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사랑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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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사랑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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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어머, 멋있다!”

소영이는 대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감탄사를 터뜨렸다. 넓다란 정원에, 가꾸지 않아 제멋대로 자란 풀 사이사이에 들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맘에 들어?”
“너무 좋아요!”

소영이가 며칠 전부터 조르는 바람에, 태진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진희 외에는 누구도 와보지 않은 집에 소영이를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소영이는 허리를 숙여 꽃 향기를 맡고 있었다.

“네. 이 큰 집에서 혼자 산단 말예요?”
소영이는 꽃에서 코를 떼며 물었다.
“응.”
“무섭지 않아요?”
“뭐가 무서워?”

두 사람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난 혼자는 무서워서 못 살겠다.”

소영이는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재스민차를 끓여 줄까?”
“좋아요.”

차를 끓이는 동안 소영인 베란다에 서서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화사하게 부서지는 햇살 속에 서 있는 소영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음울하던 집 안 분위기가 그녀의 등장으로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고, 생기가 도는 것만 같았다. 진희가 집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분위기였다.

“심심하면 집을 구경해. 내 방과 서재도 구경하고.”
“좀 있다가 천천히요. 선생님이 안내해 주세요.”

태진은 재스민차를 진하지 않게 해 머그잔에 따랐다. 상큼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잔을 들고 베란다로 가, 소영에게 잔을 내밀었다.

“연하게 탔어.”

소영은 향기를 맡고 한 모금 마셨다.

“음, 아주 좋아요.”

소영이 환하게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태진도 그 옆에 앉았다. 나른하게 쏟아지는 햇살 속에, 소영의 귀 밑에 난 솜털까지도 드러나 보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정원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마셨다. 한가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태진이 소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함께 있으니 좋구만.”
“…… 이제 지쳤어요. 그냥 모든 걸 접고 푹 쉬고 싶어요. 돈도 싫고, 거품 같은 인기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방송차 간 로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무얼 보고 느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뭔가에 매달려 아등바등 산다는 게 부질없다는 거였어요. 난 방송 녹화 때문에 정신 없는데, 옆엔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한가롭게 인생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들을 보면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이상 뭘 얻겠다고 이렇게 나를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뛰고 또 뛰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촬영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깨달음을 얻고 왔군.”
“그래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태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누군가, 무엇엔가에 떠밀리다시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가를. 방송 드라마를 쓸 때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시작한 날부터 끝날 때까지 늘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시청률이 문제였다. 그래서 때론 이미 끝낸 작품을 방송국의 요청에 의해,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각색을 할 때도 많았다. 각색할 때마다 태진은 갈등을 느꼈다. 시청률 때문에, 처음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에는, 방송국과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곤 했다.

“소영이가 쉬고 싶다고 해도 방송국에서 가만 놔 둘까?”
“그게 걱정이에요. 난 그냥 이렇게 선생님과 한가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고 싶을 때 실컷 자고, 끼니 때마다 무슨 반찬을 해주면 선생님이 좋아할까, 그런 일상적인 찬거리 걱정이나 하면서 말예요. 결혼해 애 낳고 평범하게 사는 여자들이 요즘처럼 부러워 보일 때가 없었어요.”

태진은 소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 집을 보니까, 난 몸만 오면 되겠어요.”
“그래도 되지. 둘이 살기엔 충분하지. 아니, 애들을 일개 소대는 낳아도 될걸.”

태진은 할 수만 있다면 소영이를 위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소영인 지쳐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탤런트란 직업이 얼마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홀로 남았을 때 밀려드는 공허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으리라. 특히 공인으로서 어딜 가나 늘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것처럼 피곤한 것도 없었다. 개인의 자유는 거의 박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저도요.”

소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등 뒤에서 태진을 꼭 끌어안았다. 가슴에 깍지 끼워진 소영이의 손을 보았다. 예쁜 손이었다. 태진은 소영이의 손을 잡아당겨 입술을 댔다. 그녀의 입술이 태진의 귀를 살며시 물었다.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입술이었다.

“들어가지.”

태진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방에서 그동안 쌓인 서로에 대한 갈증을 땀을 흘리며 풀었다. 그리고 꼭 끌어안은 채 나른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어나세요.”

태진이 깊은 잠에서 깬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창 밖에선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일곱시였다.

“완전히 죽었었군.”

태진은 기지개를 켰다. 찌뿌드드하던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소영인 어느 새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의 물을 닦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까만 팬티만 걸친 상태였다.

“무슨 잠을 그렇게 깊이 자요?”
“언제 일어났어?”
“30분 정도 됐어요. 배가 고파서 깼어요.”

