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정서(대법원장, 광주지방법원장) -완성본-
긴급 진정서(대법원장, 광주지방법원장) -완성본-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12.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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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정   서


수신 : 대법원장, 광주지방법원장  

진정인 :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대표)
           주식회사뉴스타운(대표이사)

위 진정인들은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 개선에 관련한 진정을, 진정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드리고자 합니다.  

진정 취지

1. 광주지방법원의 월권 재판 : 형사소송법 제4조 및 제15조가 사문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엄격히 준수하도록 시정조치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는 위 두 개의 법조항이 잘 지켜주고 있지만, 5.18 사건에 대해서는 광주가 위 두 개의 법을 무시하고 광주에서 재판을 하고 있으며, 그 재판은 심히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5.18과 관련한 똑같은 내용의 표현에 대해 2002년에는 안양 거주의 국민을 광주검찰이 체포팀을 보내 안양주민에 수갑을 뒤로 채워 가지고 온갖 폭행과 욕설을 하면서 끌고 가 징역 10월의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2009-2012.에는 그보다 더 강한 표현에 대해, 안양지원-서울고법-대법원에서 재판을 하였는데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5.에는 광주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이창한)사건 2015카합636(증1) 에서 또 관할을 무시하고 1) 서울 사람들에 대한 서울법원 소관의 가처분사건 재판을 월권하였으며, 2) 서울 사람들에게 방어의 기회를 박탈한 채, 소장 접수일자 3일 만에 밀실재판으로 결정문을 써서 익일특급으로 서울사람들에게 특별우송하였습니다. 이러한 파행이 대한민국 아니 세계 재판 역사에서 또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진정인의 변호인이 2015.11.23.에 이의신청서(증2)를 광주지방법원 민사신청부로 송달하였고, 광주지방법원은 이 의의신청 사건에 사건번호를 2015카합749로 부여하였습니다. 이 '이의신청서'에는 사법사상 있어서는 안 될 마구잡이식 파행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지적-묘사돼 있습니다. 이 '이의신청서'는 사실상 사건이송 소장 역할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는 이의신청사건(2015카합749)을 담당할 객관적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위 진정인들은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 판사 3인을 포함해 이 가처분사건 신청인 2명(박남선, 심복례) 등 총 5명을 상대로 대검찰청에 고발하였으며, 이들 3인 판사들에 대한 고발 혐의는 형법 제123조(직권남용)의 죄, 형법 제98조(간첩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의 죄, 제10조(불고지)죄, 제12조(무고, 날조)의 죄, 형법 제99조(일반이적)죄, 형법 제93조(여적)죄, 형법 제227조 (허위공문서작성 등) 등의 죄목입니다. 타당성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제21민사부와 위 진정인들 사이에는 고발인-피고발인 관계가 성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계로는 위 진정인들이 보낸 이의신청사건(2015카합749)을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가 심의할 수 없다할 것입니다.  

3. 광주법원 자체가 5.18 사건을 관할할 수 있는 객관성 결여 : 설사 광주지방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이 사건을 맡는다 해도, 제21민사부가 5.18에 대한 지역정서로 파행을 저질렀듯이 다른 광주법원의 재판부라고 해서 이러한 파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확증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원칙대로, 그리고 "남보기 좋게" 서울로 이송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광주법원의 자존심이며, 대한민국 사법부의 자존심에 부합할 것입니다. 법정신에 따라 관할을 지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사실상 진정인들이 광주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일 : 만일 광주법원에서 이 사건을 끝까지 고수한다면 부득이 위 진정인들은 재판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진정인들이 광주에 간다면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받게 됩니다. 몰매 속에서 맞아 살해될 수도 있고, 염산 같은 무기로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정황적 증거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 2015.11.14. 광화문에서 발생한 폭력 형태를 보면, 경찰은 매를 맞는 집단이지 누구를 보호할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광주경찰이 신변보호를 한다면 광주경찰은 2002.10.24.에 그러했듯이 오히려 진정인들을 기술적으로 해코지 할 것이며, 서울 경찰이 나선다 해도 그들은 광화문에서처럼 자신들의 안녕도 지킬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실제로 2002.8.20.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이 인솔한 어깨들 12명이 검은 유니폼을 입고 올라와 지만원의 사무실, 아파트, 차량을 파괴하였고, 파괴하는 동안 경찰은 이를 지켜만 보았습니다.(증3), 일부 광주시민들의 폭력사례는 뒷 부분에 제시돼 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우려가 있고, 이 유려가 과거의 행위들로 뒷받침되어 있는 한, 위 진정인들은 재판과 생명을 맞바꾸어야 하는 운명을 사법부로부터 강요받고 있는 것이 됩니다. 아래에 제출되는 광주시민들의 폭력행위를 감안한다면 그 누구도 진정인들더러 재판을 광주로 받으러 오라 강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광주폭력 앞에 속수무책인 타지역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광주법원이 일단 저질러놓은 파행적 판결을 굳히기하려 한다면 이는 사법부 전체의 불명예가 될 것이며, 법치국가이기를 포기하는 사태가 될 것입니다.  

