ATFC의 수사에 도움을 주었던 아프간 정부의 모든 반부패 검사들을 좌천시켰고, 그들 중 일부는 80%의 급여를 삭감하고 미 법무부의 멘토링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항의도, 조치도 없었다. ATFC의 지도부는 바퀴벌레들이 구석진 곳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The cockroaches went scuttling for the corners)”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그리고 정보기관의 민간 파트너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임무가 부패를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묵살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부패는 아프간 문화의 일부일 뿐이라는 믿음에 동의했는데, 마치 정부 관리들에게 굴욕을 당하고 그들의 강탈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아프간의 일로 치부해왔다.

아프가니스탄의 부패를 폭로하고 퇴치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라 체이스는 단 한 명의 아프간인으로부터 우리는 부패에 신경 쓰지 않는다. 부패는 우리 문화의 일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그러한 언급은 언제나 서양인들의 입에서만 나왔다는 체이스의 주장이다.

다른 미국 관리들은 사소한 부패는 너무나 흔해서 아프간인들은 그냥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고위층 부패는 정치적으로 너무 많이 기소되어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프간인들에게 설명은 더 간단했다.

세라 체이스는 미국은 부패를 원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협동조합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카르자이의 무혐의 처분에 대한 선례는 2009년 아프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확립됐다. 카르자이는 탈레반이 들끓고 있는 지역구들을 투표에 안전하다고 선언한 뒤 탈레반과 협상해 투표함 출입을 허용하되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뻔뻔스럽게 이 선거구를 도둑질했다. 결과는 빈 투표함이었고, 그 다음 채워질 수 있었다. 부정투표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밀폐된 상자를 연 유엔 조사관들이 안에서 온전한 투표용지 패드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모두 같은 잉크로 작성됐다. 그러나 미국은 새 선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존 케리(John Kerry) 매사추세츠 주 민주당 상원의원을 파견해 카르자이 대통령을 설득했다. 결국 공식 결과는 카르자이가 여전히 승리지만 득표의 수는 더 적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배양한 표피적 민주주의의 한 종류였다. 가장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즉석에서 규칙이 고쳐지고, 투표함이 아닌 이미 취임한 사람들에 의해 선거가 결정되는 것이다.

* 다른 방법은 없었나 ?

어떻게 4개 행정부에 걸친 미국 관리들이 아프가니스탄을 그렇게 오해했을까? 여느 복잡한 현상처럼 많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세라 체이스는 진단했다.

첫째, 많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쟁은 항상 성의 없는 노력이었다는 점이다.

2001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들은 이라크에 집착했다. 그들은 반박할 수 없는 정보가 알 카에다(al Qaeda)에 의해 공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했을 때만 마지못해 아프가니스탄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알 카에다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현지 지하디스트(Jihdist)들과 오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미 외교관들과 군 수뇌부는 이라크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국은 두 개의 복잡한 전쟁을 한 번에 기소처분을 하기에는 불가능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아프간의 입장에서 보면,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항상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임무에 대해 양면성을 풍겼다. 부통령으로서 조 바이든은 아프간 개입 반대를 노골적으로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에게 양보를 강요해 미군이 이탈할 수 있도록 한 협상을 감독하고, 끝내는 탈레반의 전광석화 승리(lightning victory)를 이끌었다. 그리고 바이든은 대통령으로서 백악관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12년 전 자신이 원했던 철수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12년 전 일이 아니다.

미국의 4개 행정부 내내 미국 관리들은 일반인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부패의 만연과 그것이 야기하는 혐오감과 같이 아프간인들에게 명백한 비판적 정보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다.

카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는 전쟁을 감독한 4개의 미국 행정부의 대통령 중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심지어 집권을 하지 않아도 카르자이는 백악관을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카르자이는 탈레반 탈취를 만회하기 위해 지역 강대국 및 파키스탄 관리들과 협상함으로써 미국의 굴욕적인 전쟁 수행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수도 있고 또 했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미국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활용하면서, 카르자이 대통령의 ~하는 성질(temper tantrums)’에도 굴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지원을 받는 관리들의 청렴을 조건으로 민간은 물론 군사까지 미국의 원조를 했어야 했다.

