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위문 공연단을 창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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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은 단순히 사람을 지키는 사수대가 아니다

교도소는 인간 개조의 장이면서 재활학습의 장이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탈선을 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전성을 가지고 있다 . 인간사회에서는 제도적인 인신의 구속을 통해 사람을 재생시키는 중임을 맡고 있다 따라서 교도소가 인격도야의 장이 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불법을 자행하는 반사회적 범죄자들은 모두 사회인으로서 영원한 퇴출을 당해야하는 해충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든 구원을 받을 수 있듯이 배우고 가리키고 깨우치면 언제든 재생 가능한 사회 구성원인 것이다.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다양한 정보 취득과 기능연마 환경이지만, 그보다 먼저 시급한 것이 관심과 사랑이다.

과연 교도소에 사랑을 줄만한 교도관이 존재 하는가 물론 존재한다. 자신의 월급을 쪼개서 생활이 어려운 수용자 가정 에 생활비를 보내 가정을 지키도록 돌보는 교도관이 있는가 하면 매일매일 기도를 하면서 심성순화를 돕는 따스한 교도관도 적지는 않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던 살인사건 수용자를 하나님을 믿게 해서 죽을 때까지 교도소 선교에 앞장서도록 힘쓴 것은 모두 교도관들이 한 일이다. 대체적으로 교도관은 순수하며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가진 자는 예우하고 못 가진 자는 편애하여 소외감을 부추켜 사회를 원망하면서 재2의 범죄를 꿈꾸도록 방치하는 교도관도 일부 있다. 이토록 명암이 교차하는 교도소의 실상은 교도소의 재생 프로그램에 일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교도관이 살인마를 변화시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종교적 사랑에 눈뜬 교도관은 수용자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수용자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든 교도관은 분명 정서가 메마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다른 교도관이 존재하는 건 왜일까? 전자는 종교적 사랑으로 메마른 정서를 승화시킨 사람인반면, 후자는 가지고 있던 사랑도 잃어버린 경우이다. 왜 대다수의 교도관은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을까?

후자가 수용자를 따스하게 대하는 배려와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평가 절하된 사회인식, 열악한 근무 환경,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외감 때문이다. 교도관이라고 하면 사회인들은 일단 밑으로 깔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재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선생이나 스승이라고 바라보지 않고 인권침해를 즐겨하는 가해자라고만 생각을 한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세상에는 스승이 많이 있다. 지식을 가리키는 스승, 무도를 가리키는 스승, 온갖 스승들이 존재한다.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필요하고 귀중하며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들 스승은 격에 맡는 예우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유독 교도관이라는 스승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역할로 본다면 교도관만큼 중요한 스승은 없다. 그들 많은 스승 중에 가장 막중한 사명을 가진 스승은 바로 교도관이다.

교도관은 단순히 사람을 지키는 사수대가 아니다. 사람을 정화시키고 재생시켜 범죄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학교 선생한테 머리를 속이는 사람은 많이 있어도 교도관한테 머릴 숙이는 사람은 드물다.

다른 이들의 선행에는 눈길을 주어도 교도관이 따스한 일을 하면 무관심 하는 게 사회 인심이다.
이런 사회풍토는 교도관을 업무 스트레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직업의 존엄성과 자부심은 물론 존재감까지 상실하도록 부추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교도관이 위대한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찌 인간 재생 프로그램이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겠으며, 수용자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겠는가.

만약 교도관 모두가 사랑이 넘치고 수용자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수용자는 개과천선을 하고 유익한 사람으로 환골탈태되어 사회에 복귀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 사회가 먼저 교도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충분한 예우를 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 대다수 많은 교도관은 지쳐 있다. 근무 환경도 그러려니와 수용자와 함께 담장 안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사회로부터 전해지는 극심한 소외감은 인류에 공헌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을 상실케 하는 것이다.

이들의 업무 스트레스는 곧바로 수용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결국 교도관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수용자는 출소 이후 사회정착에 실패하게 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 사회를 어둡게 한다.

우리 사회가 교도관에게 위로와 격려와 성원을 보내준다면 교도소관은 비로소 자신들의 가치와 존엄성을 찾게 되어 수용자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게 되고 그때 교도소가 진정한 재활의 인생 대학이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사랑의 고갈은 범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가장 위해한 독소이다. 반면 사랑은 어떠한 교육보다 재생에 필요한 값진 도구이다. 수사기법을 선진화하고 경찰인력을 증강하는 등 치안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범죄자들을 재생시켜 건강한 사회인으로 북귀시키는 교도소의 기능을 재인식하고, 교도관의 근무환경과 예우를 전사회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할 것이다.

교위단은 해석하자면 교도관 위문 공연단이다. 우리 사회와 종교는 교도소 수용자들은 위문공연을 가지만, 교도관을 위로하거나 공연하러 가지는 않는다. 교도관은 위로해 주거나 응원을 해주지 않고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면서 수용자를 위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사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교도관을 칭찬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그분들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승의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수고가 많다는 위로와 직분에 맞는 성원을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범죄로부터 우리 자신과 사회를 지켜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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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원 2011-07-25 03:34:41
이찬석 기자님 참 멋진 글입니다. 가슴 뭉클하네요. 이런 휼륭한 교도관들이 있다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네요. 좋은 모습 좋은 글들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찬석 기자님 글은 참으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찬석 기자님 화이팅

신상원 2011-07-25 03:46:27
참 글을 잘 쓰십니다. 감동적입니다. 소외된 자들의 설움을 대변해주는 이찬석기자님의 글 한편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네요. 휼륭한 글입니다. 글 내용처럼 조속히 교도관위문공연단이 창단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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