5. 모든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인물이 새로운 사실의 출현과 해석의 다양성이 대두됨으로 인해 공론화되고 있는 마당에, 유독 5.18역사에 대해서만은 1997년 대법원 판결을 신성시하고, 그 판결과 다른 사관을 표현하지 말고, 그 판결에 시정을 요구하는 그 어떤 새로운 증거도 세상에 내놓지 말라는 것은 엄청난 비상식이요, 반헌법적입니다. 제21민사부는 5.18역사에 대한 사관을 1997.4.17.의 대법원 판결을 신성불가침의 사관으로 인정하고, 그에 반대되는 그 어떤 사관과 사실(팩트)의 발굴-표현 자체를 불법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심각한 수준의 헌법유린행위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사법부의 원칙을 공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광주지법 제21민사부가 범한 파행들(증2)

위 진정인들은 5.18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인터넷과 종이신문 호외지에 발표하였습니다. 광주에서 찍힌 사진들 속에 나타난 인물들 중 백여 명이 북한권력의 핵심 인물이라는 사실을 국제수준의 영상분석 기법에 의해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광주에 왔던 북한사람들”은 280여명에 이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이 주연하고 광주가 조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 팩트(사실)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2015.9.22. 광주의 5.18단체 4개 대표와 5.18유공자 박남선 및 심복례 등 6인이, 이렇게 새롭게 발굴된 역사사실들을 인터넷과 종이신문 호외지에 발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을 광주지방법원에 긴급 호소하였습니다(증4). 광주 지방법원은 어떻게 사건배당 절차를 밟았는지 모를 정도로 사건을 제21민사부에 배당하였고, 제21민사부는 사건을 서울로 보내지 않고 월권하였으며, 소장 제출 3일 만인 10.25.에 피신청인들에 사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은 채 심문절차 없이 밀실 재판을 하였습니다. 아래는 변호인이 작성한 ‘이의신청서’(증2)의 요지입니다. 모두가 민주주의 국가, 논리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파행이라는 시실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원결정의 절차 위반

1) 관할 위반 : 이 사건을 광주에서 관할해야 할 아무런 명분도 근거도 없다.  

2) 신청인들의 당사자 부적격 : 가처분신청을 한 6인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이에 대한 판례는 2012.12.27. 대법원 판결 및 그 이전의 1,2,3심 판결이 명백하게 제공하고 있다(증5,6,7)). 2008년에 지만원을 고소한 광주사람들 역시 고소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 신청인들 역시 신청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판시는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한 판례에 해당한다.  

3) 무변론 재판 : 공개적인 재판을 열고, 당사자들을 법정으로 불러 변론을 전개해야 함에도 이를 생략하였으며, 광주법원은 5.18에 대한 지역정서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을 직접 관장하여 객관성을 상실했다. 채무자(진정인)들에게 신청서 부본도 송달하지 않았고, 재판을 열지도 않았고, 무변론 무심문을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도 이런 파행을 감행했다.  

4) 주문의 불명확성 : 결정문을 보면 "별지 호외신문지"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종인 신문과 인터넷에 게재하지 못하도록 판시되고 있다. 이 내용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막연하여 표현의 권리를 과잉제한 하였다.  

2. 피보전권리의 부존재

1) 명예훼손 피해자의 특정에 대한 문제 : 신청인들은 지만원이 2012.12.27. '대법원에서 무죄확정한 것을 이유로 동일한 내용을 자꾸만 표현 한다'고 가처분신청 이유를 제시하였고, 원결정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역사연구의 발표를 법률로 금지하는 엄청난 법외의 독단이다.  

2) 채무자(진정인)들의 불법행위 책임 문제 : 채무자들은 광주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다. 지만원은 5.18 사건 관련 수사 및 재판기록, 검찰의 최종보고서, 안기부 자료, 북한자료, 통일부 자료, 5.18 기념재단이 발행한 자료 등 수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인용하여 오로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광주에서 찍힌 사진들을 가지고 영상분석을 하여 그 얼굴들이 북한 정권의 핵심 요원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 자료들로부터 추론된 결과를 18개의 Smoking Guns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결국 지만원은 '5.18을 주도한 세력은 북한'이고, 광주가 이에 부화뇌동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한편, 북한은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남한의 모든 민주화운동은 북한이 주도한 반미 반파쇼 투쟁이었으며, 그 중에서 5.18이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 사건이라는 내용을 기술하였다. 채권자들은 이 엄연한 사실마저 부인할 것인가 묻고 싶다. 채권자들은 또 북한당국이 5.18을 북한 특수군이 와서 주도했다고 발표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묻고 싶다.  

3) 박남선과 심복례의 허위주장 : 박남선은 채무자(진정인)가 황장엽이라고 지목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 주장하고, 심복례는 리을설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항장엽 얼굴과 리을설 얼굴인 것인지를 증명할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했다.  

