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 | ||
‘국민의 정부’ 대북 불법 송금과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협의로 구속기소되었던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검찰의 징년 20년이 구형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은 1심 마지막 재판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편지지 8장의 최후 진술서를 읽으면서 그의 심정을 피력했는 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과 성공을 위해 12~13년동안 일요일도 없이 단 하루 휴가도 가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한다.
‘막상 감옥에 와서 보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휴가 한번 가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 속죄하는 마음에 매일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DJ정부의 청와대 대변인, 문화관광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부통령, 소통령, 대(代)통령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정권의 2인자로서 권세를 누렸음에도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법정에 서고 말았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는 담담하고 꼿꼿한 모습이 ‘슬픔에 울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저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또 할 일이 남았습니다’라는 회한(悔恨)에 찬 최후진술과 흘린 눈물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애증(愛憎)과 세상에의 미련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는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박 전 장관의 ‘눈물’을 보면서 역대 정권에서 5공화국의 장세동씨, 6공화국의 박철언씨, 문민정부 김현철씨 등이 2인자의 실세로 권력의 핵심 노릇을 하더니 모두 다 영어의 신세를 면치 못했고, 벌써 참여정부에서는 강금원씨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권력을 잘 쓰면 추앙(推仰)을 받고 잘못쓰면 패가망신한다는 평범한 진리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옛말을 소홀히하여 정권이 바뀔때 마다 되풀이 되는지 그들의 자질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권력의 무상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감옥에 가서야 늦게 깨닿기 전에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낱말 뜻이라도 평소에 새겼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지도자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의 투철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는 일이 계속되는 지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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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시저,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 영웅호걸들이 모두 눈물을 비쳤다. 히틀러는 견딜 만큼 견디다가 마치 발작하듯이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쁘거나 슬플 때, 또는 억누를 수 없도록 감동을 느낄 때 저절로 눈물샘이 자극받아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눈물이다. 그처럼 빨리 마르는 것도 없다지만 적어도 눈물을 흘릴 때만큼은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 문화관광부장관,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막후 실력자로 꼽히던 박지원(朴智元)씨의 법정 눈물이 새삼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시종 꼿꼿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마침내 최후진술을 하며 어깨를 들썩였다는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이래 10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식구들과 휴가를 즐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내에게 매일 속죄의 편지를 쓰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진한 연민까지 느껴진다.
한때는 ‘부통령’ ‘소통령’ ‘대(代)통령’이란 얘기를 들을 만큼 권력의 핵심부를 누볐다는 점에서 그가 법정에 섰다는 자체가 권력의 무상함을 전한다. 자신이 이렇게 구차스러운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리라 생각인들 했을까. 오죽하면 구치소 텔레비전으로 평양 노래자랑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놓았을까 싶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표현을 통해 오히려 “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10년은 간다”며 나름대로 의욕을 과시했던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법정에서 오가는 혐의 내용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법원이 판단할 몫이다. 그렇지만 회한에 젖은 그의 눈물을 보며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며 애써 담담해하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떨어지는 꽃잎을 찻잔에 띄워 훌훌 마시겠다는 꾸민듯한 여유보다는 차라리 한줄기 눈물이 더 진솔해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바깥 활동에 쫓겨 까맣게 잊고 지내던 가족과 다른 일상의 소중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허영섭 논설위원 gracias@kyunghyang.com〉
ⓒ[경향신문 12/02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