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에 대한 단상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아르바이트에 대한 단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번째 사회생활..잊지못할 한달 간의 기억

몇년전 휴학을 하고 나서 일년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 정보지를 보면서 여기저기 전화해보다가 첫번째 아르바이트 할 곳을 찾았다. '**철강'. 공장안은 쇠판들로 가득찼고 너무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귀가 얼얼하였다.

과연 이곳에서 일을 해낼수 있을지! 난생 처음 보는 기계들과 손가락 한마디 굵기의 쇠들을 보니 겁이 더럭 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쇠판 자르기다. 총 직원은 8명이고 이중 상무와 경리를 빼면 6명이 근무하는 영세 업체다. 작업시에는 면장갑에 고무로 코팅된 장갑을 하나 더 끼고 작업을 한다.

쇠라는 물건이 워낙 위험하고 거칠어서 장갑 두개를 끼워도 금방 구멍나기 일쑤이다. 공장 직원들은 주의를 단단히 준다. 잘못하다가는 손이 잘릴수도 있으니 아주 조심해야 한다며 수시로 주의를 준다. 일정한 간격으로 쇠를 자르는 기계(절삭기계)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준다. 두꺼운 강판도 사정없이 자르는 기계를 반자동으로 설정해놓고 두명이 작업을 하였다.

^^^▲ 가운데 손가락만 보면 늘 공장 아르바이트 했던 때가 생각난다
ⓒ 이성훈^^^
서로 서로 안전을 확인해 가면서 바닥에 있는 스위치를 밟으며 일정하게 쇠를 자른다. 반나절이 지나면 옷은 기름때로 뒤덮였으며 콧속에는 쇳가루와 기름으로 인해 시커먼 먼지가 가득찼다. 그때 처음으로 기름범벅이 된 옷을 입어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기계소리였다. 바로 옆사람과 크게 말해야 할 정도로 소음은 심했고 퇴근후에도 계속 기계소리가 맴돌았다. 또한 꿈에 가끔씩 절삭기계가 보여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당시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손무덤'이라는 시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하튼 기계와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의 기간이 필요했다. 차츰 일이 손에 잡히면서 공장 직원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퇴근후에는 공장앞 식당에서 술자리를 자주 가졌으며 막내인 나는 늘 얻어먹는 처지였다.

직원 중 한명은 대학졸업하고 들어왔는데 위장취업을 하였다. 특별히 노동운동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 공장이 악덕 기업체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는 비밀을 지켜줄 것을 종종 당부했다. 아직도 그가 왜 위장취업을 했는지 모른다.

일을 시작 한지 2주가 지난 어느날, 사고는 터지고야 말았다. 나와 같이 일한 형과 쇠붙이를 같이 들다가 그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손가락이 쇠붙이 사이에 찍히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손가락 끝이 얼얼하고 곧이어 열이 났다. 장갑을 벗어보니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끝부분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장갑을 두개나 끼웠기 망정이지 그것 아니였으면 아마 깨졌을 지도 모른다. 당황한 직원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어쩔줄 모른다. 피가 맺힌 손가락을 찬물에 식혔다가 연고를 바르고 마이신을 먹었다.

덕택(?)에 그날 오후 작업은 거의 쉬다시피 했다. 다행히 병원갈 정도는 안되었고 손톱빠지는 정도로 끝날 것 같았다. 문제는 다음날 부터였다. 손가락 하나 불편하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인 줄 몰랐다. 장갑도 제대로 낄수 없었고 힘도 줄 수 없었다. 또한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니 숟가락으로 대충 먹어댄다. 소주잔을 들어도 엄지와 검지만 사용하니 영 어색하다.

세수부터 시작하여 양치질 등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손가락이 욱신욱신 쑤신다. 하루하루 지나자 피멍은 점점 시컴어지고 퍼져 갔다. 며칠뒤 집에서(당시 자취를 하고 있었음) 이 사실을 안 어머니의 걱정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한 달만 하고 그만 두라며 애뜻한 간곡을 하셨다. 어린 나이에 차마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사고를 한번 당해보니 겁이 더럭 났다. 그날 밤 잠든 사이에 어머니는 연고를 직접 상처부위에 발라주고 있었다. 일부러 모른척 했지만 눈시울은 어느새 뜨거워졌다.

시간이 지나자 상처는 점점 아물어 가면서 손톱도 빠졌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전처럼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꿎게도 같이 일했던 그 형은 내가 사고를 당하고 일주일쯤 뒤에 절곡기계(쇠 구부리는 기계)에 새끼손가락을 다쳐서 병원신세를 졌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어서 통원치료를 하였지만 손가락 주변에는 늘 두툼한 붕대가 감겨있었다.

시간은 흘러 장기적으로 할 예정이었던 공장일은 한달만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때 받았던 월급은 54만원이다. 하루 일당 1만 8천원이다. 일당지기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장에서 땀흘려 받은 두툼한 봉투를 손에 움켜쥐니 잔뜩 긴장이 되었다.

^^^▲ 박노해 <노동의 새벽>
ⓒ 이성훈^^^
처음으로 내손으로 벌어본 50여만원의 돈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정녕 내 돈이란 말인가?'

반으로 접어보니 꽤나 두툼하다. 지갑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그 두꺼움을 안주머니에 깊숙히 넣으니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도저히 함부로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번 만지작 거린후 따로 통장을 만들어서 아주 특별할 때만 쓸 수 있게끔 소중히 다루었다.

손톱은 다시 자라고 또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한여름에는 주유소에서 그리고 겨울에는 농기계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두 군데 모두 소중한 체험이었지만 처음 했던 곳보다 더 클 수는 없었다. 아주 가끔씩 그 공장을 지나칠 때가 있다. 덜컹덜컹한 화물차, 쇠판 옮기는 기계,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만 둔 후 한두번 만나고 서서히 잊혀졌지만 그 때 맡았던 기름 내음과 소음은 지금도 머릿속에 훤하다. 무엇보다도 가운데 손가락을 보면 항상 그때가 생각난다. 지금 다시 그 일을 또 할 수 있을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노동의 새벽>을 다시한번 펼쳐 본다.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그 책에는 시큼한 종이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