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성 7차 발굴조사 결과보고회 겸 학술자문회의 열려
스크롤 이동 상태바
화성 당성 7차 발굴조사 결과보고회 겸 학술자문회의 열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성 당성,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확장 거듭하며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당성 및 조사지 전경 /화성시

화성 당성이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량으로 추가 발견됐다.

지난 7일 화성 당성 7차 정밀발굴조사 현장에서 열린 결과보고회 겸 학술자문회의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이 공개되며 당성의 역할과 위상이 재조명됐다.

문화재청의 허가와 화성시의 의뢰로 발굴조사를 맡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이번 발굴에서 여러 차례 증개축된 대형 건물지에서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을 발굴했다.

안신원 한양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며, “당성은 행정적, 군사적 거점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요기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당성 초축과 관련된 1차성 내의 대형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졌다. 해당 건물지는 적심이 축조된 층위와 축조 방식, 형태 등을 보아 6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이르기까지 3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개보축 및 확장됐으며, 기존의 적심과 초석이 재활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부터 고려시대 초중반까지의 것들로 행정기관에서 사찰로 변모하는 특성을 보이며, 2차 축성의 이유를 파악하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명문와이다. 신라의 핵심세력인 6부 중 하나로 ‘본피모(本彼謀)’와 ‘양모(梁謀)’명 기와가 출토돼 신라 중앙정부로부터의 관리를 받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관청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관(舘)’, ‘관택(舘宅)’, ‘관(官)’명 기와, 건물의 기능 변화와 관련된 ‘신동(新棟)’, ‘백사(白寺)’등이 새겨진 기와가 함께 발굴됐다.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와로 ‘임신((壬申)”, “무인(戊寅)”, “병오(丙午)”명 기와와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의 하나로 686년 설치돼 757년 웅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된 ‘웅천주(熊川州)’명 기와도 출토됐다.

또 중국의 형요(邢窯) 및 정요(定窯) 백자편과 월주요(越州窯) 청자편이 출토돼 국제교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밖에 청동 초두(鐎斗)가 출토됐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당성의 초축시기와 삼국시대 이후 당성의 기능을 확인하는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당성의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