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26)
[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26)
  • 오원철 박사
  • 승인 2007.04.11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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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기계공업의 태동(자동차) - ⑮

 
   
  ^^^▲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자동차 국산화계획 발표

이 안은 박 대통령의 강력한 자동차 국산화 지시에 의해서 김정렴 상공장관 시대에 만들어졌으나, 발표는 1969년 11월 3일에 부임한 이낙선(李洛善) 장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윤승식 (당시) 자동차담당관이 이 안을 결재 받으려고 장관실에 갔는데, 이낙선 장관은 자동차공업에 대해서 많은 상식은 없었고 그 내용이 너무나 혁신적이어서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3년 안에 자동차를 완전 국산화하겠다는 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때 필자도 동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장관 보고 "한시간만 시간을 주십시오. 현장(공장)에 가서 설명하면 납득이 갈 것입니다"라고 건의했다.

그래서 이낙선 장관, 윤승식씨, 그리고 필자 셋이 그 길로 원효로에 있는 원효(元曉)보링 공장에 갔다. 원효보링 공장은 필자가 시발자동차에 근무할 때부터 알던 단골공장이다. 그 공장에서 엔진의 실물을 놓고 설명했다.

재생용 엔진을 분해한 실린더 블록, 실린더 헤드의 마모가 된 부분을 연마(硏磨)하는 과정, 보링과 호닝하는 과정, 그리고 밸브시트나 기타 마모된 곳을 모두 연마기계로 정밀하게 가공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엔진주물을 가공하는 것과 똑같은 작업입니다. 어느 한구석도 손을 다시 보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이때 이낙선 장관은"이제야 알겠소. 엔진 주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엔진을 기계가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라고 흥미를 표시했다.

다음 단계로 가서 가공된 엔진 블록에다 여러 가지 부품(신품 또는 수리품)을 새로 끼워 넣어가며 조립하는 과정을 보았다. 필자는 "이 과정이 엔진 조립공정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한 후, 엔진을 시운전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때 엔진은 시동을 걸자마자 씽씽 돌아갔다.

 
   
  ^^^^^^▲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필자는 원효보링의 공장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공장에 엔진주물만 갖다주면 엔진을 만들 수 있지요?"라고 했다. 공장장은 "물론이지요. 엔진 블록만 있다면 이 공장에서도 하루 수십 대는 만들어 내겠습니다"라고 한다.

이 장관이 "이런 소규모 공장에서도 하루 수십 대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오?"했다. 공장장은 "엔진이 별것입니까. 기계만 몇 대 보충하면 100대도 가능하지요"라고 하며 별것도 아니라는 투로 답변했다. 이 공장장의 말이 이 장관에게 확신을 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원효보링공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결재를 하고 다음날 발표했다. 1969년 12월 29일이었다. 이상은 윤승식씨의 회고담이다.

국산화 계획에 대한 업계의 반응

윤승식씨는 "이 장관이야말로 자동차 국산화의 큰 공로자"라고 하며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 장관은 국산화에 대해서 한치의 후퇴도 없었다고 한다. 윤승식씨는 자동차 국산화를 밀고 나간 그 힘의 원천은 이 장관의 후광에서 나왔다고 회상한다. 자동차 국산화 계획이 발표된 후, 윤승식씨는 가망없는 공상(空想)을 추진한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온갖 혹평을 받았고 자동차 조립업자로부터는 끊임없이 곤욕을 당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현대 "코티나"는 포드와 기술제휴로 만들어지는 차인데 동양기계에서 나오는 미션이나 차축은 품질이 나빠 못쓰겠다며 항의가 심했다. 윤승식씨는 국산화 방침대로 국산품을 쓰라고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사장이 이 장관에게 부탁했으나 이 장관 역시 끄덕도 하지 않았다. 포드쪽에서는 국산 미션을 쓴다면, "코티나"차에 붙어 있는 Ford 마크를 부착하지 못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나왔다. 그래서 윤승식씨는 동양기계(株)에서 먹여 살린다는 모략까지 받았다.