소영이 배시시 웃었다.
그랬다. 그 말을 듣고보니 태진도 배가 고팠다. 아침 먹고 지금까지 끼니를 거른 상태였다.

“어떡하지? 집에 반찬이 아무것도 없는데. 나가서 먹을까?”
“그러지 말고 중국 음식을 시켜 먹어요.”
“그럴까. 뭘 먹고 싶어?”
“얼큰한 거요. 삼선 짬뽕에 양장피.”
“오케이.”

태진은 싱크대 서랍 안쪽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 수화기를 들었다.
소영이 태진의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이제 우리 뭐 해요?”
“뭐 하면 좋겠어?”

태진은 소영이를 보며 되물었다.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나도 마찬가지야.”

두 사람은 서로 보며 웃었다.

“오늘 신문 있어요?”
“뭐 하게?”
“텔레비전 프로에 재미있는 거 있나 보게요.”

태진은 거실에 있는 신문을 가져다주었다. 소영인 신문 방송 프로그램을 찾아 시간대별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태진은 그 사이에 원두를 갈아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렸다. 고소한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꽤 괜찮은 프로들이 있는데요.”

태진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십대 그룹 가수들이 나와 현란한 춤과 함께 괴성을 지르며 무대를 휘젓고 있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그룹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매니저가 가수들을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했다. 채널을 돌렸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고정시켰다. 여러 사건들이 보도되고, 새로운 것도 없는 민철국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소영인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됐어요. 그렇게 비참하게 죽다니.”

소영이 담배를 뽑아 물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사생활이 난잡하더니 결국은 그런 최후를 맞고 말았어. 인과응보지.”

태진은 말에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애쓰며 소영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요. 동정이 가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천벌을 받았다
고 볼 수도 있어요. 죽은 사람을 욕하는 건 안됐지만.”

소영이도 민철국의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누구보다 민철국의 사생활에 대해 들은 얘기가 많기 때문이리라. 민철국은 연기자로서는 성공을 거두었는지 몰라도 인간이 되지 못한 사내였다.

태진은 지나치는 것처럼 말했다.

“누가 그랬을까?”
“글쎄요.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걸 보면, 치정에 얽힌 원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헌데 방송이나 신문이 보도하는 연속적인 살인과 연관이 있는 걸로 봐서는 정신병자 소행 같기도 하고, 사생활이 난잡한 사람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걸로 봐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회 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박수
를 보낼 일이 아닐까?”

태진은 일부러 그렇게 말하면서 긴장됐다. 소영이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건이 해결되면, 최수용 PD가 그걸 미니 시리즈로 만든다고 하던데요. 이 사건들이 터지고 나서 유흥가에 손님들이 뚝 끊겼다잖아요. 특히 고급 유흥가가 더 심하다나 봐요. 그런 면으로 봐서는 사회 정화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범인이 누군지 한번 만나보고 싶어.”

태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왜요?”
“내가 미니 시리즈로 한번 엮어 보게.”
“엄청난 인기를 끌 거예요. 어쩌면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릴지도 몰라요.”
“그럼 범인들 중 여주인공 역을 소영이가 맡으면 되겠네.”

태진은 무심코 말했다.

“여주인공이라뇨? 범인 중에 여자도 있대요?”

소영의 눈이 동그래지며 태진을 보았다.

태진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그랬다. 아직은 누구도 범인들의 윤곽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 아니. 모든 큰 사건에는 반드시 여자들이 끼잖아. 그 여자 주인공 역을 맡으면 좋겠다는 얘기지.”

태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지만, 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았다.

“난 또…… 그건 그렇고,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제 방송국 편성국장이 나에게 이상한 말을 했어요.”
“뭔데?”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정보원 요원과 강력계 형사반장이 찾아와서 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더라는 거예요.”
“!”

태진은 순간적으로 예리한 비수가 심장에 꽂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사는 집과 그동안의 행적과 제가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에 대해 자세하게 묻더래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찾아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대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난 경찰의 조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그, 글쎄,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태진은 소영의 말을 들으며 정신이 아득했다. 어느 새 그들이 냄새를 맡았을까. 그동안 너무 그들을 무시한 것도 사실이었다. 몇 번의 납치가 성공하자 너무 자만한 면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소영이가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를 남기는 게 아니었다. 그게 단서가 돼서 이토록 빨리 올가미를 죄어 올 줄은 몰랐다. 그들이 소영이를 조사 했다면, 자신까지 이미 조사 대상에 올라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언제부턴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만약에 오늘 소영이가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마음놓고 일을 추진하다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오늘 소영이를 집으로 초대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됐어요. 그딴 일은 잊어버려요. 내 생각엔, 민철국 씨와 같이 드라마도 한 사람이니까 참고로 조사해 본 정도겠죠.”
“그럴 수도 있겠군.”

