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색이나 얼굴에 비친 모양으로 보아서 참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병들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았다. 나는 굳이 남들에게 자랑스레 공개할 수 없는 구질구질한 이유로 그 곳에서 의사생활을 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몇 달간을 고민한 끝에 이룬 결단이었다. 포기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나는 그곳에 자리하고 싶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곳 시장통에 허름한 의원이 하나 있었다. 새로이 개업을 생각하는 의사의 호기심으로 살짝 문을 열고 틈새로 병원 안을 쳐다보았다. 조그만 의원의 대기실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TV를 보고 있었다. 짧은 기간동안 훔쳐본 풍경은 나에게 많은 느낌들을 주었다. 아무리 한가하더라도 의사가 대기실에 나와서 TV를 보고 있다는 것은 참 소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는 이유로 조금의 권위와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가 아닌가.
또 하나의 강렬한 느낌은 그 많은 인구를 대상으로 홀로 있는 의원이 그렇게 한가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마을의 중턱쯤에는 무료진료소라고 쓰인 곳이 하나 있기는 했었다. 한 사립병원 재단이 세운 대학병원에서 그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진료를 나간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었지만, 상주의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그곳이 그 곳 사람들의 의료를 다 감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아프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곳에서 조금 더 내려와 버스종점이 있는 곳에서 조금을 더 내려온 부동산중개소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았었다. “바로 저 밑에 지금 미용실이 들어온 곳에 의원이 하나 더 있었지요. 그런데 그분이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젠 의원이 하나밖에 없어요.” 그 부동산주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 덤덤한 말투였다. 병원이 없어 아쉽다거나 그 의사가 돌아간 후 불편해졌다거나, 왠지 그런 느낌으로 들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늘 그곳에 대한 여운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다. 왜 그곳 사람들은 병원을 찾지 않을까?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떨어진 정류장 주변에 밀집해 있는 의원들을 찾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곳을 다녀가지 않은 시간대를 골라서 그 곳의 의원을 찾아가는 것일까. 혹은 그곳은 약국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큰 곳일까? 아마도 모두가 답일 것일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해답이 가장 옳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얼만가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느 듯 시간이 지나고 그곳이 속한 관악구에 새로이 젊은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개업을 많이 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모임에서 어쩌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주일학교 이후 ‘장’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달아보았다. 당시는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후끈 달아오르던 시점이어서, 그런 모임이 상당히 중요했고 나는 공연히 바쁜 일들이 자꾸 생기곤 했었다.
새로 개업한 가정의학과 의사들을 찾아내고 모임에 소개하고, 빨리 정착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내가 그 모임을 이끌던 1-2년 동안에 해야만 했던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천성이 내성적이라 사람들을 사귀고 소개하는 일들에는 별로 적성이 맞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역사회의 사람들에게서 난곡에 의원이 하나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또 바로 가정의학과 의원이었다. 그 모임에 그 사람이 소개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참 궁금했었다. 내가 처음에 가졌던 그 의문이 수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아직 궁금했던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그리 멀지 않은 그곳에 총알같이 차를 몰고 한번 가보았다. 원장은 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었다. 바로 지난번에 보았던 그 의원의 옆자리였다. 시장통 바로 옆자리인 그곳에 신축건물이 생겼는데, 그 건물의 2층인가 3층인가에 그 사람이 의원을 차린 것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깔끔한 인테리어와 적당한 의료기구들을 갖춘 그 당시 기준으로의 전형적인 가정의학과 의원이었다. 아이들 몇이 병원으로 뛰어들더니 제 집인 모양으로 뛰어노는 모양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의사들은 모임에서 자신의 병원에 환자가 몇 명이나 오는지를 잘 묻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 같이 있다. 나는 그분의 의원이 얼마나 잘 되는지 못내 궁금했었다. 그 분의 표정으로 보아서 그다지 의원의 경영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좀더 정확한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왜 그동안 그곳에 의원이 없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궁금증에 대한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예전에 가졌던 의문, 즉 “왜 그 곳은 의원에 환자가 가지 않을까?” 혹은 “왜 인구비례로 보아선 몇 개의 의원이 있어야 마땅할 그곳에 단 하나의 의원만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곳을 잘 모른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조직하는 몇몇 사람들을 잘 알고 지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좀처럼 실감이 잘나지 않고 내 오랜 의문을 풀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허물없이 물어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대부분이 그들이 자주 대하는 사람들에 편향된 제한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난곡은 큰 지역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깃들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존재하는 또 다른 성향의 사람들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깊숙한 곳의 모습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평생 그 의문을 않고 살아가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 용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그 대가로 평생을 않고 살아가야만 할 일종의 업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궁금하고 미련이 생길 일이었으면, 그 때 뛰어들었어야 옳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문득 또 다시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떠오르는 것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