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연초마다 지방의회는 “소통”을 말한다. 문제는 그 말이 얼마나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뀌느냐다. 슬로건은 늘 그럴듯하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대개 ‘어디를 고쳤는지’,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무엇을 기록으로 남기는지’에서 갈린다.
안산시의회가 최근 공개한 ‘2026년 업무보고’ 자료는 그런 의미에서, 익숙한 수사 대신 비교적 또렷한 실행 목록을 앞세웠다. 올해 의회가 쓰겠다는 ‘소통 서사’는 말보다 디테일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눈에 띄는 건 무대부터 손보겠다는 접근이다. 의회는 청사 옥상 정원 시설을 철거하고 옥상 바닥·벽면에 복합 방수 공사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일정도 회기를 피해 3~4월로 못 박았다. 지난해 1층 로비를 홍보관으로 바꾸며 자동문·안내 키오스크·영상 전광판 등을 갖춘 데 이어, 올해는 공간의 기능성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의회가 “문턱을 낮추겠다”고 말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실제로 시민이 오갈 ‘물리적 문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인데, 이번 계획은 그 질문에 최소한의 답을 내놓는다.
조직도 손본다. 의회는 올해 1월 1일 자로 비서팀을 신설해 의회사무국을 1국 6팀 체제로 확대했다. 팀장 1명과 팀원 3명, 총 4명 규모다. 열린의장실 운영, 의전 수행, 일정 관리 등 의장단 지원을 전담한다. 자치분권 시대에 의회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수없이 반복돼 왔지만, 실제로는 ‘지원체계의 독립’ 같은 행정적 조치가 동반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다만 여기서도 시민의 질문은 남는다. 지원의 강화가 곧바로 견제와 감시의 강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의전과 일정 관리의 고도화로만 끝나는가. 조직 개편의 성패는 결국 의정 성과의 질로 판가름 난다.
의회가 올해 ‘기록’을 전면에 내건 것도 의미심장하다. 9대 의회 의정백서 제작을 추진하면서 일정까지 구체화했다. 6월 1일까지 발간 계획 수립, 6월 말까지 자료 수집, 7월 20일까지 초안 작성, 8월 10일께 최종안 확정. 백서 분량은 900면 내외, 제작 부수는 200부로 제시됐다. 기본현황, 주요 의정 일지, 회의 운영 결과, 의원연구단체 운영 내역, 활동사진 등을 담겠다고 했다. ‘기록’은 홍보를 넘어 책임의 장치가 될 수 있다. 무엇을 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못 했는지까지 남길 때, 백서는 다음 의회의 기준선이 된다. 그 점에서 백서가 단순 성과집으로 귀결될지, 점검 가능한 의정 이정표로 남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9대 의회 마무리와 10대 의회 개원 준비도 올해 의회의 핵심 일정표로 제시됐다.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까지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의원 등록과 상견례를 진행한 뒤 7월 1~3일 첫 회기에서 의원 선서와 의장단 선거를 치른다. 이후 8월부터 연말까지 임시회 1회, 정례회 2회 운영을 지원하고 역량 강화 교육·워크숍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선거가 끝나면 의회는 늘 ‘인수인계 없는 인수인계’를 겪는다. 그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 자체는 정답에 가깝다. 다만 준비가 ‘행사 운영’에만 집중되면, 시민이 원하는 의회의 변화는 시작부터 빗나간다. 새 의회가 무엇을 가장 먼저 점검할지, 어떤 사안을 우선순위에 둘지까지 이어질 때 개원 준비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기존 사업의 내실화 항목도 빠지지 않았다. 안산청소년의회는 올해도 3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되며, 활동 내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식의 참여 유인을 유지한다. 홍보는 매체 성격에 맞는 콘텐츠 제작·배포로 수용도를 높이겠다고 했고, ‘정책 동향지’는 연 4회 발간해 의원들의 정책 발굴과 입법 활동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바뀌었는가’다. 청소년의회가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실제 의정 의제와 연결되는지, 정책 동향지가 단순 요약지를 넘어 입법으로 이어지는지, 홍보가 숫자 경쟁이 아니라 참여 확대로 귀결되는지. 내실화는 지표를 붙일 때 검증된다.
박태순 의장은 “2026년이 유종의 미와 새로운 출발의 기점이 될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의회의 소통 서사는 ‘말 잘하는 의회’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의회’가 될 때 완성된다. 올해 안산시의회가 제시한 계획은 적어도 “무엇을 하겠다”는 문장을 구체적인 일정과 사업으로 내려앉혔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서사의 주인공이 정말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의회는 계획을 결과로 바꾸는 과정까지 기록하고 공개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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