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에서 만난 소설가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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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에서 만난 소설가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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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독서이야기] 딸기밭

^^^▲ <딸기밭>의 표지
ⓒ 문학과지성사^^^
가을이라는 계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는 역시 '신경숙'이 아닐까. 베스트 작가인 그녀의 많은 작품을 나 또한 적지 않게 읽었다. 후기(後記)에서 15년이 넘게 글을 썼다는 말에 놀랍기도 했다.

언제나 긴 생머리의 젊은 작가로 여겨지던 그녀가 어느새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다니. 그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의 문체가 생각난다. 그녀의 글을 다른 말로 번역하게 된다면 정말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문체의 분위기를 살려내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녀의 많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늘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번에 손에 든 <딸기밭>도 '가을'을 물씬 풍겨낸다. 조금 다른 변화라면 여름의 열정이 뒤섞여 있다는 것. 아무튼 가을이 무르익기 전에 그녀의 글을 만나고 싶어 '딸기밭'을 선택했다.

'딸기밭'이 야하다고?

동화 같은 제목이라고 상상했는데 동생의 '야하다'는 말에 깔깔대며 첫 장을 넘긴다. 딸기밭은 어떤 내용일까? 6편의 이야기 중 가장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은 역시 '딸기밭'. 동생의 인상대로 딸기의 야한 이미지를 그녀도 먼저 떠올렸을까?

이 작품은 이십대 초반의 여성(언제나 신경숙의 소설 주인공이 그렇듯 화자는 어둡고 외롭다)은 외모에 '접근 금지의 팻말을 붙이고 다니는' 엽기적으로 못 생긴 한 남자와 완전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신의 동성친구 유, 둘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미묘한 심리를 얼키설키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열등감을 남자에게 성적인 욕망으로 해소시켜버리며 동시에 딸기밭에서 눈이 부시게 환한 완벽한 밝음의 유와 동성애의 욕망도 탐닉한다. 서로 대립된 두 사람 사이에서 화자인 '처녀'는 무엇을 얻기 위함일까?

내 식대로 해석해본다면 아마도 이중적인(자신보다 못나고, 잘나고) 욕망의 해소를 23살의 처녀는 번갈아(남자와 유를 통해) 간절히 원했다. 금지의 영역(남자와 유)이었던 것을 얻어내는 욕망의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럼으로써 벗어나고 완결됐다는 카타르시스, 그런 해방감을 미묘하게 그린 것이 아닐까? 욕망의 배설, 그리고 그 끝에 오는 뒤돌아보지 않는 후련함, 좀 모호한 소설이었다. 전혀 '신경숙' 답지 않은 소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성적인 엽기 행각이 일본 소설을 보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지칠 줄 모르는 외로움의 깊이

딸기밭을 제외한 각기 다른 6편의 중·단편은 전체적으로 공통의 흐름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여자'를 제외하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침잠하는 분위기.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그녀는 언제나 이런 외로움의 정서를 담은 글을 쓸 것이다. 외로움이 바닥이 보일 만큼 끝까지 다다랐는데도 지칠 줄 모르는 외로움의 깊이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재미있게도 몇 편의 작품들은 실제 인물들을 재현했다. '어떤 여자'는 소설가 '공선옥'을 모델로 씌어진 것 같고 그 속에 '임순례' 감독도 등장한다. '어떤 여자'는 '신경숙표'가 아닌 예외적으로 밝은 이야기로 순박한 시골 생활을 하며 소설을 쓰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여성의 생활 이야기이다. 임순례 감독이 등장하는 강아지와의 일화는 웃음 짓기에 충분했다.

또 '작별인사'에서는 지리산에서 실족한 '오정희' 시인이 M으로 살아나며 '초록빛 모자'라는 드라마는 실제 '베스트 극장'에서 방영되었던 것으로, 내 기억이 맞다면 남장 여자의 주인공은 탤런트 '서갑숙'이다. 이러한 실재인물의 재구성은 소설을 읽는데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데 한몫을 한다.

예전과 이번 소설집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내 나름대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끝 부분의 결말이다. 잔잔하게 고조되는 전개 방식에 눈을 돌리다가 결국 서로의 육체를 쓰다듬음으로 마무리되는 것.

여기서 육체의 접촉이란 이성과의 에로스적인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과의 접촉이다. 딸기밭에서의 여자 친구 유와의 동성애의 경우가 그렇고 '그는 언제 오는가'에서 제부와 처형의 어루만짐이 그렇다. 또 '그가 모르는 장소'에서 어머니를 업은 아들의 접촉 또한 다르지 않다.

아무튼 신경숙은 희망이다

희망을 말하고자 함을 직접적인 육체와의 소통으로 이끌어낸 것이 예전과는 좀 다른 기법인 듯싶다.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픈 어설프기 짝이 없는,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을 다 알면서도,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실제와는 전혀 다른 귀여운 동물을 가슴에 품는 일과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쓴다. 살아 있음으로 단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그 처연한 실존의 자리에서 순간 순간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둘째, 애달프게 살아 있는 인간인 우리들, 그녀는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이란 미약한 존재의 허망함을 인식하고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느닷없음에 대한 망연자실, 그리고 추스림은 도리질보다는 수긍하는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매듭을 푼다.

'그는 언제 오는가'의 끝 부분은 그런 대표적 예로 보여진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새들은 날개가 처음 돋았던 시절을 기억했을까? 처음비상을 할 때, 하늘을 우러르는 빛으로 솟아오르던 그 푸른 눈동자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날개가 꺾여 파르르 떨리던 그 순간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있는 한 죽음 역시 삶의 과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에서는 상처 난 두 사람의 사랑 행위로, '그는 언제 오는가'에서는 어둠 속에서 캄캄한 마음이지만 "…우린 살아갈 거예요. 그게 우리의 본능일 테니"로 차가운 진실이지만 서로의 따뜻한 위무로 견뎌냄으로.

'딸기밭의 신경숙'은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촛불을 또 한 번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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