미션이나 차축은 참 알고도 모를 기계이다. 필자도 이것 때문에 과거 공장에서 근무할 때 많은 고생을 했다. 멀쩡하던 것이 조립만 좀 잘못돼도 소리(雜音)가 나곤 했다. 일단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그 소리를 없애기가 불가능하다.

소위 소리나는 미션, 소리나는 차축이 된다. 우는(泣) 미션, 우는 차축이라고들 했다. 결국 소리 때문에 생기는 분쟁이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사가는 고객들도 자동차를 주문할 때, 외제품을 사용한다는 조건을 붙이기 일쑤였다.

이렇게 되니 문제는 점점 심각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 소리(雜音) 문제는 시간이 흐르자 기술의 발달로 차차 작아졌으나 결국은 미국의 보그 와너 회사와 기술제휴를 한 후에야 완전히 해결되었다.

자동차 차륜(Wheel)은 하동환자동차에서 책임을 졌다. 품질은 괜찮았으나 값을 비싸게 받았다. 수입 값의 2∼3배였다. 하동환자동차가 독점기업 꼴이 된 것이다. 더구나 납기도 잘 지키지 못했고 친한 업체 것을 먼저 해주니 말썽이 날 수밖에 없었다.

국회에서도 문젯거리로 등장했다. 상공부가 독점시켜 한 업자만 배부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여하간 하동환자동차는 차륜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났고, 윤승식씨는 모략을 많이 받게 되었다. 상공부는 한국생산성본부에 원가조사를 시켰다.

그러나 하동환자동차가 제출한 가격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산업개발연구소(KID 소장: 白永勳)에도 조사를 시켜보았으나 거의 대동소이했다. 그래서 윤승식씨는 이 원가에서 무턱대고 10% 정도를 깎으라고 하동환 사장에게 요청을 해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가격보다는 아직도 2배 이상 비싼 값이었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자동차 원가계산이었다"라고 윤승식씨는 회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위기는 겨우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69년 자동차 국산화정책이 발표된 후의 업계나 언론계의 반응은 이렇게 차가웠다. 상공부의 의욕적인 자동차 국산화계획이 과연 실천에 옮겨져 예정대로 3년 만에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상공부의 자동차 완전 국산화계획은 놀랍고도 돌발적인 것이었다. 자동차 조립회사들도 상공부의 방침에 그 추이만 지켜볼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자동차 엔진공장 건설계획 발표

필자는 1970년 1월 28일 광공전(鑛工電) 차관보로 자리를 옮겼다. 자동차공업 육성도 나의 직접 담당업무가 된 것이다.

필자는 권광원 과장과 윤승식 사무관을 불러 자동차 국산화계획을 예정대로 밀고 나가되 한 계단 한 계단씩 행정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① 우선 엔진주물공장 건설주체를 4월말까지 선정하고, 6월에 이를 확정공표해서 공장건설을 추진한다. ② 1971년 하반기부터는 엔진을 SKD에서 CKD 상태로 도입해서 엔진조립을 실시할 것이며, ③ CKD로 수입할 때 국산부품을 많이 사용토록 조치한다"라는 기본지침을 지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속히 기자회견 자료를 작성토록 했다.

이래서 1970년 2월 6일 이낙선 상공장관의 기자회견이 이루어졌다. 제목은 "자동차 엔진공장 건설 추진계획"이었다. 그 내용은 이미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세부방침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엔진주물공장의 규모는 월 2천톤으로 한다.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쓰고 남은 것은 수출한다(註: 당시 주물공장은 일본에서는 사양산업이었기 때문에 수출이 가능했다.) 생산개시는 1971년 말이다. 공급가격은 自社 사용시나 他社에 공급할 때나 동일해야 한다(註: 주물은 大中小에 따라 무게대로 값을 정하면 된다.) 공장건설 사업계획은 3월 15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심사방법은 "자동차 국산화 촉진위원회"를 새로 구성해서 심사한다. 촉진위의 구성은 위원장에 광공전 차관보(筆者), 위원에 공업2국장, 공업연구소장, 경제기획원 협력국장, 기계진흥회장, 자동차공업협동조합, 주물공업협동조합, 기계협동조합의 各 이사장으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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