채권자 심복례는 황장엽이 체포해 살해한 것으로 분석된 김인태(1933)의 처다. '5.18 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에 의하면 심복례가 해남에서 광주로 올라온 날짜는 잘해야 5월 30일이다. 그러나 리을설이 찍힌 날짜는 5월 22일 또는 23일이다. 5월 30일 이후에 광주로 올라온 심복례가 어찌 5월 23일에 찍힌 사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며, 북한군이 정렬해 있는 집단에 어찌 시골 아낙이 들어가 있는 것이며, 도청 안에 들어 가 있는 것이며, 이 시체 저 시체 관을 바꾸어 가면서 통곡하는 모습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인가?  

박남선 역시 그가 어째서 황장엽으로 지목된 그 사람인지에 대한 아무런 소명이 없다. 박남선은 당시 26세의 화물차 운전수였고, 같은 달 26일에 비로소 형성된 수습위원회(항쟁본부)의 상황실장이었다. 하지만 황장엽은 당시 58세였다. 박남선과는 무려 32세의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한 소명이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소명이 없다. 황장엽 자리에 박남선이 서 있었다면 그가 통솔한 북한사람들에 대한 신원을 맑히고 북한군을 통솔하게 된 된 동기와 과정을 밝혀야 한다. 그가 들고 있던 무전기는 이디서 어떻게 구한 것이고, 누구와 통화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밝혀야 하고, 그가 소지한 유탄발사기에 대해서도 같은 소명이 있어야 했다. 채무자들이 제시한 영상 분석 내용을 보면 그 사진속의 인물은 오직 황장엽과 일치할 뿐, 박남선과는 일치점 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하학적인 영상분석 결과는 그 사진 속 인물이 분명 황장엽과 일치했다. 하지만 박남선은 신청서에 그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았고, 재판부는 이에 대한 보정명령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4) 헌법위반 및 소명부족 : 원결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3개 법률과 1997년 대법원 판결을 신성불가침의 바이블로 인정하고,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끌어다 북한군 얼굴이아 주장하면서 별다른 근거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판시 했다. 따라서 신청인(채권자)들은 이로 인해 인격권이 침해당했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피보전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알권리 등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쉽게 봉쇄되어서는 안 된다. 5.18 이라 해서 알권리에서 제외되는 성역이 될 수 없다. 기존의 역사적 판단에 대해서는 기존의 사관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는 경우, 언제나 국민에 알려 공론화과정을 거쳐 공론의 시장에서 각축해 왔다. 채무자들 역시 이러한 기본권들을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원결정은 오직 채무자들의 연구결과가 1997년의 대법원 반결과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기본권을 박탈하였다. 원결정은 헌법규정들을 위반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와 역사적 인물들이 모두 공론의 시장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지금 유독 5.18에 대해서만큼은 대법원 판결, 그것도 1980년의 대법원 판결이 아닌 오직 1997년의 대법원 판결만을 신성불가침으로 정해놓고 지역정서가 작용하는 과우주가 나서서 광주사람들의 증거가 수반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만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은 공정성을 완전히 결여한 것이다.  

원결정은 채무자들이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판사했지만, 이는 허위판시다. 채무자들은 당시까지 180명에 대한 영상분석 자료를 공개했고, 그에 수반된 북한의 전략까지 연구했다. 원결정은 채무자들에게 증거자료를 제출한 기회를 주지 않고 마치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전격 처리했다. 영상분석 인물들 중에는 육안으로 얼른 보아도 같은 인물람인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육안 판별이 불가능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과학기관에 분석을 의뢰하여 당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원결정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재판서류 제출 3일 만에 전격처리했다. 사실확인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증거도 심문도 없이 밀실에서 3일 만에 처리한 것은 공정한 재판으로 인정할 수 없다,  

3. 보전의 필요성과 긴급성의 부존재

채무자들이 이 사건 관련자료를 공표한 것은 2014.10.에 발간된 "5.18분석 최종보고서"와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서 소상하게 밝혀진 내용들이다. 이미 1년 전부터 책자와 인터넷을 통해 발표된 연구결과를 이제 와서 긴급히 정지시킬 보전의 필요성이 있고, 긴급성을 요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학자의 연구결과를 이유 없이 탄압한 직권남용의 위법 이외에 그 어떤 다른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4. 무담보 가처분의 부당성

가처분을 인용할 경우 신청인에게 상당한 담보제공을 명하는 것이 실무관행이다. 그런데도 원결정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채무자들이 제시한 영상분석 결과는 과학적 분석과정을 거친 것이고, 대상 인물들 중에는 얼른 육안으로 보아도 같은 인물인 경우가 많다. 채무자들이 제시한 자료들은 과학적 분석을 거친 것들이다. 이를 호외지를 이용해 널리 알린 행위는 정당하다. 원결정으로 인해 아직도 배포하지 못한 호외지가 많이 있다. 만일 회외지 내용이 정당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신청인들은 피신청인들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데 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런데도 원결정은 손해배상 담보의 요구 없이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는 매우 부당한 행위다.