미국은 아프간 시장들과 보건부장에게 아프간 정부군의 대령과 대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멘토들을 지원했어야 했다. 그리고 아프간 공무원들과 치안부대에 대한 초임급 급여가 그들의 가족들이 옷을 입고, 음식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도록 보장해야 했다. 그래서 직원들과 경찰관들은 그들의 도둑질을 정당화하기 위해 낮은 급여라는 핑계를 할 수 없게 했어야 했다.

ISAF와 서방 대사관은 탈레반이 칸다하르 주에 설치한 것과 같은 제보 전화와 옴부즈만 위원회를 설치해 시민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었고, 그 불만 사항들은 조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군과 민간 기관들은 파슈토어(Pashto)와 다리어(Dari)로 아프간의 사절들을 더 훈련시켜 아프간 네트워크에 항상 엮여 있고, 더 나아질 할 자신들의 이익을 가지고 있는 통역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어야 했다.

파슈토어()는 아프가니스탄의 공식 언어로 파키스탄 북부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다리어()는 페르시아 말의 일종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Tajik)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직접 이들 언어를 가진 부족과 직접 대화를 하고, 문제를 풀어나갔어야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세라 체이스는 그러한 접근법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미국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전쟁을 수행했던 4개의 미국 행정부 중 어느 정부도 그러한 의제를 채택하지 못했다.

물론 카르자이뿐만 아니라 카르자이 이후 대통령을 지냈고, 탈레반이 대통령궁에 들어서자 국외로 도망친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대통령과 그 아프간 지도자들 역시 비난받지도 않았다.

올해 초 세라 체이스의 협동조합의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가니 행정부에 취임했을 때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눴다면서 넌 전혀 몰라라고 그가 어느 날 창백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 부처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개인적 이익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CFO그 모든 일을 겪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왔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전략적인 계획은 아예 없다. 아무도 이 기관의 임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전략적 계획을 작성할 수 있는 직원도 없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취임한 지 몇 주 만에, 그는 그의 부처가 부정 입찰 과정을 통해 체결한 주요 계약을 취소해야 했고, 그의 예산의 대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견제할 수 있는 부처를 만들려는 전임자의 계획을 중단해야 했다고 한다.

* 바라 볼 거울은 ?

세라 체이스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은 곧 미국의 헤드라인에서 사라질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이고, 학자들과 분석가들은 교훈을 찾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미국인들이 미국을 얼마나 심하게 이해하지 못했는지 보다 덜 중요할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은 매우 다른 곳이며, 다른 사회와 다른 문화의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고, 부패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지도자들이 국가를 무력하게 만들고, 자국민들을 화나게 하는 것에 있어서는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아프간 국가를 공동화시킨 모든 실정과 부패에 대해, 최근 수십 년간 미국 지도자들이 얼마나 잘 통치해 왔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두 번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참패했고, 자유시장을 세계경제를 거의 무너뜨릴 뻔 했던 자유금융서비스산업으로 전향시켰으며, 급성장하는 오피오이드(opioid : 마취제)에 결탁했으며, 세계적 대유행(Pandemic)에 대한 그들의 대응을 망쳤다.

그들은 환경재앙을 재촉하는 정책을 공표하여, 지구가 얼마나 더 인간의 거주를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재앙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화석연료와 제약업계 임원, 투자은행, 방위산업체 등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득과 자산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들의 인식과 행동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엄청난 부와 그들이 내포한 재난으로부터의 편안한 보호는 그들의 성공을 증명한다.

물론 그들은 리더십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리더십은 그들의 목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그들의 주된 목적은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돈은 전쟁을 통해서, 부패를 통해서, 독재자를 통해서, 그리고 권력을 토해서 벌 수 있다는 마치 진리와 같은 상황에 세계는 놓여 있다.

공정하고 공평하며 정의로운,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권은 없다. 또 그러한 정권교체도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모 정치인이었던 분이 했던 말처럼 정권교체는 없다. 단지 이권교체(利權交替)만 있을 뿐이다세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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