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부조리한 현실의 극단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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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부조리한 현실의 극단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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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상황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귀신 아니겠는가”

 
   
  ▲ 영화 <장화홍련> 포스터  
 

맑디 맑은 강물의 포구에서 두 발을 적시고 있는 한쌍의 자매. 그들은 매우 평온해 보인다. <장화홍련>이 이런 평화로움과는 실제적으로 아주 거리가 먼 영화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광경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지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쌍의 자매가 아닌 그녀만의 세계가 강물에 투영되는 마지막 순간,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이 흑백과 교차되고 영화를 보던 관객들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이전까지 보였던 기괴하거나 오싹한 모습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실체가 삶으로 투영되면서 비로소 감독이 말하는 염원에 다다르게 된다.

수연과 수미가 시골의 한 별장으로 이사오면서, 영화는 색채의 뛰어난 묘사를 주면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그러나, 곧 그들의 새엄마, 은주는 우스꽝스런 연기로 폭발적인 웃음을 자아내면서 분위기 반전. 그러나, 영화는 웃기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러영화의 기본공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소 우스꽝스런 새엄마와 수미와의 갈등은 이 영화에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기본적인 모티브가 된다. 새엄마는 수미의 옷장에 같은 무늬, 같은 모양의 옷만을 수십개씩 진열해 놓은 편집광적인 환자다.

수연에게 야단을 치면서도, 수미와는 극한의 대립만 할 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존재다. 이런 부조리한 관계는 감독의 지난 영화들에서도 드러나 있는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존재가 가장 무서울 수 있다'는 감독의 철학을 그대로 잇는다.

요즘 새로 개봉한 영화 <다크니스>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한 집안에 같이 산다는 사람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설정은 그 어느 공포보다 가장 무서운 설정일 것이다. <장화홍련>은 <다크니스>처럼 가족이 가족을 죽일 수 있다는 끔찍한 설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지붕에서 대립되고 있는 그들의 상황을 공포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가 표현하는 것은 공포의 근원이 아니라, 소통의 불화 때문에 오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다.

"죽여버릴까?" - 수미
"날려버려" - 수연

대사에서 암시하듯, 수미의 정신상태는 죽음 그 자체에 가 있다. 그녀에게 있어 모든 것은 죽음과 관련된다. 그러나, 수연은 죽음보다는 삶, 그 중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실을 보면 증명이 된다.

"부조리한 상황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귀신이 아닌가?" - 김지운 감독

그러므로, 감독이 말한 저 말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귀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귀신이 있다는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가상세계가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듯이, 이 영화도 어떤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감독이 염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이 영화를 평가하고 안 받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부조리한 세계를 정화시키고자 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가 줄곧 해온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늘 그는 부조화를 일으키는 가족들 사이에서 변칙적이고 엽기적인 인물들을 창조해 왔으며, 이번 <장화홍련>도 그와 같은 부조리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부조리한 인물들 그 자체로서 머물렀다면 이번 영화에서 그는 복합적인 인물구성을 보여준다. 수미는 새엄마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고, 그녀만의 세계에 갇혀 살지만 그녀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에는 새엄마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자신이다.

또한, 새엄마 은주는 코믹하면서도 무서운 내면의 연기를 펼치지만, 그러나 그것은 실제 존재하는 은주 자신이 아니라 수미 속에서 창조해낸 새로운 캐릭터인 동시에, 은주 내부에 존재하는 또다른 자아의 세계다. 또한, 수미의 아빠 무현은 가장 평범하고 모범적인 캐릭터인 듯 하면서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엄마가 있는 집안에 은주를 데려오는 무례한 남편이다.

그리고 가장 유약한 수연은 늘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새엄마에게 괴롭힘을 받는 존재다. 이렇게 영화는, 실제와 또 수미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서, 인물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내면 세계를 공포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 공포의 존재는 실제가 아닌, 모두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 또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감독은 질문한다. 때로 수미처럼 혼자일 수도 있고, 당신이 믿는다면 영화의 처음처럼 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믿을 것인가? 하고. 그리고, 이 부조리한 세계의 함정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라고.

영화에서처럼 새엄마가 수연에게 "잘못했어요, 라고 말해"라고 강요한다면 당신도 그녀처럼 이유도 없이 "잘못했어요?"라고 무조건 잘못을 용서받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수미처럼 무조건적인 적대감으로 대할 것인가? 또,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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