5.18 관련 광주사람들이 저지른 폭력 사례

1) 광주 사람들 서울로 몰려와 2개 방송국, 전두환 사저를 철조물로 공격하고 경찰집단을 폭행했다. 개인이 당했다면 충분히 살해될 수 있다. 살해 돼도 누가 살해했는지에 대한 증거까지 없앨 수 있다.(증9)  

2013년 6월 10일, 광주사람들이 서울로 대거 몰려와 전두환의 집과 종편 방송국들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했다. 방송사를 지키는 경찰들에 밀가루를 뿌리고, 건물 유리에 계란과 토마토를 뿌리고 철물과 발로 유리창을 타격했다.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송들을 즉시 처벌하고, 전두환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주장을 했다. 바로 위 광주MBC의 보도 내용 그대로다. 이러한 폭력을 소수의 비무장 개인들이 당한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증9의 사진들)

광주 MBC 촬영 뉴스 http://youtu.be/zvr6D8Go7HY

2) 5.18 단체가 지만원을 고발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안양지원에서 진행되고 있을 때, 대형버스 2대를 타고 법원에 들어와 노인들의 탁을 치고 욕설을 퍼붓고, 창가를 향해 서 있는 40대 여성을 뒤로부터 공격하여 귀거리에 귀가 찢어져 유혈이 낭자했다. 재판도중 피고인과 변호사와 재판부를 향해 욕설을 하여 재판이 3번씩이나 정회됐다. 법정으로 들어가는 지만원의 얼굴을 쪼사 놓는다며 여러 명이 집단으로 대쉬해 하마터면 얼굴을 보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증10.11) 

2010년 10월 29일, 안양법원에서 있었던 광주사람들의 행패를 적은 글입니다. (증2) "5.18부상자회장 신경진이 고소인이자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2번째는 버티더니 세 번째 구인한다고 하니 쌈쟁이들 70여명을 몰고 왔다. 이들이 재판정에서 보인 행동은 도저히 인간들의 짓이 아니라 맹수들의 발광이었다. 필자는 광주 5.18 사람들이 왔다 해도 맹수처럼 덤벼들고 욕설을 하고 넋 놓고 있는 부녀자에 돌진하여 폭행을 하는 이런 야만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젊은 회원님들이 필자를 에워싸고 검색대를 통과할 때에 그들은 떼로 덤벼들었다. "지만원 이 씨발새끼 어디 얼굴 좀 보자" "개새끼 얼굴을 긁어놓아야 한당께" "지만원이 저 개새끼 나올 때 봐라, 뒈질 줄 알아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순간 검색대 안으로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필자는 엄청난 봉변을 당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을 뻔 했다. 이런 살벌한 사람들을 신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평소 때처럼 옆 사람과 대화하면서 올라가려 했던 필자가 얼마나 순진무구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양쪽 모두 방청석은 24개씩만 허락되었다. 나머지는 법정 밖에 있는 넓은 로비에서 대기했다. 방청석을 얻지 못한 어느 40대 주부는 노회원님들 옆에 무심히 서 있다가 엄청난 폭행을 당했다. 한 남자가 뒤로부터 돌진하여 오른 손으로 한 주부 여성의 귀 바퀴 부분을 가격하여 귀가 찢어지고 십여만 원짜리 귀고리가 날아갔다. 재차 때리려는 것을 어느 남성이 가로 막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112로 신고를 했다. 112가 출동하여 귀에 난 상처와 피를 사진 찍고 곧바로 조사를 받으면 범인을 검거해 주겠다고 하면서 다시 법원 3층으로 올라와 범인의 얼굴을 찾으니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법정 밖의 행패. 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정의봉님의 방청소감이 게시돼 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저는 재판정에 입장하지는 못하여서 대기실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만 말씀드립니다. 호남인들의 피해의식에 가득한 그 당당함에 우리 쪽은 사분오열, 지리멸렬되어 저들의 온갖 욕설과 협박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례로 많이 쳐주어도 40대 초중반쯤 되었을까하는 자가 60대로 보이는 우리 쪽 회원에게 "아그야! 니가 뭘알아서 떠드냐"는 선창과 함께 이어지는 저들의 욕설...,칠.팔십대 어르신들이 앉아있는 곳을 향해 시종일관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욕설을 뱉어내는 저들이 진정 "5.18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들인지요...? 5.18 이라고 인쇄한 군대식 머플러를 단체로 맞춰 쓰고 남녀노소가 벌이는 집단적인 발작증세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가끔 바른 소리하시는 어르신들은 이들의 표적이 되어 집단의 광기에 희생양이 되었고 이 상황에 고무된 자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서 어느 어르신의 태극기 뱃지까지 뺏으려는 만행을 저지르자 우리 쪽 회원분이 겨우 저지시켰습니다. 어제의 일은 호남에 대한 부정적인 저의 시각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이 더러운 일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에 글을 올리지 않으려고 했고, 정말 간단히 쓰려고 했습니다."  

