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논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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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논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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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등록금은 교직원 인건비 보다 두 배나 올랐다

 
   
  ^^^▲ 서울청계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실현 6.10 국민촛불행동 집회 모습
ⓒ 뉴스타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된 황우여 의원이 ‘반값 등록금’ 이야기를 꺼내기에 “지뢰밭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그 꼴이 되고 말았다. 거의 30년을 대학교수로 지내고, 이제는 정년이 몇 년 안남은 나 같은 사람이 등록금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다만 주로 사립학교 등록금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어 연․고대 같은 ‘일류대학’이 아닌 차위급 사립대학에서 그간 내가 경험한 바를 두서없이 적고자 하니, 등록금 문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983년 vs. 2011년

내가 중앙대학교 조교수 초임교수가 된 1983년에 중앙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은 45만원 수준이었다. 첫 한 해 동안 내가 받은 봉급의 세전(稅前) 연간 총급여는 1,000만원이 약간 못됐다. (당시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한 내 동생의 연간 총급여가 500만원을 약간 상회했다.)

오늘날 우리 대학의 초임 조교수 연봉은 약 4,500만 원이고, 인문사회계열 학부 등록금이 학기당 400만원 수준이다. 그러니까, 지난 28년 동안 교수 봉급은 4.5배, 그리고 등록금은 거의 10배가 된 셈이다. 1983년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약 2,000 달러로 멕시코와 비슷했다. 2010년에 1인당 GDP가 20,000달러가 됐으니 지난 28년 동안 국민소득은 10배가 됐다. 이 같은 소득 증가를 고려한다면 등록금이 비싸게 느껴져서는 안 되는 데, 체감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아마도 국민소득이 높아진 대신에 계층간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진 탓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생 급증

1980년대에 우리 대학, 특히 법대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지방학생이었고, 그런 탓인지 사정이 어려운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진학률이 부쩍 높아진 것은 1980년대부터인데, 전두환 정권은 기존 대학에 정원을 늘려주고 졸업정원제로 30%를 더 뽑게 했다. 노태우 정권 들어서는 새로 사립대학을 인가하기 시작했고, 김영삼 정권 들어서 수도권 대학에 야간 정원을 추가로 늘려주는 등 대학이 양적으로 대폭 증가했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지만 이 때 대학을 들어 온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즈음에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1997년 경제위기 전만 해도 중앙대 법대를 졸업한 학생들은 금융기관에는 기본으로 취직이 됐지만 그 후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때마침 IT 혁명이 불어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일자리는 줄어들었지만, 90년대 들어 늘어난 대학 정원은 대부분 인문사회계였으니 졸업생들이 취직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여학생이 늘어서 우리 대학도 이공계를 제외하면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을 능가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는 여학생들도 졸업한 후에 취직을 하려고 하나, 제조업이 문을 닫거나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IT로 인해 사무직 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많을 리가 없다. 또한 말하기 불편한 사실이지만,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로 높아졌다는 것은 대학생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음을 의미함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대학 졸업생이 겪는 취업난은 이 같은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등록금 급등의 원인

사립대학 등록금은 교직원 인건비 보다 두 배나 가파르게 올랐는데,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 많이 올랐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대학이 대학다운 시설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1983년에 내가 대학에 처음 왔을 때엔 학교 시설은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에어컨은 총장실에나 있었고, 연구실에는 지금은 골동품 가게에서도 보지 못할 연통 달린 기름난로가 있었다. 그런 대학에 승강기가 있는 높은 건물이 생기고 방 마다 에어컨이 들어오고 컴퓨터실이 생겼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문제는 물론 이것이 모두 ‘돈’이라는 데 있다.

또 하나는 교수진 확충이다. 그 전까지는 최소한의 전임교수를 두고 강사를 통해 학교를 이끌어 온 대학이 1990년대 들어 전임교수를 제대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학은 인문사회, 이공계, 의약계, 예능계 등 온갖 전공을 다 갖춘 ‘거대한 백화점’ 같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온갖 대학과 대학원 등 교육단위가 많아서 졸업식장에서 학장과 원장이 도열하면 그 줄이 끝이 없다. 이렇게 온갖 학과가 많은 대학이 모든 학과에 전공교수를 확충하게 되었으니, 대학의 재정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만 해도 학생회가 강해서 등록금 인상이 무척 어려웠다. 대부분의 대학이 그러하듯이 우리 대학도 등록금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서 총장은 자리를 걸고 등록금 인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대학은 등록금 외에 다른 수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빈익빈 부익부’ 사립대학

