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진희는 일 주일 동안 다녀올 곳이 있다고 했다. 태진은 어디에 가는지 알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태진은 소영이 집에서 함께 있었다. 소영이는 모처럼 얻은 자유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길 원했다. 그 역시 당분간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난 연인들처럼 즐거웠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고작 비디오나 몇 개 빌려다 보고,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꼭 돼지들 같아요.”
소영이 평소에는 몸매 관리 때문에 음식에 대해 무척 신경을 썼는데, 오늘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마구 먹어대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하루씩 번갈아 왕과 여왕을 했다. 태진이 왕인 날엔 소영이가 종이 되어 일체의 서비스를 했고, 소영이가 여왕인 날엔 반대로 태진이 종이 되었다. 담배를 가져오는 것은 기본이고, 식사, 설거지, 커피 끓이기, 목욕시키는 일까지 책임져야 했다.
“여봐라, 종.”
“네, 여왕마마.”
“짐이 다리가 아프구나.”
“알겠나이다.”
태진은 소영, 아니 여왕을 위해서, ‘이제 됐다’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팔이 아플 정도로 다리를 주물러 주어야 했다.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구나.”
태진은 총알 같이 뛰어나가 수박을 사와야만 했다.
“귓속이 간지럽구나.”
재빨리 귀를 후벼주어야만 했다.
“코가 나오려고 하는구나.”
티슈를 뽑아와 여왕의 콧물을 닦아주어야 했다.
“여봐라, 종.”
“네이.”
“짐이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네가 대신 다녀오너라.”
“알겠나이다. 하온데, 큰 거이옵니까, 작은 거이옵니까?”
태진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여왕에게 여쭈었다.
“둘 다니라.”
다음 날.
태진이 왕인 날엔 당한 만큼 복수를 했다. 그들은 일 주일을 함께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낼 것인가만 생각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들의 놀이를 지켜봤다면, 바보나 저능아들이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고, 즐거웠다. 태진에겐 살아온 날 중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날이었다. 그들은 서로 벌거벗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때론 자동 셔터로 맞춰놓고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현상소에 맡길 수 없기에 흑백으로 찍었다. 흑백 사진은 태진이 직접 집에서 현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진은 몸무게를 달아보지 않아서 모르긴 해도, 일 주일 사이에 몇 킬로그램은 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같이 있는동안 세상 일을 까맣게 잊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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