"시종 어른들에게 왜 지만원이를 따라다니느냐며 상욕들을 퍼부었다 한다. 아래는 파랑새님의 글이다. 방청권을 받지는 못해.......법정 밖 대기실에 한동안 있다가 왔습니다......사진도 서너장 찍고,,,,,그들의 얼굴도 구경하고 왔는데..........한마디로,,,,인간이 아니더군요,,,,,살다가 그런 인간들 처음 보았습니다.....대기실을 쩡쩡 울리며---"쪼사버릴 새끼들" "갈아 마셔 버리겠다" "오늘 아무나 년이든 놈이든 한놈 걸려라,,,작살을 내어버리겠다" "광주에 대해 너거들이 머 안다고 개지랄이냐"  

"욕이란 욕은 다 하는데,,,,,, 녹음기를 가져 오지 않은게,,,,후회가 되었습니다.......완전히 정신병동을 법원으로 옮겨 온것 같았습니다.....뚱뚱한 뇨자들이 남자들 보다 더 패악질이더만...........전라도 광주의 말투가 그렇게 살벌하고 추악스러운지,,,새삼 느꼈습니다......시비가 생길것을 우려하여,,,상대 하지 말라는 글을 읽지 않았다면.......진짜 욱 할뻔 했습니다..." 

"공익요원 5명,,,법원 경호 5명 정도가 있었는데.........몸으로 밀고 당기고 패악질 하다가,,,,경찰을 불렀는데.........경찰 2명이 들어서서,,,,누가 그랬냐,,,누가 때렸느냐 찾아나서자........그 떠들던 인간들이,,,,우리가 언제 때렸느냐,,,함시롱.......의자에 가서 앉으면서,,,,,몸을 사리더만,,,,,,휠체어 타고온 인간들,,,,,,,일부러 빵꾸낸 양말에 붕대감고 슬리퍼 신고,,,짝대기 짚고 온 인간들.......머 안다꼬 지만원이 따라다니며,,,일당 얼마받고 쓰잘데 없는 짓을 하느냐.....광주를 비난하는 너거들이 빨갱이 새끼들이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서석구 변호사의 글을 증3으로 제출합니다. 상경한 광주인들이 벌인 법정 소람으로 휴정이 3차례나 있었다는 글입니다.  

3) 2010.7.9. "광주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5.18 실체규명 촉구대회"를 하려던 서울 시민 여러 명이 광주에 가서 경찰이 지정해준 시위장소를 확인할 찰나에 5.18 단체 소속요원 60-70명이 갑자기 나타나 테러를 가했고, 중산을 입은 환자를 구급하러 온 구급차마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는 무서운 뉴스가 있다.(증12)  

4) 2002.10.22. 광주검찰이 보낸 서부경찰관 등 4명은 안양 거주 지만원 아파트를 급습하여 지만원의 팔을 뒤로 비틀어 수갑을 뒤로 채우고 6시간 동안 폭행과 폭언과 욕설을 계속했고, 화장실로 거부하면서 아버지 벌되는 지만원의 머리, 뺨, 턱을 마구 때렸다. 검찰에 도착해서도 최성필 검사는 수갑을 풀어주지 말라며 2시간 더 조사를 했다. 이어서 구속적부심 판사 정경현은 탁자를 치며 지만원을 노려보고 고함을 치다가 아버지 벌되는 광주 변호사(이근우)에게까지 모욕을 주었다. "변호인은 광주시민들로부터 무신 욕을 먹으려고 서울사람을 변호하요?"(증8)  

"니미 씨팔 좃 같이,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씨발놈아,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이 씨발 개새끼 가다가 목을 비틀어 파묻고 가야 한당께,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처먹었냐,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받아 챙겼것냐, 부하 꽤나 잡아 쳐먹었을 거다. 이런 쥐새끼 같은 개새끼,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당께. 너 이새끼 가다가 죽을 줄 알아, 너를 때려 죽여서 파묻어도 증거가 남냐? 증거가? ..."  

2002년 10월 22일, 자식 벌 되는 광주 검찰청 조사관과 서부경찰서 경찰 3명으로부터 6시간 동안 차에 갇혀 들었던 욕의 대강이다. 6시간 동안 안양에서 광주로 호송되는 동안 수갑을 뒤로 채인 채 찰싹 찰싹 뺨도 맞고 머리도 수 없이 쥐어박혔다. 한 30차례는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송되는 동안 아마도 광주지검의 최성필(서울지검을 거쳐 여주지청) 검사실로부터 받는 전화였는지, 이들은 각기 전화를 받았다. "네, 김용철입니다" "네, 이일남입니다" "네 박찬수입니다" "네 이규행입니다"  

뒤로 채인 수갑의 아픔을 견디면서 나는 수 없이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적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다가 몰매를 맞았다. "야 이 씨발 개새끼야, 바지에 흥건히 싸부러, 좃대가리를 팍 뭉겨버리기 전에" 광주검찰청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더니 바짝 옆에 붙어 "이 이 씨발놈아 빨리 싸부러" 최성필 검사실의 또 다른 조사관(이름 모름)이 옆에 붙어 채근했다. 수갑을 뒤로 채였는지라 팔과 손가락이 퉁 퉁 부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빨리 싸부릴" 수 있겠는가?  

