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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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고귀하고 달콤하며 아름다운 것은 없다. 어머니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무한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바른 길로 인도되기를 염원했다. 광호는 아버지가 잠들고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지만 망설였다.

평범한 사람처럼 고향을 두려워했다. 살인자가 고향을 두려워하는 것은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양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정자나무 밑에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싫었다.

성공한 자는 얼굴을 바로 들고 고향에 나타나지만 실패한 자는 그렇게 못한다.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떠오르며 매우 슬퍼했다. 아버지의 묘지는 동네 입구에 있는 동산에 있다. 살아난 양심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가보고 싶었다.

우연의 허구를 원망했다. 지나간 시간과 달과 부엉이가 원망스러웠다. 무당이 할머니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며 살풀이를 강요하던 것도 원망스러웠다. 공동묘지만 있고 바닷가가 없는 고향도 문제였다. 바다는 푸른 희망을 주지만 공동묘지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게 만든다.

악마와 철쭉꽃과 독사도 그곳에 함께 있다. 몽달귀신이 자장가를 부르고 달빛이 저승사자를 부른다. 공동묘지는 인생사를 마감하고 간 자들이 잠들고 있는 곳이다. 죽은 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든 것을 원망하고 이승을 하직한 자들이다. 그런 공동묘지가 마을 입구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동묘지가 싫었다.

고향에 바닷가가 있었다면 멀리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멋있는 선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광과 공동묘지는 문제를 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악마의 유혹은 누구나 받는다. 창 꽃과 부엉이가 없는 바다에도 가보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물새와 뱃고동소리와 포구의 아침이 보고 싶었다. 희망이 보이는 동산에 올라 큰 소리로 행복을 노래하고 싶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광호는 아버지의 산소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좋았던 세월은 다 지나가고 황새가 빼 먹은 우렁이 껍질이 되었다. 못된 짓만 하고 오랫동안 살았다. 눈이 있었어도 눈부신 태양을 볼 수가 없었다. 부엉이가 되어 밤에만 돌아다녔다.

어머니가 주일날 교회로 가시는 것을 정자나무 밑에서 바라다보곤 했다. 예쁜 옷을 입고 화사한 웃음을 지며 어머니는 읍내로 가시곤 했다. 고운 옷이 행여 더러워질까 치맛자락을 올려 매고 걸었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걸으면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였다.

눈이 오는 날은 흰 눈과 조화를 이루어 고무신이 더 희게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한번보고 싶었다.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해 보고 싶었다. 광호는 살던 집 앞에서 머뭇거렸다.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달빛 속에서 사람을 본 개가 몹시 짖어 댔다. 기쁨은 결코 큰 것에 있지 않다. 살던 집안을 들여다보자 행복한 날들이 되살아났다.

개가 무섭게 짖더니 주인 아들을 알아보는 듯 이내 조용해 졌다. 성큼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아들이 밖에 온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광호냐 이제 오니? 아들아” 어머니는 방안에서 아들을 여러 번 불렀다.

그러나 광호는 대답하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물었다. 마루 위로 조용히 올라섰다. 그리고 선반 위에서 무엇을 찾아들자마자 재빠르게 집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헛기침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집을 나와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개 짖는 소리에 놀란 어머니는 아들이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여러 번 불렀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마루 위에서 나던 발자국소리가 분명히 아들의 발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어머니는 자리에 일어나 문을 열고 다시 아들을 불렀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깨비에 홀린 것 같은 생각을 했지만 틀림없이 아들이 왔다가 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서둘러 교회로 가려고 했다. 아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허둥대며 성경책을 옆에 끼고 집을 나섰다. 간밤에 무섭게 짖어 대던 누렁이가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는 듯 앞을 가로막고 끙끙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첫인사를 하는 동작은 같았다. 어머니는 늘 하던 버릇대로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봤지, 우리 아들이 온 것을, 어디로 간다고 하디?” 어머니는 개에게 혼자말로 물었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동네 입구를 벗어나면서 무엇인지 심란한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머니는 읍내로 걷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대청마루 선반 위에 있던 약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우는소리에 놀라서 영문도 모르고 모두 일어나 앉았다. 어머니는 남편이 잠들고 있는 곳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던 울음을 그치고 남편이 잠들고 있는 동산으로 가보려고 했다.

“아들아, 거기서 무엇 하니? 아들아,”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재빠르게 앞만 보고 걸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가족들은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서서 보기만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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