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딸아이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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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딸아이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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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번째 맞이하는 생일, 딸아이의 마음의 선물

생일 하면 쉽게 떠올리는 것은 미역국, 혹은 생일 케이크 정도이리라. 결혼하고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39살에 낳은 딸아이가 벌써 자라 올해 9살이 되었으니 나는 그만큼 쌓여가는 세월과 함께 늙었다고나 해야할까.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 뭐 그리 대수이랴. 누구 말마따나 생일이 어찌 본인이 받아야 할 날이냐고, 부모님이 엄마가 낳아주지 않았다면 생일이란 것이 어떻게 있겠느냐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해마다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생일은 한 해가 가면 어김 없이 찾아오고 그래도 다른 날과는 달리 잠시 내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또한 생일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의 생일은 부모님의 생일선물이 기다려지고, 성장하면서의 생일은 친구 또는 가까운 지인들과의 마음을 나누는 모처럼의 시간이었고, 결혼하여서의 생일은 여자에게 있어 정말 존재의식보다는 그저 한 가정의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가는 한 날에 지나지 않게 되는 일이 허다한 것 같다.

결혼 초기엔 남편의 관심과 생일선물이 한몫을 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그저 한끼 식사 정도, 밖에서 가족이 함께 하고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 아닐까 하는데 아이가 자라더니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 생일에는 왜 그리 아팠는지 며칠을 꼼작하지 못할 정도로 앓아누눠 있는데 딸아이가 저금한 돈을 세어보더니 평소 시켜먹던 중국집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제딴에는 특별한 날이라고 탕수육에 짜장면에 만두까지... 그렇게 잔뜩 차려놓고 나더러 먹으라는 것이다. 입맛이 없어 겨우 넘기면서도 감상이 참 묘했다. 남편이라면 그저 아파 누워 있는데 못 나가면 그만이지 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올해는 여러가지 집안의 복잡한 일로 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을 때 또 생일이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딸아이는 열심히 용돈을 모아두는 눈치였다. 간간히 나에게 무엇을 선물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생일날에는 엄마에게 제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고도 하였다.

어제 저녁 그래도 미역국은 끓여야 하겠다고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데 요즈음 남편의 사업일로 행여 복잡하고 힘든 사정을 아실까 차라리 연락을 안하고 있는 친정에 아니나 다를까 엄마께선 막내딸 생일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제 팔순이 훨씬 넘어 당신이 직접 나서시지는 못하고 애꿎은 큰딸에게 막내 생일을 은근히 강조하시며 우울해하셨나보다.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전화도 없이 큰 언니가 불쑥 들어섰다. 손에 든 보따리 보따리 이것 저것 음식을 해가지고 말이다. 보나마나 엄마께서 막내딸 좋아하는 찰밥에 전, 김치 등 반찬 몇 가지를 싸서 보내신게다.

어찌 되었든 나이가 먹어 50이 다 되어가도 엄마에겐 늘 걱정만 끼쳐드리는 철없는 막내딸이 되어버린 나는 엄마가 해 보내신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엄마, 이따가 집에 있을 거지?"하는 거였다. "그래 엄마 집에 있을테니 어서 다녀와"하니 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 볼에 뽀뽀는 하고는 웃으며 집을 나선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오더니 나더러 "엄마, 지금부터 꼼짝하지 말고 엄마는 쉬세요. 내가 다 할테니까"하더니 점심을 차렸다. 그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여느 때와 달리 고기도 '엄마, 더 먹으라는둥, 엄마, 이것도 먹어봐요'하면서 연신 신경을 쓰는 눈치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딸아이가 하는 대로 싸서 주는 고기쌈도 받아먹고 미역국도 엄마, 더 드세요 하며 밀어주는 대로 먹고 나니, 이제부터는 다 알아서 치우겠다고 하더니 설겆이를 하는 것이었다. 설겆이는 다른 때도 곧잘 하긴 해서 별다를 것도 없지만 오늘은 남은 반찬까지 얌전히 반찬통을 찾아 넣고는 뒷마무리까지 야무지게 하는 눈치다.

'딸아이 하나 길러 놓으니 이런 맛도 있네'하며 은근히 흐뭇해 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잠깐 제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또 뭐를 만드는가보다 하며 하라는 대로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잠시 후 손을 뒤에 감추면서 들어오란다.

딸아이가 내 앞에 내민 것은 색종이를 병풍처럼 만든 색지 위에 카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엄마,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우리 모녀의 사랑을 이 종이컵에 담아서 평생 간직하면서 살아요~! 엄마, 사랑합니다!'하고 씌여 있었고, 그 옆에는 하트 모양의 스티커로 장식한 예쁜 종이컵이 붙어 있었다.

그러더니 피아노학원에 간다면서 이번에는 또 그동안 모은 돈이라며 이 걸로 엄마와 저녁에 엄마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를 사먹자며 돈을 내미는 거였다. 또 남은 돈은 '엄마 쓰세요'하는 거다.

참으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기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세상사 산다는 일이 간단치 않아 어떻게 생일이니 뭐니 다 챙기며 사느냐고 어른들은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9살난 딸아이의 꽉찬 속마음에, 어른들의 생활을 핑계삼아 정말로 소중한 마음을 나누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흔히들 피가 섞여야 정도 있다고들 하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낳아주신 친정엄마와 내 몸을 빌어 낳은 딸아이의 두 마음을 지켜보면서 정말로 피가 섞인 자식이 남편보다는 훨씬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또 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살다보면 생일이고 다른 날이고 모두 사는 일이 힘들고 복잡해 소소한 일은 그냥 넘기는 것이 당연지사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사는가?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고 정을 쌓아가며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면 딸아이의 오늘의 마음 씀씀이는 몇 번이고 어른들이 본받아야 할 마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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