최성필 검사가 나를 보더니 곧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 이회창에게서 얼마나 먹었어, 돈 벌려고 한 짓 아냐? 이 개새끼 수갑 풀어주지 말고 밤새워 조사해"  

검사로 보이는 여성이 살랑살랑 최성필 검사실로 걸어 들어왔다. "이 자가 지만원이라는 그자 랑가? 어이, 이 보소, 얼굴 좀 들어 보소 잉, 당신 눈에는 광주시민 전체가 빨갱이로 보이요? 당신 눈에는 여기 있는 우리가 빨갱이로 보이요? 이 자도 인간이랑가 잉~, 참말로라 잉, 광주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무신 민주주의가 생겼겠소. 어림도 없재이 잉~ 이 보소, 당신이 시스템공학 박사요 엥? 시스템공학이란 게 있당가, 어디서 학위를 받았소? 처음 듣는 건디 이거 가짜 아닝가벼, 좀 알아봐야 겠구만, 어이 좀 알아보소"  

내가 광주지법에서 처음 만난 판사는 정경헌(1957, 전남 함평), 그는 10월 24일에 영장실질심의를 진행했다. 그는 필자의 변론을 맡은 광주출신 이근무 변호인(당시66세)에게 "변호인은 광주 시민들에게 무슨 욕을 들으려고 서울 사람의 재판을 맡았소"라며 아버지 벌 되는 분에게 모욕을 주었다. 이 때 무료변론을 맡은 서울변호사는 임광규, 정기승, 강신옥, 이종순이었다.  

이근무 변호인이 필자의 경력과 훈장 받은 사실들을 나열하자 "시끄럽소, 지저분한 신문은 집어치우시오"라고 또 한 차례 면박을 주었다. 이어서 정경현 재판장은 필자를 삼킬 듯이 노려보면서 "당신이 광주에 대해 무얼 아요?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구속영장은 발부됩니다. 이상이오"  

10월 30일, 구속적부심 재판이 열렸다. 김용출 부장판사(1959년생 전남 장성)가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나의 형님도 아무런 죄 없이 계엄군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초를 받고 왔소. 이런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요?"  

형사소송법 제15조는 지역정서가 작용하는 본 사건을 광주지법 이외의 다른 지역 법원으로 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의 서울지역 변호인들은 이 지역정서와 관할권을 이유로 관할이전신청을 3회씩이나 냈지만 광주지법은 이러한 법의 정신과 실정법을 무시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검찰과 법원이 저질렀다는 그 정도의 사실들만으로는 광주가 지역정서를 가지고 재판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대법관은 강신욱(재판장) 조무제(주심) 유지담, 손지열이었다.  

나에 대한 판결문의 요지는 "5.18은 비상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등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벌인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5.18 특별법이 규정해놓고 보상법으로 부상도 받고 있는데 사망한 자들이 마치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하여 선동되어 일으킨 폭동인 것처럼 허위로 묘사하여 사자와 생자의 명예를 다 같이 훼손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5.18이 전두환의 내란을 분쇄하여 헌정질서를 수호하려고 일어난 성스러운 운동이고, 여기에는 불순세력과 북한특수군이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는 건방진 판결문이었다. 1심 재판장은 전성수, 2심 재판장은 박삼봉이었다.  

이것이 2002년의 광주였다. 광주의 5.18 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은 2002년 8월 20일, 검은 유니폼에 검은 구두를 착용한 어깨 12명을 데리고 올라와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아파트를 부수고 차를 부수고 사무실을 부수며 동네 방네 소란을 피웠다. 아마 경찰이 나와 내 가족에게 급히 피하라는 연락만 없었어도 더 큰 신체적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10년 10월 29일, 내가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쓰자 그 책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5.18 부상자회장 신경진이 2008년에 고소를 했다. 누구든 감히 5.18을 건드리면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나의 변호인인 서석구 변호사의 요구에 의해 검찰은 신경진을 증인으로 불렀다. 출두명령에 2번씩이나 안 나오더니 세 번째 구인한다고 하자, 쌈쟁이들 70여명을 몰고 왔다. 이들이 재판정에서 보인 행동은 도저히 인간들의 짓이 아니라 맹수들의 발광이었다. 내가 젊은 회원들이 필자를 에워싸고 검색대를 통과할 때에 그들은 떼로 덤벼들었다.  

"지만원 이 씨발새끼 어디 얼굴 좀 보장께~" "개새끼 얼굴을 긁어놓아야 한당께" "지만원이 저 개새끼 나올 때 보자구, 니 뒈질 줄 알아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안탕께로" 손톱을 내밀고 달려드는 광주여자들을 나는 간만의 차로 피할 수 있었다.  

