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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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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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머리는 하루만 감지 않아도 짚북데기가 따로 없다. 외출을 하지 않는 이상 머리에 손댈 일이 없다 보니 몇 달 동안 미용실과 담을 쌓고 지냈다. 세수를 하고 화장으로 한꺼풀 가려 보아도 희끗희끗해진 머리밑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한번 염색하고 파마 하는데 5,6만원은 기본이라 이참에 염색약을 사다가 집에서 한 번 해볼까도 생각했다. 옛날 친정엄마는 곧잘 아버지의 머리를 염색하곤 했다. 이마 주위에 콜드 크림을 바르고는 칫솔로 골고루 염색약을 묻혀서 머리밑에 펴 바른 다음 빗으로 빗겨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몇 번이나 주저 하다가 결국은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나서고 말았다. 언제나 아침 등교길은 위험천만이었다. 주차장이 따로 없는 이 동네엔 길가가 온통 주차장이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나가면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싣기 위해 트럭과 트럭이 마주 보고 서 있는가 하면, 자가용까지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길인지 주차장인지 분간이 안간다. 거기다 겨우내 땅속을 파헤치더니 또 파헤치고 있다.

이번엔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터널처럼 생긴 회색빛 관을 올리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머리위로 조각난 파편들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어 숨을 멈추고 바라 보았다. 무사한 것을 보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늘 가던 미용실 문을 빼곡히 밀었다. 엎어질듯 반색을 한다.
"겨울에 염색하러 온다더니 다른데서 했구나."
하며 녹차를 내민다. 미용실 안은 시끌벅적 수다가 한창이다.
"어젯밤 그집 아저씨 새벽에 들어 왔지."
"으-잉, 그때까지 잠 안자고 살쾡이 마냥 염탐이나 하고 있었어."

거울에 비친 옆 손님이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 같아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에 촉각이 예민해진다. 컷트에 염색과 파마까지 하면 족히 반나절이 걸리지만 아줌마들의 야한 얘기까지 듣다 보면 지루하지가 않다. 깔깔대며 눈가에 주름을 세우고 있으려니, 책가방을 멘 아이를 앞세우고 한 아줌마가 들어 선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끄럽기 그지 없다. 동네 아줌마는 다 알고 지내는듯 하다.

가위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오랜만에 오셨네요"
라며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것이 남다르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 듬으며 "오늘 정기 검진 받는 날인가 보죠" 한다. 가방을 내려 놓은 아이는 만화책을 펴들고 구석 자리로 옮겨 앉더니 웅얼웅얼 읽기 시작한다. 발음이 시원치 않아 뭔 소린지 통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엄마는 아이 때문에 파마까진 무리라며 컷트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거랑 눈의 촛점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시선이 자꾸만 그리로 향하니 찡긋 눈인사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살짝 미소를 보냈더니 옆에 앉은 아줌마가,

"참이쁘지요" 한다.
"네~
"지 형이랑 누나는 박사까지 마치고 의사와 교수가 되었는데 저 아이만 다운증후군이라 내가 등하교를 같이 하고 있어요."
"늦게 본 자식이라 무척 사랑스럽고 이뻐요."

남이 뭐라 하든 저 아인 착하고 예의 바른 아이라고 하며 학과공부는 따라가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영어는 너무 잘한다고 자랑을 했다.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공부와 인성교육까지 빈틈없이 성심을 기울인듯 했다. 점점 홀로서기도 할수 있도록 키울 것이라며 아직은 길을 잃을까 봐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겹다고 엄마를 보채지도 않고 오히려 손님들에게 사탕도 나눠주고 사과랑 귤을 요지에 하나하나 꽂아서 불안한 발음이나마 '드세요'하면서 손님들에게 돌릴 줄도 안다.

'엄마의 열정이 저만하니 아이가 바르게 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난 우리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비칠런지 갑자기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무늬만 요란한 줄 알았는데 마음 속 무늬가 더 예쁜 아줌마와 아들이었다.

언젠가 공원에서 다리에 보조기구를 끼고 항상 그 시간에 나와 자전거를 타는 모녀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아들아이와 비슷한 또래라 관심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타는 아이도 아이지만 뒤에서 잡고 있는 엄마가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시아주버님 역시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아버님 역시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평생을 지탱하고 계시며, 친정 아버님 역시 한쪽 다리를 절고 계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많은 절망과 비웃음으로 점철된 생을 살았다.그래서 주위에 그런 분만 보면 마음이 쓰리다. 처음엔 뭐 이런 인연이 다 있나 싶어 지금의 남편과 결혼 하는데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살아보니 불구는 정작 나였고 삐딱한 시선을 가진것도 주위 사람이었다는 걸 시아버님이 증명해 주셨다.

여름이면 의족에 쓸려 피부가 벗겨져 쓰라리고 해도 지금껏 지팡이 하나로 버티고 계신다. 평생을 한쪽 다리만 쓰시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와서 요즈음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가 불편하다고 하시지만, 지금까지도 당신처럼 어려운 분들을 도와 가며 사시느라 한시도 일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진정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주거 지역이기 보다는 공장이 더 많은 동네라 다소 거친 점이 있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만나 보면 정 많고 따스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꽃나무 하나 보이지 않지만 때론 꽃밭보다 더 만발한 꽃이 피고 있음을 본다.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자전거 뒷칸에 짐을 가득 싣고 가시는 문방구 할머니를 볼 때도, 옆에 앉아 있는 꼬마 아이도 그렇고 자꾸만 내 눈에 뜨거운 물기를 고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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