한국 대학이 기부금을 적극적으로 걷게 된 데는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의 영향이 컸다. 1994년에 총장이 된 이래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장을 맡기까지 오랫동안 총장을 역임한 이경숙씨 덕분에 숙명여대는 완전히 다른 대학이 됐다. 숙명여대의 성공을 본받아서 많은 대학들이 동창과 학부모를 상대로 모금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이렇게 대학에서 모금 운동이 불이 붙게 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사립대학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는 데 있다. 연대, 고대, 성균관대 등 동문들이 강한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과의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진 것이다. 중상위권 대학이라는 우리 중앙대학교도 동문이 빈약한 편이니, 다른 보통대학들의 사정이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동문 기부에 있어 ‘보통대학’은 연·고대 같은 명문 대학에 비할 바가 아닌데, 서러운 것이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기업들이 번듯한 건물을 지어서 기부하는 경우도 연대, 고대, 이대 같은 ‘윗동네’에 국한되었다. 내가 법대 학장을 지내던 2001-2003년 동안 우리 대학 박명수 총장이 회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학장들은 교수들에게 주변에 김밥 할머니 보면 평소에 인사라도 잘 하고 다니라고 하시오.” 평생 김밥을 팔아서 번 몇 억 원을 명문 K대에 기증한 일이 신문에 났던 것이다. 김밥 할머니의 기부도 ‘부자대학’인 K대학으로 가니, 당시 박 총장이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 않는가.

재단 전입금 ?

언론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재단 전입금이 없다고 비난한다. 물론 사립대학의 재단이 튼튼하면 전입금을 많이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그런 사립대학이 손으로 셀 정도다. 원래부터 재단 재산이 빈약한 대학은 출연을 하려고 해야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사립대학이 많으니까 개중에는 등록금을 횡령하는 ‘악덕’ 대학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재단이 빈약한 대학이 재단전입금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재단의 출연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부는 처음부터 대학 인가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학 평가의 부작용

최근에 대학 등록금이 많이 오르게 된 데는 중앙일보 등 몇몇 신문이 하는 대학평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모든 대학이 대학평가 순위에 목을 매다 보니, 대학은 평가 사항에 맞추어서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교수 1인당 학생수와 교수 1인당 연구실적을 대학평가에 비중을 크게 두니까, 대학은 교수를 많이 채용하고 교수들의 강의 부담을 경감시켜 연구업적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전임 교수는 한 학기에 9시간 강의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6시간 만 하면 되는 것도 대학평가로 야기된 교수들의 논문 쓰기 경쟁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나 최근 20년 동안에 교수 숫자가 거의 두 배가 된 것도 이런 변화와 관계가 있다. 교수들에게 연구업적 생산과 연구 프로젝트 수주를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학생들은 어학연수 등 스펙을 쌓는데 열심이고, 교수들은 연구비 수주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대학의 생얼굴이다. 이런 분위기를 한껏 조성해 놓고 지금 와서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

로스쿨 등록금은 학기당 1,000만원

정부 정책이 등록금 인상을 야기한 경우로 들 수 있는 것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다. 정부는 설립인가 기준을 너무 이상적으로 정해 놓았고, 대학들은 목숨을 걸고 인가를 받아 내고 보니, 지금 우리나라 로스쿨에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학년 학생 정원이 40명-50명이 대부분인 법학전문대학원에 전임교수가 35명-40명이라서 학생에 비해 교수가 너무 많다. 몇 년 후에 학부 법학과가 소멸되면 그야말로 ‘교수반 학생반’인 로스쿨이 생기는 셈이다.

로스쿨 선택과목은 수강생이 3명, 4명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과외공부 같은 수업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로스쿨은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원이나 된다. 몇 년 후 학부 법학과가 없어지면 등록금이 50% 이상 올라야 간신히 인건비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무더기로 인가한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 그리고 그런 조건으로 인가를 받아낸 대학들 모두가 무책임하다.

딜레마

오늘날의 등록금 문제는 이처럼 많은 요소가 누적되어 온 것이라 쉬운 해결책이 없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와 마찬가지로 등록금 문제도 수도권 집중과 관련되어 있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수도권에 국립대학을 세우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가까운 지방 국립대학을 마다하고 수도권 사립대학으로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수도권에 등록금이 싼 국립대학을 대거 세우다간 지방 국립대학이 도매금에 쓰러 질 것이니 완전히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격이다. 등록금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다. 등록금을 단번에 ‘반값’으로 하겠다는 여야 정치인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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