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인연의 소중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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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인연의 소중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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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갈등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1.버려지는 자녀

^^^▲ 가족이라는 인연의 소중함^^^
요즈음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과거와 다른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녀를 서로 데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기에, 이혼 가정의 자녀가 보육시설이나 고아원에 맡겨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한 인연은, 부부로 만나는 것이며,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가정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케 하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특별한 인연이 그처럼 비참하게 깨진다는 것은 크나큰 비극입니다. 도무지 조화를 이룰 수 없어 이혼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자녀를 내버린다는 것은 인연을 지나치게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TV에서, 고아원에 버려진, 고아 아닌 고아들을 취재하여 방송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정서적으로 왜곡되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그림을 그려도 아버지를 그리지 않는다든지, 엄마가 온다고 약속했는데 찾아오지 않는 날이면 난폭해진다든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연이 굴절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버림받은 자녀도, 자녀를 버린 부모도 모두 이미 불행할 뿐입니다.


2. 히틀러

히틀러는 어린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으며, 걸핏하면 아내를 두들겨 팼으며,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괴롭힘 당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연민을 느끼며 외로움을 느꼈는데, 어머니가 이웃의 돈 많은 유태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히틀러 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 한없이 뒤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독일에는 유태인을 배척하는 감정이 많이 퍼져 있었는데, 히틀러는 기초적인 인연이 굴절되는 가운데 더욱 유태인을 경멸했으며, 급기야 전쟁을 일으켰을 때, 600여 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보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인연 속에서 성장했다면, 히틀러의 가슴에 그처럼 극단적인 증오가 깃들지는 않았겠지요.

히틀러의 부모가 서로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부부였으며, 자녀와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는 부모였다면, 이웃집 유태인이 왜곡된 인연을 만드는 자가 아니었다면, 히틀러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며, 유태인 학살은 없었을 것이며, 인류 역사가 훨씬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현실에서, 부부의 갈등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해봅니다. 이 아이들이 잘못된 인연에서 입은 상처와 좌절을 창조적으로 정화하고 통합하여 극복하지 못한다면, 히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자가 되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또 나중에 어디에서 누구에겐가 상처와 좌절을 전가하는 인물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 자신이 불행하니 자신을 만나는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는 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포로 수용소에서(원제: 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은, 히틀러 치하에서, 어떤 수용소생활을 했는지, 실제 경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복수심에 의해,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유태인들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전원, 무기징역이며, 언제 독가스를 마시고 화장될지 모르는 처지였지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배급받았으며, 지극히 사소한 일로도 두들겨 맞았으며, 생산적인 노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병자는 즉시, 사형장으로 직행하는 곳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수감자들은 절망에 짓눌려 살았지만, 빅터 프랭클은,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였습니다.

'막사 안을 돌아다니면서 마지막 빵 조각을 동료들에게 나눠주며 타인을 위로하는 자가 있었다…'

지극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스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외적으로 모든 자유가 억압되고 박탈된 환경 속에서도, '어떤 태도로 생활할 것이냐', 그것은,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영역이라는 것이 프랭클의 관찰이었습니다.

자기유익만을 구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는, 더 이상 유익을 구할 수 없는 환경에서 행복을 찾기 어려웠겠으나, 다른 이에게 빵 조각을 나누는 선의지가 있었던 이들의 가슴에 무엇이 깃들었을 지를 상상해봅니다.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한, 그들의 가슴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행복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 구체적으로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그처럼 절망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히틀러에게도 있었다면, 히틀러를 인해 수많은 사람이 절망하게 되는 일은 없었겠지요.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히틀러의 어린 시절처럼 절망하는 아이들에게 여러 타인의 따뜻한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인연을 인해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비록 주어진 여건이 힘겨울지라도, 오직 희망을 지향하는, 주체적인 '선택'이 아닐까요?


4. 성자들의 교훈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치는 성자들의 교훈을 떠올려 봅니다.

불가에서는, 옷깃 한 번 스쳐도 전생에 삼천 번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사람 뿐 아니라, 지극히 작은 미물의 생명조차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했으며, 자비를 행하라고 했지요. 순간 순간 스치는 인연을 지극히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는,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는 말만 해도 지옥불에 들어갈 정도의 잘못을 범한 것이며, 단순히 생각한 것만으로 실제 행동한 것과 다름없으며, 자신의 괴롭히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으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받아 천국가야 하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가정 밖에서 접하는 인연을 성자들의 가르침대로 소중하게 대하지는 못할지언정, 성자들의 교훈을 지향하며, 최소한 가정 안에서, 가족으로 만난 인연을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에게 자비와 사랑을 행하며 산다면, 히틀러 같은 정서를 지닌 자가 생기지 않을 터이니, 사람을 죽고 다치고 절망케 하며 지구를 시끄럽게 하는 갈등과 분쟁들이 대폭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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