광주사람들의 행패를 예견한 재판부는 양쪽에게 각 24개명씩만 입장시켰다. 나머지는 법정 밖에 있는 넓은 로비에서 대기했다. 방청석을 얻지 못한 어느 40대 주부는 노회원님들 옆에 무심히 서 있다가 엄청난 폭행을 당했다. 한 남자가 뒤로부터 돌진하여 오른 손으로 한 주부 여성의 귀 바퀴 부분을 가격하여 귀가 찢어지고 십여만 원짜리 귀고리가 날아갔다. "이 씨발년이 뭣 땀시 여기에 왔당가, 이 씨발년 간첩 아니랑겨, 팍 조사버러야 한당게~"  

재차 때리려는 것을 어느 남성이 가로 막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112로 신고를 했다. 112가 출동하여 귀에 난 상처와 피를 사진 찍고 법원 3층으로 올라와 범인의 얼굴을 찾으니 그 범인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야수 떼처럼 노인들을 향해 삿대질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80대 노인이 차고 계시는 태극기 뱃지까지 뺏으려는 만행을 부렸다.  

"쪼사버릴 새끼들, 갈아 마셔 한당께" "오늘 아무 년이든 놈이든 한 놈이나 걸려봐라,,,작살을 내버릴 것이여" "광주에 대해 너거들이 머 안다고 개지랄들이냐, 니미씨발 좃 같이, 좃 같은 너거들이 빨갱이 새끼들 아닝가벼, 얼굴들 보니 내일 모레 곧 뒈지게 생겼꾸먼이라, 이런 늙은 새끼들이 뭣 땀시 여기에 왔땅가? 보소, 당신들 일당 얼마 받고 나왔소? 어서 말좀 해 보드라고 잉~"  

말로만 듣던 광주사람들의 야만을 체험하고부터 우리 회원님들은 전라도 사람들이라면 치를 떤다. 한마디로 이런 맹수들과 한 하늘 아래 섞여 산다는 것이 싫어 이민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법정 안에서는 변호인에게 소리 지르고 욕설을 퍼부어 재판부가 수십차례 주의를 주고 급기야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세 번씩이나 휴정하고 그 때마다 사정을 했다. 재판장은 휴정을 3번씩이나 하는 재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방청객이 잘 알아들을 수 없게 신문사항 "74번, 그게 사실인가요?" 하는 식으로 반-암호를 사용하여 방청객들이 변호인의 질문을 다 알아들을 수 없도록 했다. 1시간이면 끝날 재판이 2시간 20분 정도나 걸렸다.  

5.18 때 가두방송을 하여 '모란봉의 꽃'으로 불렸던 전옥주, 계엄군이 쏘아버리고 싶었다고 했던 전옥주(전춘심), 그녀가 방청석에서 가장 시끄럽게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다음에도 "에이 봅시다. 재판장님, 나 할 말 좀 있으니 들어 보소" 하며 재판장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질서를 유지하는 법원 직원들이 에워싸고 간신히 내보냈다.  

이런 상종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 민주화를 이룩해 냈다고 자랑하며 국민이 낸 세금을 뜯어갈 자격이 있다며 1인당 억대의 보상금을 뜯어가고, 다른 지역 국민들에 비해 취직 잘되고 학비 면제받고 대학 잘 가고 군대 안보내도 되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6.25 때 참전한 애국자들은 손가락질 받고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용사는 월 37만원으로 깍두기만 가지고 밥을 먹고 산다. 전라도 사람들에 뜯기고 사는 비전라도 국민들이 참으로 한심해 보인다. 이는 반드시 돌이켜져야 한다.  

이후 지금까지 관찰하고 문헌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광주는 야만의 도시오, 단결된 빨갱이 해방구다. 그들은 북한이 뿌려 준 유언비어만 믿고, 다른 지역을 적대시하고, 북한을 한 편으로 알고, 역대로 반골 적 기염을 토했고, 간첩이자 반역자인 김대중을 99% 신격화하는 이 나라의 이단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나가 잘 살아도, 다른 지역 사람들은 광주에 가서 '거의 절대로' 살지 못한다.  

광주지역은 물론 전라남도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DNA가 다른 이단의 민족, 북괴와 통하는 반골의 김일성 민족, 외부와 담을 쌓고 오직 북한이 뿌리는 유언비어를 경전으로 외우고 사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죽하면 6.25 때 이 나라 사람들이 전라도를 "하와이 18번지"라 증오하고 조롱했겠는가!  

오죽 내세울 것이 없으면 "김일성의 전사 김대중" "천하의 거짓말꾼 김대중, 천하의 협잡꾼 김대중", 천하의 사기꾼 김대중을 전라도 절대신으로 모시면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적대시하며 살것이며, 김일성과 김대중이 야합하여 일으킨 반역의 폭동 5.18을 지키기 위하 온갖 빨갱이들을 광주로 끌어들여 이토록 처절하게 단말마적 판소리 가락들을 뿜어대고 있는 것인가?  

나는 광주로부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부당한 폭력과 린치를 당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광주 사람들, 전라남도 사람들을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이다. 2002년 당시 광주와 전라도는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는 점령공화국이었고 인민공화국이었다. 내가 당하고 있을 때 전라남도는 "참말로 징한 잡것들"이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잡것들"이었다.  

