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반항은 가능할까
스크롤 이동 상태바
그들의 반항은 가능할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정상회담을 바라보며

얼마 전 멕시코에서 중미정상회담이 열렸었다. 쿠바의 카스트로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정상들이 다 모였다. 그곳에서 미국은 FTAA(미주공동시장)을 2005년까지 창립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상들을 강하게 다그쳤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중남미 국가정상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전통적인 미국의 안마당인 중남미에서.

물론 우리의 언론의 국제 면을 다 뒤져보아도 중미정상회담이란 큰 행사가 열렸다는 것 자체가 기사화 되지 않은 고시 더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그 회담장의 이례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사나 그에 대한 해설기사가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중미 정상들의 그런 반항의 움직임이 결국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의 중남미의 변혁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런 우울한 논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알면 알수록 중남미의 병은 깊다는 것을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몇 가지 개혁을 취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외과적 수술을 해도 치유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깊어갈수록, 더 많이 알수록 절망이 가까워온다. 혹시 우리도 이미 비슷한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중남미 정상회담을 미국의 의도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게 만든 것은,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이니셔티브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중남미 정상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중남미의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석유와 그것을 기반으로 미국의 압력에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쿠데타를 이겨내고, 외국계자본이 운영하는 기업들의 총파업을 이겨낸 자신감이 차베스를 강하게 만든다.

룰라 대통령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관계를 긴밀히 하고 있고, 다른 메르코수르의 회원국인 우루과이와 파라과이에다 준회원국인 칠레와 볼리비아를 강하게 결속시키려는 노력이 진전을 조금씩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중미의 북쪽에 있는 안데스 국가들도 메르코수르의 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남미 내부의 역내무역을 강화해서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이다. 그는 또 미국보다는 유럽공동시장과의 의존도를 높이려고 한다. 사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한 직접투자액수는 미국 못지않게 유럽자본의 투자비율이 높다. 남미국가들이 FTAA를 통해 미국경제와 결합하는 것보다는 은근히 EU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똑같이 약탈적이지만 보다 덜 노골적인 파트너를 원하는 것이다.

남미국가들은 그러한 브라질의 이니셔티브에 많이 흔들리고 있다. 남미국가들이 일제히 좌향좌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가내부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 강력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이미 오래 동안 실시해온 남미국가들의 국민들은,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채무국의 이익과 빈부격차만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미 아르헨티나는 물론 페루, 볼리비아, 에쿠아도르에서 강력한 국민들의 저항이 있었다. 또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나서서 강하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또한 은근히 브라질을 경계하고 있기도 하다. 중미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넓은 땅. 그래서 일인당 GNP는 높지 않지만 전체경제의 규모는 남미에서 가장 큰 브라질이, 또 다른 강자로 부상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에겐 다 그만그만한 나라들이지만, 오랫동안 국경분쟁을 거쳐 온 그들에겐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브라질은 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설사 메르코수르나 혹은 다른 경제적 공동시장을 통해서 남미경제가 역내의 결합을 강화시키고, 외국자본의 입김에서 보다 자유롭게 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지금과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들이 내가 최근에 읽은 여러 가지 책들에 차근히 잘 쓰여져 있다.

이미 이들 나라의 경제는 이들 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다국적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통한 이들 국가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중요한 기업들과 심지어 은행들, 그리고 전기, 통신, 도로, 항만 같은 기간산업까지도 싼 값에 외국자본에 팔려버렸다. 모자라는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급하게 받아들인 차관에 붙어 있는 조건에 따라 국제가격보다 비싸게 수입된 물건들. 선진국의 사양산업을 이전받은 노후설비로 돌아가는 공장. 생산을 위해 더 많이 중간재를 수입해야 하는 현실. 이것이 남미 국가경제의 현주소이다.

이미 이들 나라에서는 오랜 기간동안의 국민들의 노동의 결과로 축적된 국내자본은 국외로 증발해 버렸다. 이들 나라에 남아있는 산업은 대부분 국제적인 경쟁력이 없는 것들이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값싼 노동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이미 전 지구화된 경제위기로 인해, 이들 나라의 노동자들보다도 더 싼값에 노동을 파는 국가들이 많다. 그래서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임금을 더 내려도 노동을 팔수가 없는 것이 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경제 관료들은 어떻게든 나라를 이끌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국민들은 이미 절망했다. 그들에게 가해진 삶의 조건이 그들이 감내할 수 있는 인내의 한계를 벌써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범적으로 IMF의 처방을 따르는 나라마다 빠짐없이 심각한 국내소요들이 일어났었다. 그것이 바로 2003년 남미의 모습을 요약한 것이다. 이제 2004년. FTAA를 성사시키려는 미국과, 그로 인한 더 큰 종속을 피하려는 남미는 어떤 과정을 밟아가게 될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