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경지에 오른 유시민의원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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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의원 홈에 걸린 사진 ⓒ 유시민의원 홈에서^^^ |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유시민의원에게 환호하는 "유빠"들의 표현에 의하면 요즘 '유시민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기분이 안 좋다"고 한다.
최근에 보도가 된 '유시민의원 개혁당 대여금'사건이 열린우리당 홈에 펌 되자마자 기사를 펌 한 당원이 호되게 당하고 있다. 왈 "유시민의원이 해명할 때까지 호들갑 떨지 말고 진득하게 기다리라.'고 한다.
언론의 기사도, 개혁당에서 발표한 내용도 "유시민의원이 해명하지 않는 한 믿을게 못 된다"는 것으로 우호적인 기사는 항상 기사의 가치가 있으나. "유의원에게 불리하거나 씹는 기사는 악의적인 조중동식 기사"라는 식의 과거에 한창 유행하였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억지 논리이다.
요즘 무더위가 극성이다. 열대야 현상으로 잠자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이다. 이런 무더위를 피해 열린우리당의 유시민의원이 골방을 나와 "휴가를 떠났다"고 전한다. 많은 국민들의 명분 없는 전쟁참가 불가여론을 단호히 거부하고 오직 미국과의 약속이행을 위해 '500명의 대한민국 젊은 군인들이 전사해도 무방하다."며 멀리 이라크로 떠나는 부대의 1진이 떠나는 날 휴가를 가셨는지, 아니면 노무현대통령과 함께 휴가를 떠나셨는지 모르겠지만 하필 노무현대통령도 휴가 중이고 스스로 "노빠"이자 '청와대 경호실장"을 자처하는 유시민의원도 휴가 중이라고 한다.
두 분이 함께 계시던 말 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만큼 금번 휴가를 마치고 나오시면 유의원이 행하였던 지난 과오와 말 바꾸기 행태를 반성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시기를 바란다.
"유빠"들은 광신도
해서 유시민의원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자칭 "유빠"들에게 유시민의원의 말 바꾸기 행태 몇 가지만 예시하여 "현실을 직시하라"고 권하려 한다. 알 말한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유독 "유빠'들은 이조차도 부정하며 "존경하는 시민님"을 외친다. 한때 민주화의 선봉에 섰다고 자칭 "민주화 인사"를 내세우는 분들이 박정희 시대에 그토록 혐오하였던 "박정희교 광신자"들 꼴과 흡사하다.
유시민의원의 홈페이지에 보면 유시민의원 본인을 소개하는 "제가 저를 말한다."는 란이 있다. 그중에 '저는 살면서 조금은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고 하며 "유신과 5공화국 시절 포악한 권력에 대들다가 감옥에도 두 번 가 보았다. 그 바람에 남들이 4년이면 마치는 대학을 나오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고 스스로를 말하여
유시민 본인 스스로가 "유신과 5공화국으로 표현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시절에 엄청난 민주화운동을 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 바람에 남들이 4년 걸리는 대학을 14년이나 걸렸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처럼 유 의원은 서울대 재학시절인 1984년 민간인을 정보기관의 ‘프락치’로 오인하여 폭행을 한 민간인 단순 폭행사건으로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며 1985년 서울지법 본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복역한 바 있다.
유 의원은 홈페이지에 띄운 항소이유서에서 이 사건을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 혐의를 받은 네 명의 가짜 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 조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으로 규정하고는 있으나,
상기의 글에서 나타난 스스로의 고백에는 포악한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감옥에 간 것처럼 미화하는 글 바꾸기 조화를 부리고 있다.
그러고도 1984년 정보기관의 ‘프락치’로 오인 받아 폭행당한 전모씨(48·구청 공무원)가 “유 의원이 사건을 왜곡 표현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민·형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프락치’가 아닌 순수한 민간인 신분으로 억울하게 폭행당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유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식으로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유 의원은 “과거에 이미 해결된 사건으로 최근의 저술이나 인터뷰 등에서 이 사건을 언급한 적이 없는데 전씨 측이 공론화시키고 있다”면서 “별로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오리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의 말 바꾸기 어록
유의원 스스로가 밝혔듯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회사나 공조직에 몸담아 본적이 없이 오직 글과 말로만 먹고 살았던 유의원이 말 바꾸기 한 것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2002년 개혁당을 창당하기 전 유시민은 "개미여러분! 우리 개혁국민정당은 100년 갈 정당을 만들 겁니다."고 호소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으나 결론은 스스로 100년의 100분지 1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찢어 발기고 열린우리당으로 당당하게 갔다.
2002년 대선전에서 비민주당지지자들에게 호소하면서 "우리 개혁국민정당은 노무현만 당선시키면, 그날부터 바로 가장 철저한 야당이 될 것입니다."고 하였으나 결론은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스로 "영원한 노빠"와 "대통령 경호실장"을 자처하며 무조건 노무현대통령 감싸기만 하고 있다.
대선 마지막 날 정몽준의원의 노무현 지지철회가 발표되자 민주노동당 당원, 지지자 여러분께 "여러분! 정몽준 폭탄을 맞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밤을 날로 새며 여러분의 한 표, 한 표!를 이렇게 애타게 호소합니다.“고 하였으나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 표는 도움된 것 없었습니다. 원래 노무현이 이기게 되어 있었습니다."고 말을 한다.
처음 유시민의원이 2003년 보궐선거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제가 민주당 같은 부패정당과 공동후보로 나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당과 함께 놀자고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었습니까?“하며 지지를 호소하였으나 결국은 국회의석 한 석을 위해 민주당과 공조한 연합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는 "시일야방성대곡! 사나이라면 어찌 이날 탄핵을 맞아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더러운 국회에 한날한시도 더 있지 않는 것이 선비의 지조입니다."고 하였으나 국회의원 사퇴한 적 없다.
그외 이라크 파병반대시의 말 등 말만 하면 반드시 뒤집어지는 행태를 보면, 가히 글쟁이 말쟁이의 신기를 보는 것만 같아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어 담기 힘들고 한번 적은 글은 영원히 남겨진다."고 하여 남자라면 세 뿌리를 일생동안 조심하라고 옛 성인들은 "말조심"을 당부하였건만 유시민의원은 언제든지 말을 바꾸고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유빠"들은 환호한다. 도대체 간도 쓸개도 ,배알도 없는 족속들이다.
민주화 운동하느라고 남들 4년 만에 졸업하는 대학 14년 걸렸다고 너스레 떠는 유의원이 밝힌 이력을 보더라도 소총수로 보낸 군대 3년, 민간인 폭행사건으로 감옥 간 기간, 도서출판 학민사에 근무한 기간 등을 빼면 14년 걸린 이유를 알만한데도 유의원의 자기미화 글 솜씨는 가히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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