5) 2002.8.20.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이 검은 유니폼을 입은 12명의 어깨를 서울로 데려와 경찰이 보는 앞에서 사무실(충무로), 아파트(안양), 승용차를 파괴하며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때 경찰은 구경만 했다. 대한민국 위해 공포의 공화국 광주가 있었다. 이들은 후에 형식적으로나마 사건 2002고단4830으로 재판에 회부됐다. (증3)  

아래는 2002.8.에 지만원이 지금의 가처분 사건의 신청인인인 김후식 등이 지만원에 대해 저지른 폭력행위에 대한 고소장 일부입니다(증3).  

위 피고소인들은 2002. 8. 16자 동아일보 제2면 광고 "대국민 경계령, 좌익 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첨부1)라는 광고에 불만을 품고, 사단법인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대표 김후식의 인솔하에 2002. 8. 20. 광주로부터 버스를 대절해 집단 상경하여 낮 12:00시 경, 서울 충무로5가 20-5 삼일빌딩 6층, 고소인이 운영하는 "시스템사회운동본부" 사무실에 무단 침입하여 철문 을 발로 차고, 한 동안 소리를 질러 1-7층에 입주한 모든 사무실 사람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피고소인들은 건물주의 아들 김병수(50세 정도)로 하여금 고소인의 사무실 문을 열게 한 후, "시스템사회운동본부"의 현판을 파괴하고, 전화기를 파손하였습니다. 이어 건물주의 아들 김병수를 협박하여 "시스템사회운동본부"의 사무실 사용을 불허하도록 하는 내용의 각서를 받아 갔습니다. 시스템사회운 동은 졸지에 사무실을 잃게 되었고, 지하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실시해 오던 무상 시스템 강연을 부득이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어서 동일 15:30 경, 고소인의 가족이 머무는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1586-5 한가람삼성아파트 201동 앞에 들이 닥쳐 다수의 주민들, 특히 부녀자 들과 어린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고소인의 차량 소나타-II를 발로 짓이기고, 아파트 쇠문을 발로 차서 우그러트리고, 손잡이를 발로 차서 한쪽으로 기울게 해놓은 후 잡아 빼 손잡이가 흔들거리도록 파손했고, 초인종에까지 발길질을 하여 초인종이 박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다 검은 T-셔츠를 유니폼으로 입고,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피고인을 빨갱이라 부르며 차량을 발로 차면서 무력시위를 벌여 아파트 수 많은 아파트 주민들을 전율케 했으며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고소인의 처와 두 아이들은 공포에 떨면서 현장을 벗어나 멀리 친척집으로 피난을 갔고, 피고인은 지우 3인과 함께 서울 낙원동 186번지 소재 '골든 모텔'에서 방 2개를 빌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피고인은 동월 21일 18:00경 참전전우들의 신변보호를 받으면서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귀가 했으며, 가족들 역시 같은 시각에 합류했으나, 때때로 밤 10시부터 22일 0시 30분까지 5회에 걸쳐 목소리만 확인하고 끊는 전화 때문에 극도의 공포감에 떨면서 이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익일인 8.22에는 강연 차 외출할 때 에 과거 특전사 요원들의 보호를 받아 강연장으로 호송되돼야만 하는 극도 의 위협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여 다시는 무고한 시민과 가족들에까지 가하는 테러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중벌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에 대해 광주지검은 일부 무혐의 일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가 여론이 악화되지 사건화(2002고단4830) 하여 김후식 외 1명에 대해서만 재판을 열었다. 이들이 그후 무슨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결   론  

위 진정인들이 달랑 변호사님과 함께 광주로 가거나, 변호인이 혼자 재판을 받으려고 광주법원에 간다면, 광주법원 법정 밖과 법정 내의 공간은, 위에서 묘사된 바의 험악한 광주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광주사람들에 둘러싸여 누구로부터 당한 줄도 모르고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충분히 예견되는 것임에도 이 이의신청 재판을 광주법원으로 받으러 오라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든지 아니면 이의신청을 포기하든지 양자 택일하라는 엄청난 압박이자 협박일 것입니다. 사법부에 공정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 진정사건을 무게 있게 다루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증거자료
1. 광주지방법원 제21민사부 결정문(사건번호 2015카합636)
2. 진정인 측 이의신청서(사건번호 2015카합749)
3. 5.18부상자회 회장 김후식 등이 서울과 안양에 와서 행행 폭행 및 재산파괴행위에 대한 고소장
4. 광주인들이 낸 가처분신철 표지(접수일자 2015.9.22)
5. 안양지원 판결문
6.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7. 대법원 판결문
8. 광주검찰, 법원 등으로부터 받은 폭행 일지  
9. 2013.6.10. 광주시민이 상경하여 방송국 등 파괴 공격한 사진들
10. 2010. 안양지원에서 광주사람들이 행한 폭력내용
11. 증10에 대한 서석구 변호인 소감의 글
12. 2010. 서울시민들 광주에 가서 당한 폭행 내용

2015.11.27.  

진정인 :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대표) 
            주식회사뉴스타운(대표이사)

 

대 법 원 귀 중

광주지방법원 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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