태진은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그러나 한번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진희에게 알려야 했다. 어쩜 그들은 이미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진희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진희가 섣부른 행동을 했다가는 큰 낭패였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화장실에 들어간 태진은 휴대폰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몇 번의 신호가 가자 진희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왜 그래요? 목소리가 이상해요.”
“나 지금 소영이하고 같이 있는데, 잠깐 화장실 간다고 둘러대고 전화하는 거야. 긴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기로 하고, 지금 어디에 있어?”
“시내요.”
“시내 어디?”
“나리라 집 근처요.”
“뭐! 그럼 빨리 그곳에서 철수해 집으로 가.”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네.”
“소영이가 그러는데, 어제 국가정보원 요원과 형사들이 방송국 편성국장을 찾아와 소영이에 대해서 자세히 묻더래. 가슴에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에 대해서도.”
“뭐라고요!”

진희도 몹시 놀랐다.

“어쩜 지금 진희를 미행하고 있는 놈들이 있는지도 몰라. 나도 그동안 미행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당분간은 서로 조심하자고. 내일 내가 전화할게. 약속 장소를 정해 은밀히 만나자고. 그럼 끊어. 소영이가 기다리고 있거든.”
“알았어요. 당장 철수할게요. 그럼 내일 전화해요.”

일이 그 정도로 진행됐다면 보통이 아니었다. 언제 놈들이 집에 들이닥칠지 몰랐다. 무엇보다 먼저 지하실을 단단히 폐쇄시키든지 없애버려야 했다. 세면대의 찬물을 틀어 얼굴을 씻었다.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중국집에 시킨 저녁 식사가 왔다.

태진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경찰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소영이가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와 살해된 놈들에게 달아주었던 종이 장미가 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는지 궁금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태진의 머리 속은 복잡한 생각들이 엉켜버린 털실 뭉치 같았다. 화면을 보면서도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오늘 밤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오늘 밤을 같이 지내기로 한 소영이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태진의 무릎에 머리를 뉘고 텔레비전을 보던 소영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태진은 미소를 지으며, 불안감을 떨치기라도 하듯 소영이의 티 셔츠 속으로 손을 쑥 넣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손에 잡혔다. 고개를 숙여 소영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소영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태진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서 만났다. 진희는 태진의 얘기를 다 듣고 결론적으로 한 마디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너무 위험한 도박이 아닐까?”

태진은 초조했다.

“내 생각엔, 아직 경찰이 우리를 미행하거나 조사할 단계에까지는 오지 않았다고 봐요.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껏 선생님을 곱게 놔둘리가 없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서는, 죽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종이 장미와 소영 씨가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가 똑같다는 것뿐인데, 그것만 가지고 확신을 얻기는 힘들겠죠. 소영씨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마 선생님을 체크했을 거예요. 물론 지금쯤은 선생님과 소영 씨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겠지만.”
“그럼 어떻게 한다?”
“테러 장소를 옮기고, 가능한 한 선생님과 제가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만의 하나 미행당할 거에 대비해서요. 다시 말해, 우리는 서로 모르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죠.”
“그게 가능한 얘기야?”
“가능하고말고요. 남들 눈을 피해 만나면 되잖아요. 일은 내가 추진하면 되고.”
“혼자서?”
“네.”
“그건 안 돼.”
“왜 안 되죠?”
“언젠가도 말했지만, 어차피 우린 한배를 탄 거야. 일을 안할 거면 몰라도, 할 거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야 해.”
“그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게 되면 우린 자충수를 둔 결과가 될거예요.”

진희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태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이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수가 있을 것도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한강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나와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어디서 여기까지 날아왔을까, 갈매기 몇 마리가 낮은 비행으로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때였다. 태진의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좋은 수가 생각났어! 이번에는 일을 저지른 다음 경찰을 헷갈리게 하는 거야. 그래서 진희와 내가 완벽하게 놈들이 쳐둔 그물에서 벗어나는 거야.”
“어떻게요?”
“한 마디로 말하면, 경찰들을 속이는 거지.”
“예를 들면요?”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야. 경찰이 봤을 때 분명히 우리가 어느 한 곳에 머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사실은 몰래 빠져나가서 테러를 하는 거지. 그럼 그들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똑같은 사건이 또 일어났으니까, 진희와 난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지.”

진희의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멋진 아이디어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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