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진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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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진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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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은 바뀌지 않는다

 
   
  ▲ 제주항 모습. 점선 안은 미군 LST(1948. 5)  
 

한라산 기슭의 유혈극

해방전 인구 15만명이 고작이던 제주도는 8.15와 더불어 인구 가 30만으로 불었다. 일본 대판과 구주 등지에서 종전과 함께 주민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 가운데는 일본군에서 복무하던자, 중국 팔로군에 있던자, 그리고 오랫동안 섬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던 끝에 과격한 사상에 빠진 자 등 그 구성 성격이 다양했다.

이조 400년 동안에도 본토와 거의 두절 상태에 빠졌던 제주 도민은 고(高) 부(夫) 양(梁) 3성의 원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대게가 고려 말엽부터 이조 초 중기에 이르기까지 간신배들에게 몰려 유형을 당한 자손들로 거의 모두가 선한 핏줄을 이어 받은 사람들이다.

해방이후 갑자기 공산주의를 열열히 지지하고 나올 까닭도 없었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본토 원주민과 고려, 이조 때 조정에서 버림응 받은 사람들을 조상으로 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중앙 문화와의 교류가 단절되었기에 어부, 농부 또는 초부로서 그날 그날 생계를 유지하는 순박한 섬주민들이 해방과 더불어 이 땅을 휩쓴 공산주의라는 것을 신봉 할 까닭도 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의 대사건은 발생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조용했던 한라산 기슭에서 울린 요란한 총성은 이 전설어린 섬나라를 유혈극으로 만들었다.

그 날 새벽을 기해 일제히 일어난 폭동은 경찰 무기 탄약고를 습격하여 제주시 경찰서를 습격 방화하는 등, 비극은 순식간에 도처에서 발생했다.

4월 3일 아침부터 시작된 유혈극으로 5.10선거가 치러지기까지 경찰관 12명과 그 가족 6명이 참살 당하고 중상자가 경관 21명, 가족 3명, 민간인 사망 37명, 중경상자 58명, 관공리 사망 5명, 부상자 9명, 방화 45건, 납치 경찰관 2명, 양민 19명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 발단 이래 도내 400개 부락 가운데 295부락이 전소되고 12250호가 불에 타고 면 사무소 12개중 소실 5개소 경찰서 소실 12개소, 학교 소실 34개소, 우체국 소실 1개소, 기타 통신기관을 비롯한 각 관공서의 파괴 등 사상자와 이재민 10만명 이라는 놀라운 희생과 국가의 재산이 재가 되었다.

매국 공산 도배의 잔학한 만행에 국민의 의분이 한층 뒤끓어 마침내 매국 도배들을 소탕 하려는 국군과 경찰의 총성은 끓이지 않았다.<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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