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해, 기쁨의 샘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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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해, 기쁨의 샘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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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아시아 너머 세계시민으로 나가자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언제 흥얼거려도 상쾌한 동요다. 물맛은 깨끗하고 차다. 숲의 수목을 뚫고 비치는 파란 하늘처럼 이때 우리 마음은 시원하게 씻긴다. 기쁨의 샘이다. 그리고 누가 와서 먹어도 공짜다. 토끼가 왔다가 세수마저 잊는다. 

새해 오천만 한국시민들 모두 옹달샘이길 기원한다. 북한까지 합쳐 칠천만 모두가 하나가 됐으면 더욱 좋겠다. 새 정부 지도자는 용천수의 뿌리가 되길 기원한다. 그녀가 기쁨 자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의 근원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장 2절) 

쓴물을 내는 샘도 있다. 부패했거나 독소를 머금은 물이 솟아나는 마음이다. 물리적으로 여과하거나 화학 약품을 투입해야 단물로 쓸 수 있는 폐허된 샘 같은 군중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들을 세 족속으로 나누어보겠다.

1. 꼴족 -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 꼴뚜기 같은 부족

2. 빨족 - 맨얼굴이 빨간 원숭이처럼 뻔뻔스런 부족

3. 짝족 - 짝퉁인데 명품인양 폼 잡는 양심불량 부족

꼴족의 으뜸은 수구꼴통을 입에 달고 있는 “꼴통씨족”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바로 그자들이 꼴통의 견본이다. 꼴족의 다음은 꼰대비하 발언으로 세대 간 노소장벽을 쳤던 씨족이다. 회갑 지난 “꼰대씨족”은 자가당착의 표본이다. 꼴족의 마지막은 “나 꼼수” 억지방송이다. 스스로 꼼수로 자처했으니 그나마 착한(?) “꼼수씨족”이라 하겠다.

빨족의 으뜸은 내놓고 품세 잡는 “종북씨족”이다. 대놓고 “김개”라고 욕하지 못한다면 그는 종북 좌파에 속한다. 빨족의 다음은 의사당에서 흉기나 해머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국회의원이다. 영웅 칭호에 목마른 듯한 이들은 “혁명씨족”이다. 빨족의 마지막은 인터넷에 무차별 댓글을 다는 익명의 몰염치들이다. “악플씨족”들은 특히 욕쟁이들이다. 

짝족의 으뜸은 교설을 둘러대는 정치교수 중에 볼 수 있다. 이들은 국가에 헌신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한 자리 움켜쥐려는 모습이 역력한 “짝퉁씨족”이다. 짝족의 다음은 권력 주변에 포진한 실세에 섞여 있는 “벌레씨족”이다. 율곡사업과 같은 거대규모 국책과제에 좀벌레처럼 숨어서 예산을 갉아먹는다. 짝족의 마지막은 애국을 가장하는 협객들의 “한건”에서 찾을 수 있다. “위장씨족”은 대선 때면 어김없이 숨은 연출자에 의하여 마타도어로서 등장한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성어는 노력 없이 요행만 바라는 사람을 비웃는 말이다. 하루는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는데, 운 좋게 토끼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었다. 이날 이후, 농부는 쟁기를 풀어놓고 다시 토끼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한비(韓非 BC 280?-232)의 오두(五蠹)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두는 다섯 가지 좀벌레로 나라를 말아먹는 부류들을 가리킨다. 

공자(BC 551-479)는 “나-집-나라-세계”에 상관없이 군자(君子)에게 일관된 길, 유도(儒道)가 있다고 믿었다. 즉 안으로 인(仁)이요, 밖으로 예(禮)이다. 옛날의 요순과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그러나 말년 즈음 14년 동안 주유천하까지 했건만 그의 뜻이 구체적으로 제후들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장자(莊子 BC 369?-286)는 “단물은 먼저 마른다(甘井先竭)”고 비평했고, 한비는 수주대토라고 비판했다.

법가(法家)의 대표였던 한비는 특히 “집-나라” 사이에 온도차가 큰 1차원 단층이 있다고 보았다. 국가의 경영에는 법(法)의 평등과 술(術)의 통치와 세(勢)의 권력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그는 신상필벌이라 불렀다. 그러나 “왕도는 패도이다(君君)”는 공자의 진의가 한비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이해였다. 논어의 첫마디 “배우고 익히는(學習)” 것 역시 수동과 능동의 쌍대로 2차원 화합을 그려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겉보기에 유교의 교조적 전통이 말랐지만 그루터기 모양으로 밑둥과 뿌리는 아직 남아있다. 이것이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서 커다란 차이이다. 정치판에서 중국과 일본에 비교하여 우리가 훨씬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고 말을 바꾸겠다. 상벌 보다 심정이 앞서고, 판단하나 낙관이 뒤따른다. 한류는 중일의 그것에 비하여 더욱 시원하고 화끈하다. 공맹이 살아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문화적으로 동아시아권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국인은 통시적으로 세계시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원래 “나”를 “우리”라고 불렀다. 심정이 공시적으로 열려있었다. 박근해 당선인은 임기 동안 따뜻한 정치를 구현하면 그것만으로 역사는 위대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세대간, 지역간, 이념간, 빈부간 격차를 좁히고 대통합을 구축했으면 싶다. 나아가 남북통일의 발판을 다지고, 세계로 뻗어가자. 밝은 해를 우리 모두 기쁨으로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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