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기독교 근본주의 비판의 적용대상은 新敎(신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舊敎(구교) 즉 카톨릭은 이미 초기 기독교의 형태에서 많이 변화하였으므로 근본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의 多神敎, 形象化 문화에 따라 변화된 카톨릭
본래 루터의 종교개혁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천오백년동안 유럽 사회를 지배해왔던 기독교를 초기의 그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이었다. 一神敎와 우상숭배 배격이 초기 기독교의 핵심이었으나 그것은 서양문화의 바탕과는 달랐다. 서양문화는 多神敎(다신교)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신들의 형상도 具象化(구상화)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카톨릭은 문화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유럽의 문화풍토에 '토착화'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聖母 마리아와 聖人(성인)들에 대한 공경은 다수의 섬김 대상을 갖고 싶었던 유럽인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것이었다. 神의 형상의 제작은 본디 그것이 허용되는 신앙을 발생시켰던 유럽인들의 기질로서는, 無形의 대상을 좇을 때의 막막한 심정을 달래기 위한 욕구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본래의 기독교로의 환원을 추구한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은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지금 세계의 패권을 가지다시피 하였는데, 문제는 이러한 환원이 지나쳐 혹 기독교 그 자체보다도 더욱 '환원'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가까워지는 것도 '근본'과 맞지 않아
그것은 미국이 마치 기독교 이전의 형태인 유대교의 교리에 가까운 입장에 서게 되고 이에 따라 미국과 이슬람과의 대립이 심화되는 것이다. 자비, 박애를 근간으로 해야하는 기독교가 본래부터 이슬람과의 대립관계인 유대교에 가까워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그것은 전혀 '기독교 근본'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근래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비록 天運이 안 맞아 실패했지만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에도 이스라엘인을 탑승시키기도 했다.
역사상으로도 두 세력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싸움으로 연결되었지만 셋으로는 균형을 이루어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나친 근접은 하늘의 섭리로 따져 보아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