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과 김한길의 실패한 밴치마킹
박영선과 김한길의 실패한 밴치마킹
  • 석우영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09.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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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뒤만 따라가며 발복잡는 정당은 희망과 미래가 없어

▲ ⓒ뉴스타운
지금은 가물가물한 과거가 되었지만 10년 전이었던 2004년도 정치권에는 거대한 토네이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국회에서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건이 일어나 정치권은 그야말로 폭풍의 진원지에 해당되었다.

국회에서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이에 동조하는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자민련 의원들이 합세하여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시켰다. 하지만 이 탄핵안은 헌재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 결과 후폭풍은 거셌고 곧이어 있게될 17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폭풍의 한가운데서 치러지게 되었다. 총선을 앞둔 여론은 당시 한나라당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한나라당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탄핵의 후폭풍에다 대선 후에 불거진 불법 대선자금 수수사건과 겹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심지어 당을 이끌고 선거를 지휘해야할 지도부조차 구성할 처지도 되지 못했다. 소위 중진이라는 바지 입은 사나이들은 하나 같이 손사래를 치며 장막 뒤에 숨기에 바빴고, 스스로 대표를 맡아 나서겠다면서 용기를 보여주는 남성들도 없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궁여지책 끝에 박근혜 의원으로 하여금 반강제적으로 당 대표로 추대하여 17대 총선에 나서기로 결정한다.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더 없는 좋은 소재였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당시 한라나당에서 바지 입은 사나이들이 노린 것은 박근혜 라는 여성을 17대 총선 때만 이용하고 그 다음엔 버리는 패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이 사실이었다면 그들은 박근혜의 잠재적인 파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까막눈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의 선거 전략은 단순했다. 슬로건은 단 하나였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미워도 개헌저지선 만큼만 밀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동선의 영역을 최대한 넓혔다. 가급적이면 많은 지역을 찾아가서 가장 많은 유권자들과 접촉하며 진정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물론 그 이전에 여의도 당사와 천안 연수원을 매각하여 불법대선 채무를 정리하고 천막당사를 차린 후였으니 유권자들은 박근혜 당시 대표의 진정성을 서서히 인정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결과는 모든 전문가들이 30여석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121석이라는 괄목한 성과를 이루게 되어 박근혜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이어진 각종 선거 때마다 박근혜가 나섰다하면 연전연승하여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도 획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위기에 몰린 정당이 벤치마킹을 하는 것이 바로 천막당사다. 천막당사도 칠만한 사람이 쳐야 효과가 있는 법이지 아무나 친다고 해서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한길 전 대표가 작년에 시청 앞에서 친 천막이었다. 김한길이 친 천막은 장소도 적합하지 않았지만 삼복더위가 한창일 때라 시기도 적절하지 못했다.

시청 앞으로 지나가는 시민들로부터 조롱만 받았던 천막이었으니 그 천막은 캠핑장에 나섰던 텐트보다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실패한 경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한길과 안철수는 지난 7.30재보선에서 또 수원에서 천막을 쳤지만 역시 실패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실패한 이 천막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김한길과 안철수의 공동몰락을 예고하는 천막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천막의 붕괴는 박영선을 당의 전면에 내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7.30재,보선에서 완패한 새정치연합은 김한길과 안철수 두 사람의 얼굴로 당의 간판을 내세우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인물을 모색했다. 이번에도 역시 바지 입은 기라성 같은 남성 사나이들은 뒷전으로 빠졌고 전면에 여성인 박영선을 내세워 과거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 박근혜를 내세워 효과를 받던 것과 같은 방법을 선택했다. 이것도 역시 밴치마킹이었다.

그러나 박영선은 결코 박근혜와 같은 동질의 인물이 아니었다. 박영선의 이미지는 강골 여성 정치인으로 이미 각인이 되어 있었던 관계로 인하여 그가 아무리 여성대표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강경한 이미지가 아주 부드럽고 합리적인 여성으로 변모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영선은 비대위장이 되자 처음에는 과거의 정치형태와 결별하고 정치의 본질인 타협과 협상 그리고 민생을 챙기려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는 쇼도 연출했다.

그러나 이런 스탠스의 변화는 일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위장행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간파하는데 20여일이면 충분했다. 박영선은 세월호 특별법만이 민생의 모든 것이라는 스스로의 카테고리 속에 들어가 자신의 아집에 함몰되어 있었고, 여타의 다른 민생보다도 세월호 특별법에만 집착하는 편집증만을 보여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두 번이나 새누리당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이 무산되자 박영선은 결국 자신의 본래 성향인 강경본색을 드러내고 길거리로 나섰다. 이렇게 돌변한 박영선의 정치 행보를 지켜본 여론은 급속하게 식어 버렸고, 그 결과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벤치마킹을 하는 것을 두고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벤치마킹을 한다고 해도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과 자질, 그리고 적합한 타이밍과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만이 사용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박영선과 김한길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제 서울 도심의 역세권 곳곳에는 민주당의 홍보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적혀있는 내용도 한심했다.

능력도 자격도 없이 허구한 날 정쟁만 일삼는 새정치연합 자신들이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책홍보 현수막도 새누리당에서 홍보본부장으로 영입했던 조동원 본부장이 가장 먼저 창안한 카피라이트였지만 지금은 다른 정당들도 밴치마킹을 하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 새로운 방안을 창안해 내지 못하고 남의 뒤만 따라가며 건건이 발목을 잡는 정당에게 무슨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겠는가. 여론의 흐름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추락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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