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 이항복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백사 이항복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 김경학 기자
  • 승인 2013.11.06 2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곳이 조선 숙종 46년인 1720년에 "화산(花山)"으로 사액(賜額)되고 선현에 대한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화산서원인데 고종 5년인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던 것을 1971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러하니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포천향교와 비슷한 형태의 고즈넉한 풍경만이 남았다.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위치한 이항복 선생의 화산서원과 가산며면 금현리에 자리한 묘소를 찾았다.

▲ 조선 중기의 명신이었던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인조 13년인 1635년에 창건된 화산서원을 찾아간다. 포천시청 방향의 43번 국도에서 송우리를 지날 즈음 만나는 하송우 4거리에서 가산방향으로 우회전한다. 2km를 직진하니 화산서원 입구를 알리는 방축1리 두껍바위 이정표가 서 있다. 입구의 공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150m를 걸어서 들어가니 홍살문이 나오고 나지막한 언덕에 화산서원이 보인다.
▲ 명칭 : 화산서원(花山書院),  건립시기 : 조선 인조 13년 1635년,  종목 : 경기도 기념물 제46호,  지정일 : 1975년 9월 5일

▲ 이항복 선생 신도비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앞이나 근처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이르던 말.

▲ 영당영정을 모신사당
▲ 左) 이항복 선생의 묘 右) 정경부인 권씨의 묘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1566~1618)의 묘이다. 이항복의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 또는 백사(白沙) 본관은 경주이다.
▲ 右) 이항복 선생의 묘 左)정경부인 권씨의묘
선조 13년인 158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임금의 비서인 도승지가 되어 임금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전란 중 병조판서가 되어 전쟁을 지휘하며 국난극복에 힘썼으며 전란이 끝난 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오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항복은 광해군 때 영창대군을 구하려 끝까지 노력하였으며 인목대비 폐비사건에 반대하다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