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까맣게 흔들리는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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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까맣게 흔들리는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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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3>박남수 "마을"

 
   
  ^^^▲ 낙안읍성지금도 고향집 하늘에는 소리개 한 마리 맴돌고 있을까
ⓒ 순천시 ^^^
 
 

외로운 마을이
나른나른 오수(午睡)에 조을고

넓은 마을에
솔개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날……

뜰안 암탉이
제 그림자 쫓고
눈알 대록대록 겁을 삼킨다.

금세라도 얼굴이 까맣게 그을릴 것만 같은 따사로운 봄볕이 여시비처럼 일직선으로 일직선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쏟아지는 햇살에 내 가슴이 찔려 그리운 고향을 향한 내 마음을 모두 들켜버릴 것만 같은 그런 봄날 오후입니다.

아지랑이가 흐물흐물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마악 입술을 뾰쫌히 내미는 벚꽃 몽오리가 그 아지랑이를 물고 만삭의 몸으로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자존심처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빌딩 속에서도 아지랑이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문득, 고향 마을을 배암처럼 감고 흐르던 도랑, 그 도랑의 물결처럼 가물거리는 저 아지랑이를 타고 고향집이 스르르 스르르 미끄러지듯 다가옵니다. 마을 곳곳에 풀이 돋아나고, 개나리가 알에서 갓 부화된 병아리처럼 종종거려도 고향집은 이상하게 쓸쓸하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작고 비좁은 그 고향 마을이 더 없이 넓고 여유롭게만 느껴지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그 고향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내 부모님은 또 어디로 가셨을까요. 아지랑이 속에 흔들리는 보리밭을 메러 가셨을까요. 아니면 앞산 비탈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이 붙어 있는 다랑이밭에 무랑 상치랑 고추씨를 뿌리려 나가셨을까요.

쪽빛 하늘에 비누거품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구름은 이내 내 고향 친구들의 얼굴을 쪽빛 하늘에 하얗게 걸어놓고 있습니다. 구름은 이내 그 고향 친구들의 얼굴을 숨겨버리고 내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을 또 하얗게 걸어놓고 있습니다. 아, 그 고향 친구들과 내 부모님은 모두 구름이 되었을까요.

어, 어느새 하얀 구름이 고향 친구들과 내 부모님을 데불고 사라진 자리, 그 투명한 자리에 까맣게 찍혀 있는 저 점 하나는 무엇일까요. 종달새? 아닙니다. 소리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고향 친구들과 부모님은 저 소리개가 되어 텅 빈 하늘에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다는 말인가요?

꼬꼬꼬꼬~ 갑자기 암탉이 노오란 개나리 꽃잎을 열심히 쪼고 있는 병아리들을 물러모읍니다. 근데, 흐드러지게 피어난 저 개나리 꽃잎이 병아리인지, 병아리가 저 노오란 개나리 꽃잎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암탉은 제 그림자를 보고도 소리개가 병아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챕니다.

이 시를 읽으면 갑자기 졸음이 몰려옵니다. 그 졸음 속에 그리운 고향 마을이 떠오릅니다. 파아란 하늘에 바람개비처럼 나폴거리는 소리개 한 마리도 보입니다. 암탉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번개처럼 날아 내려와 예쁘게 삐약거리던 병아리 한 마리 순식간에 채 가던 그 소리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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